서리풀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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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에게 고통을 주는 길밖에 없나?

[서리풀논평] 북한 주민에게 고통을 주는 길밖에 없나?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 달라”, “원유중단이 북한의 병원 등 민간에 대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잠시, 어느 것이 누구 말인가 혼란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원유공급 중단을 요청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민간이 피해를 본다며 반대했다. 병원이 등장한 것이 정확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국제정치의 논리가 아니면 요구도 여기에 대한 반응도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 ‘이중 사고’(조지 오웰, <1984년>)도 따로 훈련을 받아야 할 지경인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 요구가 거세다. 국내, 국제 모두 북한을 고립시켜 무릎을 꿇리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 앞장서 월요일(11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추진한다고 하니, 어느 쪽이든 곧 결정될 것이다. 미국이 준비한 결의안은 대북 석유 수출과 섬유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외통수가 될지는 더 두고 볼 일, 북한을 ‘봉쇄’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안보리 결의만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거나 시큰둥하니 미국 뜻만 따를 수 없다. 말로는 더 강하게, 실제로는 과거와 비슷하게 결론이 날 공산도 있다.     오늘 우리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으로 거론되는 초강력 제재, 특히 북한 봉쇄에 관심을 둔다. 많은 이들이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몰고 올 효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수적 피해’가 나타나는가?   경제 제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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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에 대한 태도, 그 끈질긴 성장주의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계속 불안하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과학기술 분야 인사는 ‘참사’라고 부를 만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기업인을 임명하고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해 사고를 낸 것이 얼마 전이다.   이번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명자가 창조과학이니 역사관이니 하면서 말썽이다. 인사청문회까지 갈 수 있을지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인사는 이미 개인 차원을 떠났다.   인사권자가 과학기술, 과학기술 정책, 과학기술 정책의 정책결정과 책임자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두 번 그런 것이면 우연이나 실수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그것도 한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면 뭔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 인사에 ‘헛발질’을 계속하는 이유는 <경향신문>이 상세하게 분석했다(기사 바로가기). 기자는 참여 정부 시절 과학기술 정책을 잘 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 과학기술을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의 도구로 보는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관의 답습,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세 가지 이유로 꼽았다.       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분석에 대해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인사인들 우연이나 실수라고 주장할 만한 일이 왜 없겠는가? 누가 추천을 했다, 인사 검증에 어떤 부분이 빠졌다, 우리도 잘 몰랐다,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다,…잘못된 결정은 많은 우연, 오판, 실수가 겹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가령 우연이거나 개인의 실수라 하더라도 체계(시스템) 수준에서 그것은 ‘무작위’가 아니다. 어떤 경향성은 맥락과 구조가 영향을 미쳐서 나타나는, 원인이 있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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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생리대, 다음은?

  그냥 우연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책임자를 잘못 뽑았다고 한숨을 쉬는 사이에 문제가 또 터졌다. 이번에는 생리대.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몸에 직접 닿는 것이라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처럼 무슨 사건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사고가 너무 잦다. 사람이 만든 환경이 사람을 공격하는 인공 또는 문명의 ‘역습’. 장담하건대, 이름도 처음 듣는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뒤늦게 야단법석을 떨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때마다 행정 당국이 원망과 비난, 비판을 들을 것도 뻔하다.   주변에 있는 아무 생활용품을 들고 성분표시를 살펴보라. 따라 읽기도 어려운 처음 보는 화학명이 빼곡하다. 헥산디올, 카프릴릴글라이콜, 소듐벤조에이트…이 글을 쓰면서 우연히 옆에서 집어든 휴대용 물티슈에 표시된 성분 중 일부다. 게다가 ‘편백나무잎 추출물’이라는 ‘문학적’ 성분명이라니.   일부 성분만, 그나마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밝히지 않으니 효과든 위험이든 알 도리가 없다. 전문가라 해도 언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안심할 수 있을까? 크게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오염된 생리대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일이 생길 때마다 공포가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화학물질이 건강을 해칠 위험은 ‘과소평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세계보건기구 총회가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명시한 화학물질의 건강피해는 보통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크다(결의문 바로가기).   “2012년 기준으로 몇 가지 화학물질 때문에 사망하는 사망자 수가 130만 명에 이르고,…독성물질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이 193,000명으로 추정된다….중독 위험은 여성과 어린이 등 일부 집단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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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안전성 위기, 보건당국은 왜 안 보이나

  이번에는 달걀 차례인가? 이른바 ‘살충제 달걀’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만이 가득하고, 생산자는 경제적 타격이 크다고 아우성이다.   먼저 안전성에 대해. 우리는 2017년 8월 18일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내용, 즉 최근까지 나온 과학적, 의학적, 보건학적 증거를 종합한 판단을 믿고 싶다(☞관련 기사 : 의사협회 “살충제 계란 먹어도 독성 한달이면 빠져나가”). 이에 따르면 지나치게 걱정하고 동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급성’ 독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에 가장 민감한 영유아가 하루에 달걀 2개를 섭취한다고 했을 때도 급성독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장기간 섭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 조금 걸린다. 연구와 조사가 더 많이 축적되어야 안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니, 모든 걱정을 내려놓기는 이르다.   개인과 가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또한 의사협회의 권고가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문제없다고 검증한 것은 먹어도 된다. (…) 다만 정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고 발표된 계란은 가정에서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아직 정부의 검증과 보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살충제 성분을 모두 검사하지 않은 지자체가 수두룩하고 전수 조사를 하지 않은 데도 많다는 것. 달걀을 살 때 생산 농장을 구분할 수 있는 ‘난각코드’도 오류와 수정을 되풀이해 혼란을 보탰다. 의사협회가 권하는 대로 정부가 보증하는 달걀은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판단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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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케어’는 시작일 뿐, 더 큰 것이 남았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획기적인 것은 맞다(프레시안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바로 가기). 특히 국민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았던 비급여를 대책에 포함했다는 점이 그렇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언론 보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국민건강보험만 놓고 보면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보험(자발적으로 가입하는 민간보험 또는 사보험과 달리, 국민건강보험은 흔히 ‘사회보험’이나 ‘공보험’으로 부른다)만으로 의료 이용과 비용 부담을 해결하자는 기본 방향에 찬성한다(다만,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방향에 찬성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시민 누구나 경제적 부담 능력에 무관하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60% 초반(정부는 2015년 기준으로 63.4%라고 명시했다)에 머물러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으로는 빈곤층을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도 의료비의 두려움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정부가 집권 기간 안에 달성할 목표를 내놓은 마당에 보장성 강화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동의가 있다고 믿는다. 이 <논평>은 아쉬운 점을 짚고 의견을 달리하거나 찬성하기 어려운 점을 말하는 것을 역할로 삼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건강보험의 ‘정치경제’를 배제하거나 ‘탈정치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가장 걱정스럽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정치와 경제가 아니면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것 없이 가능하지 않은 일을 정책, 기술, 행정관리, 실무로만 접근하면 반드시 어려워진다. 첫째, 건강보험의 보장성 목표를 70%로 삼은 것에 대해 아쉽고 미흡하다는 반응이 많다. 대통령은 5년간 30조 6천억 원을 투입해 보장성 수준을 2022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이 영 부족하다는 것이다. 목표가 좀 더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도 불만스럽다(‘실무적’, ‘정책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적극성이나 불만, 선언이나 목표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 고민이다. 70%가 아닌 80%가 되려면 그만큼 재정이 더 필요하고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정부가 이런 정치적 부담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증세는 넓은 의미의 정치일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기 여야가 다투는 경쟁과 싸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적 지지와 세력의 문제에서 무관하지 않으니, 건강보험료 인상은 그 어떤 과학과 논리를 동원해도 정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건강보험료 인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행정부는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한국의 의료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시장’이다. 제도가 확대 지향이면 의료이용과 비용은 반드시 늘어난다. 행정관리만으로 3천 개가 넘는 병원, 60만 개에 가까운 병상, 3만 개에 이르는 의원의 ‘행동’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연간 1천 5백만 건이 넘는 입원, 14억 건에 가까운 외래 이용 하나하나를 무슨 수로 들여다보고 관리한단 말인가.   둘째, 병원이나 의사 등이 주도권을 가진 ‘의료공급의 정치경제’를 소홀하게 다루지 않아야 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비급여 대책. 정부는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핵심 원인 중 한 가지로 비급여를 꼽고, 꼭 건강보험에 넣지 않아도 될(비용이나 효과성 측면에서) 비급여까지 ‘예비 급여’ 제도 등을 통해 건강보험에 편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대해 의사와 병원이 반발하는 것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건강보험 급여에 대한 진료비(수가)가 낮아 비급여로 수입을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면 가격과 서비스가 모두 규제를 받고, 본인부담이 몇 퍼센트든 상관없이 수입이 줄어든다. 환자에게는 비급여가 의료 서비스고 비용이지만 의사와 병원에게는 곧 수입이다. 한국 상황에서는 특별한 경제이자 생활의 이해관계가 된 지 오래, 의료공급의 경제를 건드리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른 대안 없이 수입의 원천을 막으면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지금까지 건강보험의 경험이 아닌가? 정부는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장담할 수 없다. 모든 비급여를 급여로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완전히 미용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술이나 근거도 의심스러운 백옥주사, 마늘주사를 급여로 하는 것은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문제는 급여와 비급여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것. 명백하게 의학적 필요가 없는 비급여, 지금보다 이상하고 극단적인 비급여가 개발, 도입, 유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디 비급여뿐이랴. 의원이나 병원 수입에 도움이 된다면, 급여 안에서도 왜곡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수익이 문제라면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법을 왜 막지 못하냐고? 의료는 워낙 회색 지대가 넓어, 법과 규정으로는 옳고 그름의 경계를 정하기 어렵다. 윤리를 따져도 마찬가지다. 2주에 한 번 하던 검사가 열흘이나 1주일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늘리는 것을 무슨 근거로 기준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공명영상(MRI)을 언제 얼마나 자주 찍어야 하는지를 행정 지침으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옳은 의료와 그렇지 않은 의료 사이에는 넓은 틈이 존재하고 그 경계는 놀랄 만큼 희미하다. 결과적으로, 관료적 통제도 (서비스나 가격에 대한) 시장 경쟁도 수익을 찾아 움직이는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막기 어렵다. 비급여를 관리한다고 하지만, 의료 비용을 모두 감독,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담한다. 으레 나타날 의료인이나 병원의 수익 추구를 비난하는 ‘윤리화’ 전략도 정치경제의 측면에서는 말이 안 된다.   셋째, 건강보험의 의료 이용과 공급, 이에 따른 재정은 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한 요소다.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이용과 공급, 재정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필요하지 않은 데도 대학병원과 ‘빅5’ 병원을 찾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과잉 진료와 과잉 이용, 재정 팽창을 관리하기는 어렵다. 일차의료, 동네 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큰 병원 이용을 억제한들, 적자를 보지 않겠다고 목을 매는 병원들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막무가내로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비급여와 과잉 진료는 저절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방향에는 동의해도 감시와 처벌로 비급여와 과잉 진료를 통제하기는 어렵다. 비급여와 과잉 진료에 대한 동기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대학병원이 아니라 동네 의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인과 병원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문케어’가 내포한 세 가지 한계를 말했지만, 누군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변화를 제안하고 주도하는 정부의 고민이 가장 클 것으로 이해한다. 정부가 스스로 내놓은 제안의 한계와 그 성격을 왜 모를까. 의도적으로 ‘정책화’(정치화와 대비되는 말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해하는 것은 여기까지, 판단은 이제부터 갈린다. 정책으로 접근한 것을 이해하지만, 정치화를 하지 않고는 내놓은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겉으로 목표를 달성해도, 온갖 부작용과 왜곡을 동반하는 그야말로 서류로만 존재하는 성과로 끝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한다. 건강보험만으로 보면 우리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모든 것,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얽혀 있는데 한 가지도 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 시민이 동의하는 가운데 건강보험료를 ‘적정화’하는 데에,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는 데에, 왜곡된 의료와 시장 참여자가 새로운 체계에 연착륙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너무 조급하면 그르친다. 기초 체력이 허약한데 무리하면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는 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숫자로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진정한 ‘개혁’의 주춧돌을 놓는 것이라 본다. 근본 구조를 바꾸는 것은 바라지 못한다. 앞서 말한 한계가 곧 보장성 강화를 가로막는 조건들이니, 그것을 치우는 것이 핵심이다.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건강보험 재정, 급여와 비급여 정리, 일차의료를 포함한 의료전달체계, 민간의료기관의 구조와 역할을 논의해야 새로운 체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인다. 성과와 과실은 다음 정부가 가져가면 또 어떤가, 역사가 기초 작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기록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다시 건강보험의 정치가 필요하다. 많은 당사자가 알게 된 것은 다행이고 기회다. 이제부터 더 많은 시민이 이해하고 대안을 거론하는 데에 이르러, 그 개혁의 동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병원과 의료인 등 의료공급자 또한 이해하고 바꾸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하여 이해당사자 대부분이 받아들일 만한 구조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보험 개혁이 성공하려면 평범한 시민과 의료공급자가 우군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저항보다는 개혁의 동력이 충분히 더 커야 전진하고 성취할 수 있다. 정책, 관료체계, 행정을 넘어선, 건강보험의 (재)정치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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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집은 상품인가 삶인가?

  일부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이 다시 등장했다. 이른바 ‘8.2 부동산 대책’. 날짜를 박아 특정 대책의 이름을 붙이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집값, 부동산 대책이라니. 참으로 한국적 현상이 아닌가 한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그에 대한 반응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책을 반기는 쪽, 미흡하다는 쪽, 반대하거나 냉소하는 쪽, 모든 반응의 내용과 근거가 그리 낯설지 않다. 집과 부동산은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는 데다 워낙 고질적 문제이니, 그렇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판이다(이 점은 교육 문제와 비슷하다). 집값 문제와 대책의 자세한 내용은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지금 부동산 문제는 극도로 왜곡된 한국 경제와 시장, 삶을 반영하는 한국 사회의 기괴한 풍경일 뿐, 진정한 문제와 과제는 늘 은폐된다.     시대의 풍경은 렘브란트 시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만큼을 놀랄 만큼 닮았다.   …튤립을 팔아 한몫 챙겨보려는 장사치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값이 훌쩍 뛰어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중에는 서민들까지 집과 땅을 팔아 튤립을 사들였고, 튤립 가격은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고 치솟았다….(중략)…   튤립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품귀현상이 계속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민들은 더 이상 생업에 종사하면서 힘들게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튤립을 사서 비싸게 되팔면 손쉽게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도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 속에서 튤립을 찾는 사람은 더욱 늘었고, 또 다시 가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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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가 여가인가, 휴가의 사회적 차원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초반까지가 여름 휴가의 절정이란다. 길거리 식당과 가게도 드문드문 휴가를 알리고, 학원과 전자상가도 쉰다. 이 <논평>도 때맞추어 휴가를 다루기로 한다. 더 가치 있는 주제를 쉬고 틈에 가볍게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익숙한 말은 피하고자 한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 일한다느니, 적절한 휴식과 휴가가 필요하다느니, 이런 말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건강이 어떻고 생산성이 어찌 된다는 소리도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짜증스러울 것이다(궁금하다면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낸 글들을 참고할 것. 바로가기1 바로가기2).   휴가의 ‘정치경제’가 오늘 우리의 관심이되, 대체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이유를 둘러싼 것이다. 잠깐 살펴봐도, 이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대부분 겉핥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유라 해봐야 구구절절 따질 필요도 없이 상식이지만, 최소한의 격식은 갖췄다 할 정부 기관의 조사조차 안이하다. 7월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하계휴가 제약요인’은 이렇게 되어 있다(바로가기). “올해 하계휴가 여행계획이 있다는 응답자는 52.1%로, 국민 10명 중 5명은 하계휴가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 있는 것…(중략)…하계휴가 여행 계획이 없는 이유로 업무, 수업, 가사일 등으로 인한‘여가 시간 및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76.7%)’를 가장 높게 꼽음. 그 다음으로 ‘여행비용 부족(16.3%)’, ‘건강상의 이유(7.7%)’ 순”   여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비용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분리해 놓았다. 선택지가 모호한 것은 둘째로 쳐도, 여가와 휴가를 사회체제에서 분리하여 각 개인의 능력이나 제약, 선호로 해석한 것이 큰 문제다. 휴가는 노골적으로 ‘개인화’되어 있다.   휴가가 개인의

서리풀 논평

단기성과(실적)에 목매지 말라 – ‘치매국가책임제’의 경우

  한국에서도 유명한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만은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가 흔히 세 가지 명제를 활용한다고 주장했다(이근영 옮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①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 역효과 명제 ②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무용 명제 ③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 위험 명제 허시만은 200년 이상의 서양 역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논증했지만, 한국에서도 이 명제들이 작동한 예는 많다. 세금을 올리면 기업 활동(자유!)이 위축되고, 결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일부 주장은 전형적인 ‘위험 명제’다. 지금 시기, 허시만의 성찰을 참조하는 것은 유용하다. 아울러 ‘보수의 지배’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 명제들은 책상머리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공허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번역은 본래 제목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보수는 ‘반동(reaction)’을, 그리고 지배는 ‘수사학(레토릭, rhetoric)’을 옮긴 말이니. ‘반동의 수사학(레토릭)’ 정도가 저자의 의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레토릭’이 무엇인가? 굳이 서양의 수사학 전통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실’ 없는 레토릭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이든 글이든, 또는 이성이나 감성, 인성 그 무엇을 동원하든, 레토릭은 현실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반동의 레토릭’ 또는 ‘반동을 위한 레토릭’은 현실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하더라도 지배할 정도로 힘을 갖지 못한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현실과 레토릭이 충돌하는 중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그렇고 최저임금이 그렇다. 공무원 증원을 둘러싼 논란, 증세에

서리풀 논평

지방분권 논의, 너무 늦고 약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개헌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이다. 제헌절(바로 오늘이다!)을 활용하는 홍보 활동인지는 모르나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여론 수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정도 내놓았다. “대통령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에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제헌절을 기점으로 개헌 논의가 본격 추진돼야 한다.” (기사 바로가기) 개헌특위가 제시한 ‘국민참여형’ 개헌 논의의 방법과 일정은 이렇다.   △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국민대토론회 개최(8월말∼9월말, 11회) △ 누구나 개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국민개헌 자유발언대 설치·운영(9월∼) △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개헌국민대표 5,000명을 선발해 주요 쟁점을 숙의·토론하는 개헌국민대표 원탁토론(10월, 4회) △ 직접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국민을 위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홈페이지 개설.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과 부합하는 만큼(<서리풀 논평> 2017년 7월 3일, 바로가기, 우리는 국회 개헌특위의 이런 활동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이것만으로 ‘시민 참여’가 충분하다 할 수 없으나, 또 다른 주체들이 다양한 과정을 통해 보완하고 키워 갈 일이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여 무엇을 다룰 것인가? 건강권을 포함한 기본권 강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되풀이하지 않는다. 바로 2주 전 <서리풀 논평>에 기본권이 핵심이라는 우리 주장의 논거를 밝혀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 한 가지는 보태는 것이 좋겠다. 바로 며칠 전 국회의장실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3.9%가 헌법상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조사의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서리풀 논평

민주주의 강화, 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정책학자 길 월트는 장관에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소주의자, 정책선택자, 정책집행자, 정책 대사 중 하나라는 것(길 월트 지음, 김창엽 옮김, <건강정책의 이해>, 한울 펴냄).   “최소주의자는 부처의 기본 역할만 수행한다. 정책선택자는 똑똑한 일반인처럼 행동하면서 여러 정책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에 만족한다. 정책집행자는 관리자로서 해야 할 역할과 효율성에 모든 관심을 쏟고, 정책 대사는 일반대중과 만나 부처의 정책과 업무를 홍보하는 것을 주로 한다.”   더 중요한 내용이 이어진다. “공무원이 정보를 장악해 장관을 불리한 처지에 몰아넣은 다음,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느라 장관(그리고 책임이 있는 고위 공직자)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 장관은 생각보다(생각만큼!)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행정부 구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미 활동을 시작한 장관이 있는가 하면, 이제야 지명된 장관도 있다. 장관 이외에 책임 있는 공직자까지 포함하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있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무슨 큰 문제일까. 충분히 시간을 쓰는 것이 검증과 판단에 도움이 될 터이니 기다려도 된다. 행정부가 해야 할 정책과 사업의 방향을 논의하고 명확히 하는 기회가 되면 금상첨화다.   시간과 속도, 행정부 구성의 완결 여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심은 고위 공직자의 충원 구조에 대한 것이다. 위장 전입인지 아닌지, 제대로 인사 검증을 했느니 못했느니, 그 미시적 조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