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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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시대, 새로운 정의의 원리를 수립하자

  비정규직을 줄이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자본과 기업이 어떻게 하리라는 상황은 예상했지만,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반대한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특히 청년층 정규직이 강하게 반대한다니(☞관련 기사 :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 새로운 논란, 청년 정규직들 반발, 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느 회사 ‘정규직 전환 반대’ 포스터에 적혔다는 내용을 보면, 반대하는 이유와 심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공명정대한 공개채용 제도를 부정하는 특혜성 정규직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 정책인가요?”, “기준 없는 무분별한 그들만의 정규직화는 취업을 준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청년들에게 정규직 일자리가 돌아가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무수저 서민에게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입니다. 반칙으로 이뤄진 결과의 평등은 다음 번 당신의 기회를 빼앗을 겁니다”.  찬성과 반대를 넘어 먼저 안타깝고 답답하다. 정치와 경제 ‘구조’가 비정규 노동을 양산하고 온갖 고통을 만들어냈는데, 해결 과정에는 개인들이 분열하여 갈등과 긴장을 부담해야 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부담은 사회화”하는 이 시대의 교리, 그리고 개인까지 이를 내면화하게 한 교묘한 통치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갖가지 속사정을 모두 알기는 어려우니, 정규직 청년들의 불만을 일축하고 싶지는 않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것이 ‘공명정대한 제도’와 ‘기회의 평등’ 덕분이라 하지 않는가. 이제 이를 무너뜨리는 것에 스스로 성취한 것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와 역사가 구축한 ‘정의’는 이를 넘지 못했음을 절감한다.     일부 사정을 이해한다고 그들의 ‘반대’에 동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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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나누기, 이래도 되나

  며칠 사이 국회에서(그리고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통화에서 “의사, 간호사 인건비 지원과 수도권 헬기 한 대 도입 등을 위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212억 원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내년 중증외상전문진료체계 구축 예산, 즉 권역외상센터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8.9%(39억2천만 원) 줄인 400억4천만 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다 쓰지 못한 관련 예산이 100억여 원에 달한 데 따른 편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국종 센터장의 북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예산마저 줄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여야는 권력외상센터 예산 증액으로 화답했다.”(기사 바로가기)   한 언론은 이국종이 ‘활약’한 덕분이라 썼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기사 제목을 뽑은 사람은 예산 결정 과정을 제법 잘 아는 사람이 틀림없다. 마케팅이든 인맥이든, 하다못해(?) 공무원 ‘빽’이라도 있어야 예산을 딸 수 있다니 ‘활약’이란 표현이 딱 맞다.     광주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실린 이런 기사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시나 도 이름과 단체장 이름만 바꾸면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윤장현 광주시장,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 시·도 주요 간부, 시장·군수 등이 국회에서 상주하며 예산의 추가 및 신규 반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예산을 모르고 정치를 모르는 탓인지, 둘 다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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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환자 진료, 청와대 청원으로 해결될까?

  2~3년마다 벌어지는 응급의료나 중증외상환자 사단, 이번에는 귀순 북한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일의 경과는 따지지 않는다. 중증외상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을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밝혀진 것에 집중하자.   처음은 2011년 11월 ‘석해균 선장’ 사고였다. 당시 석 선장의 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중증외상 전문병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다음은 한국 사회가 늘 밟는 과정 그대로. 5년도 더 넘은 2012년 7월 9일 우리 연구소가 낸 <서리풀 논평>에서 일부를 옮긴다(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2016년까지 2000억원을 들여 전국에 중증외상센터 16곳을 설치한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 10월. 이 계획은 사실 역사가 있었으니, 2009년에 세운 응급의료 선진화계획을 고친 것이었다. 처음에는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 원을 투자해 외상센터를 건립하겠고 계획을 세웠다. 사건 이후에 내놓은 계획이 처음과 달라진 이유는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가 이미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는 으레 단골로 등장하는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낮게 나왔다는 것이 이유다….(중략)…그나마 복지부가 작년 10월 대책을 내놓은 이후에도 속도를 거의 내지 못했다. 지난 5월이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재정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지금 전국에 모두 16개의 권역외상센터가 지정되었고 병원 아홉 곳이 공식적으로 개소해서 운영되는 중이다. 이 수준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간단한 지표인 인력 현황만 봐도 아직 멀었다.     권역 외상센터의 전담 전문의 인력 기준인 20명을 채운 곳은 권역외상센터 9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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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격차>의 저자가 한국에 오는 이유

  11월 20일 마멋(Michael Marmot)이 한국에 온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이 분야 전문가나 겨우 이름을 알까, 연예인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그래도 무려(!) 기사 작위까지 받아 경(卿, Sir)이니, 아주 무명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책 저자로 더 유명할지 모른다. 최근 번역된 책이 <건강 격차>이고(책 소개 바로가기), 10년도 더 전에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가 출판된 적이 있다(책 소개 바로가기).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건강과 보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 불평등 전문가다.   그냥 연구만 하는 사람이면 이 분야에서 기사 작위를 받지는 못했을 터, 영국과 유럽, 세계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정부, 학계, 언론, 국제기구가 이 사람의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물론 역할을 하는 분야는 건강 격차와 불평등이다.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8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 불평등 위원회’(정확한 이름은 다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이 편할 듯하다) 위원장 일을 한 것이다. 그 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는 각 나라에 건강 불평등의 상황을 알리고 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유명하다(보고서 바로가기). 곧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니, 사정이 되면 전체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유감스럽게도 번역본은 없다).   2010년에는 잉글랜드 보건부가 의뢰한 건강 불평등 정책 평가를 주관하고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삶’이라는 보고서도 펴냈다(보고서 바로가기). 2013년 영국의 도시 코번트리(Coventry)가 ‘마멋 시(市)’가 되기로 선언한 것은 그와 그가 하는 일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 아닌가 싶다(기사 바로가기).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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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폭력’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불거진 성심병원 사례다(기사 바로가기).   소속 간호사들은 짧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선정성을 강조한 춤을 춘다. 이들은 이 같은 의상과 안무, 심지어는 표정까지 윗선으로부터 사실상 ‘강요’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재단 소속 한 병원의 중견급 간호사 A 씨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규간호사들이 장기자랑의 주된 동원 대상”이라며 “이들은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간호부 관리자급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유혹적인 표정과 제스처가 되는 지’ 등을 얘기 듣는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것, 병원에서 빈발하는 전공의와 하급자 폭력도 잊을 만하면 다시 터진다(기사 바로가기).   A교수의 전공의 폭행은 무차별적이고 상습적으로 이뤄졌다. 상습적으로 머리를 때려 고막이 파열됐고, 수술기구를 이용해 구타하기도 했다. 정강이를 20차례 폭행하거나, 회식 후 길거리 구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일 등이 수차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노골적인 신체 폭력은 폭로라도 할 수 있지만, 교묘한 폭력과 은폐는 관행, 개인 특성, 일탈, 일시적 감정, 내부 문제 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부터 어렵다(기사 바로가기).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3일 성명을 통해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일부 교수진의 상습적인 폭언, 폭력 및 성희롱으로 인해 전공의 2명이 동반 사직했으며, 남은 전공의들은 여전히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명백히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교수들의 태도 및 열악한 수련 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의 가해를 중단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군데도 아니니, 병원에 폭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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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의 진료정보 장사, ‘사고’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민간 보험사에 진료정보를 팔았다고 뭇매를 맞았다(기사 바로가기1, 바로가기2). “’표본 데이터셋’을 1건당 30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총 52건(누적 6천420만 명분) 제공”했다는 것이 핵심. “’학술연구용 이외의 정책, 영리 목적으로 사용 불가하다’는 서약서를 받았지만, 민간보험사가 ‘당사 위험률 개발’과 같은 영리 목적으로 자료를 활용하겠다고 신청해도” 자료를 주었다는 것이다. 학술연구용 자료만 줄 수 있다는 규정을 위반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6년 8월부터는 “정책, 영리 목적으로 사용이 불가하다“는 이용서약서 조항을 삭제했다니, 규정 위반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그러기로 했던 모양이다. 이 한 가지 일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에 건강정보 빅데이터를 팔아넘겨 보험사 이윤창출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국민의 건강정보 보호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옳다.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그리고 이 일이 전부인가 하는 점이다. 원인이 구조적이면, 비슷한 일은 이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고 심평원만 이런 것도 아닐 터. 결론부터 말하면, 심평원이 혼자서 뜬금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배후는 심평원의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를 훌쩍 넘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운동 등을 통해 가입자의 건강 상태가 좋아진 만큼 보험료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건강 증진 보험상품 설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보험사는 가입자가 건강관리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검증해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면 보험사는 약속한 혜택을 줄 수 있다….가입자가 실제 이런 노력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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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보건의료’

  문재인 정부가 건강과 보건 분야에서 무엇을 할지, 대체적인 구상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문재인 케어’로 표현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그리고 ‘치매 국가책임제’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끝이라고 하면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이것 말고도 계획이 많고, 아직 준비 중인 것도 여러 가지라고. 시시콜콜한 ‘작은’ 정책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허술한 정부라도 대통령 공약만 신경 쓰는 데는 없다. 그 많은 공무원이 그냥 놀고 있을 리 만무하니, 뭔가 열심히(!) 하고 있을 터.   그래도 진짜 중요한 것은 골격, 국정 원리가 아닌가? 아무리 많은 정책을 늘어놓아도 백년대계가 없으면 새로운 정권이라 말하는 의미가 없다. 정치는 현재와 일상을 관리할 뿐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개척한다.   적폐와 새로움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건강정책, 보건과 의료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확실하지 않으니 걱정스럽다. 이미 내놓은 브랜드인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는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것 빼고는 말하는 바가 많지 않다.     다른 것을 그대로 두고 보건의료의 ‘경제’를 바꾸자는 셈이어서 더 걱정이다. 있던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 복잡해져 고질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나 지역 보건을 강화하지 않고 건강보험 급여만 늘리면,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더 몰리고 동네 병원의 의료는 더 왜곡될 것이다.   그 중에도 오랜 숙원,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묵묵부답인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슨 실무나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은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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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론화위원회’도 가능한가? 필요한가?

    지난 20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권고 결정을 내놨다. 결과는 모두 아는 그대로다(기사 바로가기l). 건설 재개 쪽을 선택한 비율이 59.5%로, 건설 중단을 택한 40.5%보다 19% 포인트 더 높았다.   ‘탈원전 정책’은 지지하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자는 쪽이 53.2%, 유지하는 쪽이 35.5%, 확대하자는 쪽이 9.7%로 나타나, 축소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애초에 정부가 정했던 정책 방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다.   일반적인 평가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긍정하는 쪽인 것 같다. 과정을 주관한 위원회부터 ‘놀람과 감동’이라고 표현했고, 나아가 ‘집단지성’의 힘이라 자평했다. 청와대도 ‘값진 과정’이고 ‘또 하나의 민주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스스로 만족하는 것 아닌가 싶다.   발전소 건설과 탈원전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관심을 받게 된 ‘공론조사’ 방식에 주목한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실무적으로는,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비슷한 방식을 활용하자는 주장이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당장 정부부터 이 방식을 확대할 분위기다. 대통령이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에 관심이 큰 데다((기사 바로가기), 민감한 결정을 해야 할 정부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식이다. 결과론이지만, 이번 공론조사의 결정도 정부로서는 손해 본 것이 전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중요한 사안인데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시민, 소비자운동도 공론화에 관심이 크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민간의료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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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를 감시하자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은 국정감사 철이다. 2, 3일 지났을 뿐인데, 벌써 개회조차 못했느니 증인이 출석하지 않았느니 말이 많다. 남은 기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편 낯설고 한편 익숙한 풍경이다. 그 익숙함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매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니 어지간히 눈에 익었다. 첫째, 국회의원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는 일이라 모두가 눈에 띄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것이 지상 목표니 이해할 만하다.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만한 이벤트. 과거에는 종이로 차트를 만드는 정도였으나, 요즘은 슬라이드나 동영상을 비추는 것도 평범하다. 물건을 꺼내 직접 보여주거나 작동하는 단계를 지나 실험까지 등장한다. 바야흐로 ‘공연형’ 국정감사가 유행이라 할 것이다. 둘째, 일방통행과 동문서답의 질문과 응답. 참석한 모든 국회의원이 정해진 시간 안에 말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면 답은 들을 겨를이 없다. 앞사람과 겹쳐도 상관없고 이미 답을 얻은 질문도 그대로 반복한다. 답하는 쪽도 거기에 맞추어 정확성이나 내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셋째, ‘한탕주의’ 질문도 많다. 짧은 시간 안에 존재를 드러내고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되려면 눈에 확 띄어야 한다. 이상한 통계, 예외적 사례, 처음 드러나는 것 같은 비밀과 음모일수록 유리하면, 선정성을 피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조연’도 등장한다. 며칠 전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는 단지 에이즈 환자를 많이 봤다는 이유로 한 의사가 참고인으로 나왔다. 의사에 에이즈면 다들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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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해독에서 문해력(리터러시)으로

  한글날이라고 해서 한글이 우수한 문자라느니 세종대왕이 어쨌느니 하는 ‘의례’를 차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런 종류는 텔레비전의 습관성 특집 프로그램으로 충분할 것이다.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인종, 말, 문자, 전통과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면,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힌다고 믿지만, 막상 그 문자가 제 기능을 하는가도 썩 미덥지 못하다. 그 기능이란 개인적 또는 사회적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으로, 문자를 읽고 쓰고 셈하는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문해(文解, literacy)’라고 하는데, 그 기능이 충분치 않은 상태를 ‘비문해’라고 부른다(과거에는 ‘문맹’이라 했다). 문해와 비문해라는 말이 영 어색하지만, 다들 그렇게 쓰니 따르자.   한글이 그렇게 쉽다면 한국 사회에서 비문해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보통 교육이 확대되면서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비문해는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조사를 보면, 2014년 현재 성인 인구의 6.4%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고, 쓰고, 셈하기가 불가능’(수준 1)하다(보고서 바로가기).     이른바 ‘기능적 비문해’까지 치면 수가 엄청나다. 수준 1의 비문해에 ‘기본적인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 활용에 미흡’하거나(수준 2) ‘복잡한 일상생활 문제 해결을 하기는 어려운’ 수준(수준 3)까지 합하면 비문해율은 성인 인구의 28.6%에 이른다. 네 명에 한 명 꼴로 문자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능적 비문해율(문맹률)은 외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 통계로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최근에는 비교할 통계가 없어 확언할 수 없지만,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