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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는 대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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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결과 2015년~2022년간 출생미등록 아동이 2,236명 존재한다는 지난 6월 22일 보도 이후, 같은 달 30일에 출생통보제를 규정한 가족관계등록법이 도입되었다. 7월 13일에는 영아살해에 대한 처벌이 일반 살인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강화된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당정은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 병행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출산 후 영아를 방치 및 유기, 살해에 이르게 했던 ‘비정하고 무책임한 모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많았으나, 정부의 대책은 생활시설이나 가족센터의 강화만을 되풀이하며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에 비하여 최근 한 달 동안 진행된 형사적 처벌 및 공적 개입과 관련된 과정은 매우 급진전되고 있다.

 

위기의 임산부와 신생아를 보호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알리거나 출산을 감당할 수 없는 취약하고 긴박한 환경적, 경제적 상황에 처한 임산부에게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오히려 병원 밖에서 출산할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병원 출산회피에 대한 보완책으로 보건복지부는 보호출산제를 제안했다. 익명출산제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산모에 대한 임신지원과 병원 출산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친생부모와 분리되는 ‘기아’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한 후 입양 또는 시설보호 등의 아동보호조치로 연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과거 ‘고아’ 호적으로 해외로 입양 보내졌다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부모와 고향을 찾겠다고 오랜 시간, 먼 길을 거쳐 한국에 돌아온 해외 입양자들이 친생부모를 찾을 단서조차 없어서 겪고 있는 고통을 목도하고 있다(프레시안.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시리즈). 그런데 그런 실재하는 인간적 고통을 경감하려는 노력은커녕, 이제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개입하여 아이의 유기를 보조하고, 한 사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하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관점에서 쟁점이 되었던 2019년 4월 낙태죄 폐지 결정 판결문에서는 낙태죄가 ‘생명보호의 공익에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하여” 법익의 균형관계 달성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보호출산제 역시 태어나는 아이의 생명보호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두어 임신한 여성뿐만 아니라 이제는 태어난 아이의 사익까지 명백히 침해한다는 점에서 모자(母子)의 조화로운 기본권 실현을 저해하는 더욱 퇴행적이고 반인권적인 조치이다.

 

또한 우리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사망한 영아들의 숫자만큼이나 그 아이의 생모나 연루된 가족들 역시 아이들의 사망과 함께 사회적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영아살해를 저지른 여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을 겪는 등 말 그대로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에 묻는다. 어떤 여성들이 영아 유기나 영아살해 상황에 놓이는지 알고는 있는가. 영아살해 여성에 대한 처벌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로 영아살해 발생을 예방하는 입법효과를 가진다는 증거가 있는가.

 

2011년~2020년 10년 동안 국내에서는 영아유기 1,210건, 영아살해 97건이 발생했다(관련 기사). 같은 기간 출생아는 20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영아 유기 및 살해 건수는 약간의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출생 24시간 이내에 일어나는 신생아살해나 생후 1년 이내에 일어나는 영아살해는 한국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에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왜 이런 극단적 아동학대 현상이 발생하는지 알려진 바는 매우 적다. 소수의 연구에 따르면, 영아살해를 저지른 산모들은 대개 나이가 적고, 미혼이며, 교육수준이 낮고 가난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산전관리를 받지 못했으며, 파트너나 가족으로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독박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또한 가족폭력의 생존자거나 어린 나이에 부모의 별거를 경험하는 등 개인적인 삶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았다(Friedman S. et al., 2005). 열거된 사실들만 보아도 이런 처지에 놓였던 임산부들의 삶의 고통과 부담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이 겪어 내야 하는 가혹한 삶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사회경제적 개입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보다 훨씬 전 1935년 현대판 영아살해법을 제정한 영국에서는 ‘출산 후유증이나 수유후유증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정신의 균형이 흐트러진 경우” 영아살해 여성의 살인 혐의를 과실치사로 감경했고, 캐나다와 호주 대부분을 포함하여 20여 개국 이상에서 이러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Oberman M, 1996). 그동안 국내 사법부의 판단 역시, 영아살해에 이르게 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과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의 고통을 감안하여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왔다. 그러나 지난 13일 형법 개정안은 그 ‘참작할 만한 동기’를 인정하던 영아살해죄 마저 아예 폐지함으로써, 영아살해 상황에 처한 여성의 특수한 입장을 고려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영아살해를 줄일 수 있다면 각국 정부에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겠지만, 그 대신 아직 공중보건학적, 정신의학적, 사회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한 예방적 개입을 위한 더 많은 데이터와 지식을 쌓을 것이 권고되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에서 논의 중인 보호출산제의 모델인 ‘세이프 헤이븐 법(Safe Haven Law)’을 시행하는 미국에서도 신생아 살해 건수가 줄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아살해를 직접 규제하는 제도와 법률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누구나 알고 있다. ‘위기 상황’에 처한 ‘일부를’ 선별하는 ‘출산지원’ 정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전 생애 과정에서 포괄적인 성·재생산권을 보장받는 삶을 만드는 것이 해답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도적으로는 형법 제269조(자기낙태죄)와 제270조(의사낙태죄)가 폐지되며, 함께 효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모자보건법 제14조를 대체할 개정안을 빠르게 입법해야 한다. 낙태죄 폐지 판결 당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포함되려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실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빈곤, 장애, 청소년, 의료취약지 거주 등 다양한 처지에 놓인 여성과 가족들을 위한 성·피임교육을 비롯한 임신·출산 정보 접근성 강화, 의학적으로 안전한 임신중지 허용 기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위기 갈등상황에 놓인 이들에 대한 긴급 상담 등 보편적 성·재생산권리보장체계 마련이 우선이다.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임신 여성에게 안전한 병원출산을 조건으로 아이가 친생부모와 살 권리를 박탈하고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없애는 잔혹한 방법은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아울러 한부모 가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입양기관에 대한 지원만큼) 전폭 늘리는 것 외에도, 다른 모든 가족들에게 양질의 저렴한 보육을 제공하고, 모든 양육관계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며칠, 우리 모두는 일상적인 삶의 터전과 노동의 현장에서 수해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안타깝게도 많은 동료 시민들을 잃었다. 도처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권한을 주고 책임을 맡겼으나, 책임자들이 제대로 임무를 하지 못한 탓에 반복되는 희생을 막지 못했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생명에 대한 공동체의 책무가 어느 때보다 무거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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