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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된 땅, 빼앗긴 권리, 멈추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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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없는 감옥’에서 이제는 ‘집단무덤’으로 불리게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띠처럼 생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남쪽 라파에는 지금 북쪽에서 내려온 백만명의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라파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을 계속 공격하더니 지난 26일에는 난민캠프를 불태워 45명의 희생자를 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날의 사망자를 포함해 작년 10월 7일부터 6월 1일까지 최소 36,379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82,407명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도 이스라엘 극우 재무장관 스모트리히는 가자에 그치지 않고 “서안지구의 도시와 마을까지 폐허로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하고,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기아에 시달리는 가자 주민들에게 가던 구호품 운반 트럭을 공격하고 식량을 약탈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또 다른 배경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하여 영국과 독일 같은 국제 사회의 이스라엘 지원이다.

 

작년 10월 이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기습적으로 국가를 세운 1948년 나크바(Nakba) 이후, 주변국들과의 전쟁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공격,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폭력적인 정착촌 확대, 그리고 각종 검문소와 국경 내 국경, 완충지대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불능화시켜 온 76년은 바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의 역사이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2007년 이후의 가자 전면 봉쇄는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국가공동체로서 기능할 수 없도록 체계적으로 무력화시켰다. 가자 지구의 2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과 식량, 전력과 연료, 주거와 의료, 교육과 생계활동 같은 안전하고 존엄한 삶의 권리가 박탈된 지 오래이다.

 

전쟁은 무엇보다 중대한 공중보건의 문제이다. 역사적 경험과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분쟁이나 전쟁 상황이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지체시키며, 어떤 질병보다도 더 많은 사망과 장애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죽음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정도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는 장기적인 신체적·정신적 피해와 빈곤, 영양실조, 사회경제적 기능의 손실은 막대하다.

 

이스라엘군에 의한 병원 공습, 연료공급 중단과 인도주의적 물품공급 제한, 필수의료물품에 대한 봉쇄 등으로 인해 가자지구 의료시설은 파괴되고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의료붕괴와 식량위기로 인해 방치되고 있는 만성질환자나 신장투석자, 폐렴환자, 합병증이 있는 임산부 등에서 발생하는 예방 가능한 사망을 가자지구의 ‘조용한 살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어기고 전시 병원과 의료진, 구급요원까지 공격하고 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최신 보고에 따르면, 현재 가자지구 36개 병원 중 22개 병원이 서비스를 중단했고, 의료진도 490명 넘게 사망했다. 지난주 라파 공습으로 인해 5월 30일 이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기능하던 병원까지 문을 닫았다.

 

더욱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의 72%는 여성과 아이들이다. 한 구호책임자는 “수천 명의 아이들이 다양한 종류의 절단, 골절, 부상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평생 동안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은 모든 사람들에게 장기간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생애 단계의 초기인 어린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건강한 조기 아동발달과 양질의 교육이 생애 후반기의 소득과 교육,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감안하면, 전쟁은 후속세대의 건강한 발달을 저해함으로써 수년간 “사회를 불구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협적이다(참고문헌 1).

 

특히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다른 연령층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심리사회적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것이 20년 전에 학계에 보고되었다. 당시 여러 연구들은 어린이들이 총격 상황, 가족이나 타인의 사망이나 부상을 목격하는 외상을 경험하고, 이런 외상에 장기적으로 노출될 수록 심각한 수준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공격적인 행동, 학업성취의 어려움, 악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참고문헌2-4). 하지만 지금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이미 그 부모세대가 겪었을 고통 그 이상을 겪고 있다니 참담한 일이다.

 

5월 마지막 날,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3단계 휴전안을 공개하고 하마스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소식에 이어, 바로 그다음 날 가자 곳곳에서 이스라엘군의 또다른 폭격 소식이 전해졌다. 도대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을 멈출 뜻이 없는가. 설령 영구적 휴전에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땅에서 해왔던 모든 군사적 점령과 무력적 정착촌 확대 행위까지 즉각 중지할 것인가, 그리고 1948년부터 지금까지 쫓겨나기만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땅을 어디까지 돌려줄 것인가. 지금 이스라엘의 태도는 앞으로 분쟁이 멈추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과 분쟁을 끝내기 위하여 우리가 세계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민간인 대량학살 책임을 묻는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에 동참할 것과 다른 146개국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것, 그리고 유엔안보리 의장국이 된 기회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즉각적인 휴전촉구에 쓸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한국 기업에게는 전쟁에 쓰이는 한국의 군수품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한국기업의 상표가 붙은 불도저 수출을 금지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왜 이 전쟁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참화의 한복판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발리아(Jabalia) 난민캠프의 파괴상황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자지구 사람들은 가자지구가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라고.

 

폭격으로 잔해만 남은 집에서 혹은 그마저도 남아 있지 않지만 살아남은 가족들과 삶을 이어가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기 있는 한, 우리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이 겪어온 고통을 방치해 두었다는 미안함이나 학살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잔학한 폭격이 자행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난 76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질렀던 피로 얼룩진 점령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참상을 똑똑히 지켜보면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증언자가 되고, 이스라엘이 자행한 인종학살의 불의함을 곳곳에 고발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고통이 해결되고 삶의 존엄성이 회복될 때까지, 우리도 멈추지 않고 함께 연대하고 저항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참고문헌

  1. Goto R Frodl T, Skokauskas N. Armed conflict and early childhood development in 12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Pediatrics. 2021; 148e2021050332
  2. Sarraj EE. Qouta S. The Palestinian experience. In: Lopez-Ibor JJ, Christodoulou G, Maj M, editors. Disasters and mental health. Chichester: Wiley; 2005. pp. 229–238.
  3. Mousa F. Madi H. Impact of the humanitarian crisis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on people and services. Gaza: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ian Refugees in the Near East (UNRWA);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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