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9/4)에 열린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 계획안’이 확정됐다. 핵심 내용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명목)소득대체율을 40%에서 42%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다. 또한,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연령대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기대여명 또는 가입자 수 증감에 연동하여 연금 인상액을 조정한다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방안은 좀더 논의와 검토를 거치기로 했다.
국민연금, 정확히는 그중 노령연금이 갖는 기본 목표는 노후소득 보장이다. 그런데 지난 국회 연금특위와 공론화위원회에서 합의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안보다 더 보장성이 후퇴된 계획안을 정부가 제시한 것이다. 사실 올해도 소득대체율은 42%다. 2007년 연금개혁으로 이전 60%였던 소득대체율이 매년 0.5% 포인트씩 감소되는 중이었고 2028년에야 40%가 될 예정이다.
게다가 소득 수준과 가입 기간을 반영한 실제 수령 연금액은 평균 30%대의 소득대체율, 그리고 평균 급여액은 2023년 기준 약 6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35년이 경과했고 노인 다수가 연금 수급자가 됐음에도, 노인 빈곤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는 것이다. 2022년 기준,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무려 40.4%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저급여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가입기간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각지대 해소도 시급한 과제다.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보험료 부담이 큰 불안정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의 경우 납부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납부이력 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보험료 등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보장성 강화 논의보다는 재정 안정화에 더 중점을 둔 방향으로 연금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재정중심론이 우세한 까닭은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기금(이하 ‘연기금’)이 머지않아 바닥날 것으로 추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수 개혁을 통해 연기금 소진 시점을 가급적 늦춰야 한다는 데 진보·보수 언론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지배 담론으로 유통되고 있는 ‘연기금 고갈론’은 마치 훗날 연기금이 바닥나면 연금을 못 받게 될 거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제도 원리상 그럴 수 없다. 국민연금은 일정 수준 준비금을 보유하되 그 근간은 부과방식으로 운용되는 부분적립방식(법률상 ‘수정적립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때 부과방식이란 매달 보험료를 걷어서 연금을 지급하는 방법을 뜻한다.
즉, 국민연금은 대다수 국가들이 그렇듯 이미 부과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시중에 떠도는 것처럼 원래 적립방식이었다가 연기금이 떨어지면 부과방식으로 전환돼 미래 세대가 보험료 ‘폭탄’을 떠맡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연기금이 필요한 이유는, 급격한 인구학적 변화나 단기 유동성 충격이 발생했을 때 연금 지출 증가의 완충장치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준비금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지는 사회적 논의 사항이다.
이렇듯 부과방식 운용이 가능한 까닭은 가입자와 수급자 규모를 안정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향후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로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부당한 부담 전가로 보기 어려운 것은, 이들 역시 그 다음 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지속되는 한 특정 세대만 더 큰 부담을 지게 될 일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사회가 지속되는 한’이라는 전제다. 오늘날 특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미래세대 부담론’에 힘이 실리는 기저에는 바로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에 대해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절대 빈곤 대신 극심한 구조적 불평등을 물려받은 청년들은 이 사회가 내 삶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철저히 개인화된 각자도생 사회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인간다운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에 의무 가입하라는 국가의 요구는 부당하고 기만적이기까지 한 것일테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대 간 형평성’을 운운하며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 방안을 꺼내든 정부의 태도는 참 얄팍할 따름이다.
만약 청년들의 불만과 저항이 ‘연금을 거부할 자유’로 표출되며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이를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자유’를 회복하라는 요구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 국가가 청년들 눈치를 보는 듯 하면서도, 미래 세대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명분 아래 ‘다층노후소득보장’을 강조하는 시점에서,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축소하고 사연금 시장 확대와 연기금의 더욱 노골적인 금융자본화를 꾀하고 있지 않은지 철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올바른 국민연금개혁이란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적연금이 가진 소득 재분배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민연금은 자기가 낸 만큼 돌려받는 저축도 아니고, 보험도 아니다. 사회적 연대 차원에서 저소득층에게 보다 유리한 형태로 설계돼 있다. 우리는 이 기능을 강화하여 국민연금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더 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보험료 부과대상이 되는 소득의 규모는 전체 GDP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책정된 보험료 상한선 이상의 노동소득이나 자산소득, 법인소득 등 여러 소득원들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부과한다면 보험료율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득계층 간 재분배 효과의 강화도 함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금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연기금 고갈보다 더 큰 재앙은 불평등에 의한 사회적 연대의 고갈, 아니 사회 그 자체의 고갈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제갈현숙, 주은선, 이은주. 2024. 국민연금 가치 선언: 불안을 넘어 연대와 공존으로.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