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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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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전공의 파업으로 야기된 의료공백이 9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현시점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시민에게 ‘의료공백’이라는 용어는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 의미는 모호하다. 정부에서는 비상체제가 원활히 가동되어 ‘의료공백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대다수 시민은 의료공백으로 인해 의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까 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다소 추상적인 ‘의료공백’이라는 표현 하에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건강불평등의 관점에서 ‘의료공백’은 어떤 모습인가?

 

의료공백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오늘은 의료공급자 부족으로 야기된 의료공백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미국에서 의료 공급자 부족이 의료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논문이다(☞논문 바로가기: 의료인력부족지역의 의료이용과 의료비 지출).

 

미국은 만성적인 의료공급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관련 기사: 바로가기),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의료인력부족지역(Health Professional Shortage Area, 이하 ‘HPSA’)’을 지정하고, HPSA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게 다양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HPSA에는 일차의료, 정신건강, 구강건강의 세 가지 분야가 있다. 일차의료 HPSA의 경우 인구 대비 의사 비율, 연방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 영아 건강 지수(영아사망률, 저체중 출생률), HPSA 외부의 가장 가까운 의료기관까지의 이동시간을 기준으로 지정된다. 이 연구에서는 의료공급자 부족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일차의료 HPSA 거주 여부가 의료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일차의료 HPSA 거주로 인한 영향에 대하여 인구집단별 분석을 실시하였다.

 

HPSA와 비HPSA의 지역적 특성을 비교했을 때, HPSA는 도시 지역이 적고, 흑인 인구의 비율이 높고, 실업률이 높고, 기혼자가 적고, 저소득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HPSA와 비HPSA에 거주하는 개인의 특성을 비교했을 때, HPSA 거주자는 일반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나쁘고, 메디케이드 또는 메디케어 가입자의 비율이 높고, 무보험자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HPSA 거주 여부가 의료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HPSA에 거주할 경우 비HPSA 거주에 비해 연간 전체 의료기관 내원횟수가 5.0%, 의원 내원횟수가 5.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사람 수와 그 이용횟수가 모두 적어서 발생한 결과였다. 또한, HPSA에 거주할 경우 연간 의료비 지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HPSA 거주로 인한 의료이용 감소 효과의 크기는 인구집단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도시형 HPSA에 거주하는 노인은 다른 인구에 비해 의료이용이 크게 감소했지만, 농촌 지역 거주자의 경우 HPSA 거주는 의료이용을 유의하게 감소시키지 않았다. 이는 농촌 지역 거주자의 의료이용에는 의료인력 공급 외에 다른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도시 지역 노인 인구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의료인력의 공급이 개선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인종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 HPSA 거주는 흑인과 백인 모두의 의원 방문을 감소시켰다. HPSA에 거주하는 흑인의 연간 의원 방문횟수는 0.465회 감소하였고, 백인은 0.287회 감소하여, HPSA 거주로 인한 효과의 크기는 흑인에게서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HPSA 거주로 인한 영향은 히스패닉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히스패닉은 의료서비스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HPSA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낮은 의료이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흑인의 경우 HPSA 거주는 비HPSA 거주 흑인도 직면하는 의료 접근성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모두 의료접근성이 낮지만, 그들이 직면한 문제는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득의 경우, HPSA 거주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의료이용을 감소시켰으나 소득분포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보험 종류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 HPSA 거주는 다른 보험 가입자보다 메디케이드 가입자의 의료이용을 더 크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케이드 가입자의 경우 HPSA 외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HPSA 거주로 인한 영향에 더욱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HPSA 거주는 메디케어 가입자의 의료이용 또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HPSA 거주 여부에 따른 의료이용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의료인력 공급 부족을 넘어선 다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불평등의 관점에서 의료공백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HPSA 거주는 전체 인구에 대하여 의료이용과 의료비 지출을 감소시켰으나, 그 영향의 크기는 인구집단 간 차별적으로 발생했다. 기존부터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인구집단에 대하여 HPSA 거주의 영향은 더 크게 나타나기도 했고, HPSA 거주를 넘어선 요인으로 인해 접근성이 기존부터 크게 저하된 경우에는 HPSA 거주 여부의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의료공백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가장 취약한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전공의 파업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 실존해 온 의료공백은 무엇이 있을까(☞관련 기사: 바로가기1, 바로가기2). 모두에게 보건의료의 형평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꿔본다.

 

 

*서지 정보

McClellan C. B. (2024). Health care Utilization and Expenditures in Health Professional Shortage Areas. Medical care research and review, 81(4), 335~345. https://doi.org/10.1177/10775587241235705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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