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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황은 정신줄을 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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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4년 1월 15일자 (바로가기)

경제 불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000원 균일가 행사’부터 임금체불 문제부터까지, 일상에서 경제 불황의 심각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 상황들은, 당연히 우리 건강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경제 불황이 사람들의 우울 수준이나 자살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은 여러 차례 나온 데 이어 최근에는 인지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말하자면 경제 불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의 총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제 논문집인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 최근호에는 룩셈부르크 대학의 라이스트 교수팀이 유럽 11개 국가의 20대 이상 1만2000명을 대상으로 20~40대에서 경제 불황을 경험한 횟수와 이들이 50대 이후 70대에 이르기까지 인지능력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평가 항목은 단기 혹은 장기 기억력뿐 아니라 유창하게 말하는 정도,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능력, 계산능력 등 5가지 항목으로 측정했다. 여기에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의 요인들도 고려해 분석했는데, 예를 들면 교육 수준, 학생 때의 학업 성취도, 과거 직업, 건강 수준 등이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줬을 가능성이 있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출생 여부도 고려했다.

그 결과 남성은 40대 중반 이후에, 여성은 40대 중반 이전에 경제 불황을 많이 겪을수록 50대 이후의 인지능력이 감소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연구팀은 경제 불황이 일자리의 불안정성과 관계가 크고, 또 일을 한다는 것이 인지 활동을 자극한다는 점에 착안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먼저 남성들은 젊은 시기에 경제불황으로 일자리를 잃더라도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재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재취업을 하기 매우 어렵고 이에 따라 인지 활동을 자극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게 된다. 여성의 경우 경제 불황기에 직업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남성보다 훨씬 어렵다. 젊은 여성들은 우선 해고 대상자나 비정규직이 되는 등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기 쉽다. 재취업이 더욱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연구팀은 50대 이후의 인지능력의 향상 혹은 유지를 위해 젊은 여성들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노동 현장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남성 역시 중년 이후에도 재취업이나 생산적인 활동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시민에게 경제 불황이란 스스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경제 불황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게을러서 회사가 문을 닫았다거나, 소상인들이 부지런하지 않아서 가게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경제 불황은 이런 보통 사람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건강이 나빠지고 우울해질 뿐 아니라 반짝이던 눈빛마저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정부는 창조적인 해결책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들, 실업자들은 앞으로 병원마다 들어설 건강보조식품 매장에서 머리 좋아지는 약을 사 먹으면 된다고 말이다.

박지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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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Anja K Leist, Philipp Hessel, Mauricio Avendano. Do economic recessions during early and mid-adulthood influence cognitive function in older age?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doi:10.1136/jech-2013-202843 (바로가기)

*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

  • 김창엽 (2004) 경제위기, 빈곤 그리고 건강. 노동과 건강. 봄호 (바로가기)
  •  이상윤 (2009) 경제위기와 노동자 건강. ‘경제위기는 어떻게 노동자건강을 잠식하는가’ 토론자료.(바로가기)
  •  정혜주, 변진옥, 이광현 (2011) 경제 위기와 건강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묘사적 연구- 아세아연구. 54(2): 111-153. (바로가기)
  •  Philipa Mladovsky, Divya Srivastava, Jonathan Cylus, Marina Karanikolos, Tamás Evetovits, Sarah Thomson, Martin McKee (2012) Health policy responses to the financial crisis in Europe. WHO Regional Office for Europe and European Observatory on Health Systems and Policies (바로가기)
  • Lyn Winters, Sharon McAteer and Alex Scott-Samuel (2012) Assessing the Impact of the Economic Downturn on Health and Wellbeing. Liverpool Public Health Observatory Observatory Report Series No. 88 (바로가기)
  • l  Health, health systems and economic crisis in Europe Impact and policy implications drafts for review (2013) WHO Regional Office for Europe and European Observatory on Health Systems and Policies (바로가기)
  •  데이비드 스터클러, 산제이 바수 (2013)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불황, 예산전쟁, 몸의 정치학- 까치글방:서울. 안세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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