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두 살 동생 집어던진 아이,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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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이웅

장애인 활동 보조인, 작은 힘 vs. 커다란 책임

2014년 12월 3일, 부산 사하구의 한 복지관에서 발달 장애 1급인 19살 이 아무개 군이 2세 아이를 복지관 3층에서 1층 바닥으로 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비극적 사건을 놓고서 아이를 잃은 부모는 활동 보조인만 그 자리에 있었어도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활동 보조인이 옆에만 있었어도, 아니 가까운 거리에만 있었어도 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놓고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으며, 논란의 핵심은 정신 지체 장애인에게 과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활동 보조인이 없었다는 점이 더 중요한 문제이며, 이에 대해 활동 보조인 개인이 아닌 좀 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이와 같은 비극적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일 것이다.

사건 당시 활동 보조인은 다른 장애 아동을 돌보느라 자리를 비운 것으로 파악됐다. 발달 장애 아동 한 명도 돌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장애 아동을 돌본다는 일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달 장애 아동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아주 잠시라도 자리를 뜨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결국, 활동 보조인이 자리를 비운 표면적인 이유는 다른 장애 아동을 돌보기 위함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발달 장애 아동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가장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활동 보조인 교육 및 근로 환경 개선, 서비스 이용자-제공자 간 매칭 문제 등의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사회서비스관리원에 따르면, 2014년 1월 기준으로 활동 보조인(4만900명)과 서비스 이용자(5만2600명) 간 차이는 약 1만 명 정도로 추산될 만큼 서비스 이용자-제공자 간 매칭의 불균형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발달 장애인이나 지적 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요구를 바탕으로 활동 보조인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는 것이 필요하다.

스웨덴 욘코핑 대학교의 안나 카린 악셀손 교수는 2014년 <지적 장애 응용 연구지(Jouranl of Applied Research in Intellectual Disabilities)>에 중증 지적 장애 아동과 그 가족을 위한 활동 보조인의 역할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5세에서 20세 미만의 지적 장애 아동이 있는 6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통한 양적 분석을 실시하였고, 이 가운데 11명의 부모와 9명의 활동 보조인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한 질적 분석을 실시하였다.

주요 분석 결과를 보면, 먼저 지적 장애 아동을 위한 활동 보조인의 역할은 아이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는 등의 기본적 기능들을 대신하기(substitute basic functions), 여가 활동 및 놀이 등을 위한 일상생활 지원(support everyday life), 아이의 정서적·신체적 발달을 돕는 성숙 지원(support maturation), 가족의 일부가 되어주는 관계 지원(relationship support) 등 크게 네 가지로 제안되었다.

한편, 지적 장애 아동 가족을 위한 활동 보조인의 역할은 장애 아동 가족과 활동 보조인 간 서로에 대한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 솔직한 의사소통 및 책임과 존경을 보여주는 관계의 기술을 드러내기(exhibit relational skills), 그리고 장애 아동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의 수행(fulfill a function) 등 크게 세 가지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스웨덴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적 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이 원하는 활동 보조인의 역할에 대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활동 보조인도 연구의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활동 지원 제도 개선을 위한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과 관점은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원하는 활동 보조인의 역할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한 이용자 욕구 조사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제도 설계 및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욘코핑 교수의 연구처럼 발달 장애 아동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활동 보조인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중요하다. 발달 장애 아동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 보조인에 대한 고려 없이 연구가 이루어지고, 관련 법률이나 정책이 만들어 진다면(지금까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발달 장애 아동으로 인한 사고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활동 보조인의 역할과 책임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활동 보조인이 처한 현실은 여느 비정규직 혹은 시간제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활동 보조인의 책임과 역할의 무게만큼 그에 합당한 힘을 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 참고 자료

  •  Axelsson, A. K.(2014). The role of the external personal assistants for children with profound intellectual and multiple disabilities working in the children’s home. Journal of Applied Research in Intellectual Disabilities. 10: 1-11.
  • <활동 보조인의 교육 과정 개선에 관한 연구>(나영희·이복실·윤재영·김동기·이율희 지음, 한국장애인개발원 펴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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