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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세상 읽기] 가난을 모욕(처벌)하는 국가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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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되었다. 많은 시비가 있었으니 딱 한 가지, 학교급식은 허기를 면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일 그 이상이라는 것만 다시 새긴다. 밥 먹이는 것이 곧 보살핌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도 그리했으니,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을 상처가 같이 아프다.

그다음이 더 문제다. 경상남도는 급식 대신 공부시키는 데에 돈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선별복지가 맞다면서 ‘서민 자녀’ 중에 지원받을 학생을 고르는 중이다. 그래도 이런 소리는 듣기 싫었을까, “가난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자를 객관적으로 선정”하는 것이라고 보도자료까지 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어떤 방법이든 그 학생들이 ‘딱지’를 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무상급식으로 남겨 놓은 학생의 처지도 비슷하다. 아무리 부인해도 차별과 모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드러내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암묵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료급여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도 모욕을 당하게 생겼다. 복지부가 오는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의료급여 진료비용 알림 서비스’ 때문이다. 얼마 이상 많이 쓴 사람에게 진료비 총액과 의료 이용량을 경고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만든 모범 통지문의 내용은 이렇다. “귀하께서는 …에 대한 의료 이용량이 매우 높아 적절한 관리가 요구됩니다.”

이런 통지를 받고도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몇원까지 상세한 개인정보에다 으름장까지, 누구나 등골이 서늘할 일이다. 늘 따라붙던 ‘도덕적 해이’란 말만 쓰지 않았지, 필요하지 않은 병의원을 드나든다고 비난하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가 “사용하신 총진료비용은 ○○○원이며 이 중 정부(의료급여)에서 ○○○원을 지원”한다는 문구도 들어간다고 한다. 국가의 시혜까지 내세웠으니, 도덕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의 책임을 말하는 거리낌없는 차별이고 모욕이다.

국가가 가난의 낙인효과에 유혹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욕을 통해 가장 은밀하게 가난을 ‘처벌’할 수 있어서다. 소설 <주홍 글씨>의 낙인이나 명단 공개를 통한 망신주기가 약한 처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터. 가난을 모욕하는 것에 빗대면, 그것은 현재의 사회경제 질서와 요구에 순응하게 하려는 채찍이자 당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의 통치방법인들 가난을 모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개인에게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더구나 지금의 가난은 온통 사회경제체제의 틀에 좌우된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의 태풍을 맞은 농부가 왜 모욕을 받아야 하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5포 세대’가 되어야 하는 청년들은 또 어떤가.

가난 벗어나기가 보상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혀 놓았다. 착각하지 말자. 공부 잘하거나 출세한 사람, 큰 기업을 일군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능력과 노력, 지금의 처지에 상관없이 기본권을 가진다. 가난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부쩍 자주 떠오르는 일이, 오래되었는데도 눈에 선하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고 이름을 칠판에 적고 벌을 주던 모습. 복도에 세운다고 없던 돈이 생길까만, 모두 보라고 그랬을 것이다. 그때도 국가는 가난을 모욕하고 처벌했다.이젠 그만하자. 아무리 유혹이 강해도, 혹 그것이 국가 이성이어도, 이렇게 가난을 처벌하는 것은 복지도 정의도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 말에 그친다 한들, 또다시 가난을 모욕하지는 말라. 이미 충분히 힘들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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