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건강 감시’,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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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사례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테러방지법’과 국회의 ‘필리버스터’가 자극이 되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사례 1. 아동학대 예방

 

“출생 이후 시기별로 받아야 할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진료기록이 없으면서 국내에 거주하는 4~6세 영유아가 81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에 대한 부모의 의료 방임 등 학대가 의심되는 만큼 다음 달부터 가정 방문조사를 벌여 양육환경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점검 대상은 2010~2012년 출생한 아동 중 건강검진을 포함한 의료이용 정보가 없는 3천12명과 국가예방접종 기록이 전혀 없는 6천494명의 정보를 연계·분석해 선별했다.“ (연합뉴스 기사 바로가기)

 

사례 2. 정신건강 대책

 

“정부는 25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중독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한다.

내년부터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4대 중독 조기선별 검사를 해 고위험군을 선별한 후 지역센터와 연계하게 된다. 독거노인·노숙인·외국인노동자·기초생활수급자·신체질환자 등 취약계층도 중독 선별검사 대상이다.

현행 40대 이상 성인이 정기 건강검진시 시행하는 알코올 사용습관조사를 ’20대 이상’으로 확대하고, 직장과 대학교에 중독 선별검사 도구를 보급한다.“ (뉴시스 기사 바로가기)

 

사례 3. 이른바 ‘테러방지법’

 

앞의 두 가지 정책은 비슷한 때에 발표됐지만, 하고자 하는 것과 강조점은 조금 다르다. 하나는 아동학대 예방이 목표고, 다른 하나는 4대 중독을 조기 발견한다는 것이 목표다.

숨겨진 아동학대가 여럿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정책을 마련한 동기일 것이다. 4대 중독이라는 알콜, 인터넷, 도박, 마약도 진작부터 사회 ‘문제’였다. 많은 이들이 둘 다 무슨 조치를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먼저,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중독을 줄이는 일에 아무런 반대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사실 이보다 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어떤 곳에서는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개인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요인과 환경을 고치는 데에 집중하라.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고 보육과 학교 교육을 고치며 알코올을 규제하는 것 등(예를 들어 알코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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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달리 주의하는 것은 건강을 감시하려 하는 사회적, 시대적 징후다. ‘건강 감시’의 시대가 왔고 속도가 더해진다는 것을 지적하려 한다. 본래 건강을 보호, 증진하려는 (작은) 제도는 스스로 커지고 변화하면서 감시 도구를 장착했고, 이제는 (큰) 사회제도로 확장되는 중이다. 아동학대 감시 체계가 될 정도로.

개인 의료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는 것, 특히 국민건강보험이 그 일에 핵심 구실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하다. 한마디로, 모든 국민은 진작 ‘국가 정보’의 그물 안에 포함되어 한 발도 빠져나오지 못할 처지다. 사실 아동학대 감시도 새로운 차원이라 할 수 없다. 범죄자를 찾고 공직자의 자질을 보는 도구로 활용된 지 오래지 않은가.

이제 곧 국가 정보는 찾아내는 차원을 넘어 개인을 관리, 통제하는 환경, 그리고 생활양식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행동과 품행을 규율하고, 심지어는 우리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되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진다.

아동학대 감시 결과 ‘색출’된 사람 810명을 다음 달부터 방문한다고 하니, 국가 권력에 직면할 그 개인은 얼마나 놀라고 기가 막힐 것인가. 병원을 가지 않고 예방주사도 맞지 않았다는 것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니. 자료가 잘못된 것, 행정 착오, 건강보험 장기 체납, 제도 회피와 저항이 모두 포함되었을 것이다. 많은 내밀한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뽑힌 이유가 무엇이든 그 개인과 가족은 완전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진다. 그 개인, 그리고 소통, 상호작용하는 타인들은 어떻게 될까. 방문을 받은 개인은 (정책이 직접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새롭게 관리되고 통제되며, 여기에는 스스로 검열하고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동학대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도 병원을 찾아가고 예방주사를 맞을 것 아닌가. 아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이다. ‘감시 사회’의 본질, 이것이 진정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사례에서 보듯, 감시의 조짐은 의료이용 정보를 넘어 건강 그 자체에 이른다. 모든 제도적, 비제도적 기회를 동원해 4대 중독을 선별하면 어떻게 될까. 선별 결과는 ‘연계’되고 ‘통보’되고 ‘정보’가 된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결국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 이후 개인은 어떻게 스스로 행동을, 그리고 삶을 재조정하게 될까. 건강이, 아니 품행과 행동, 가치관이 관리되고 통제된다는 표현이 터무니없는 것인가. 한 기업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다음 경우는 ‘건강 감시’가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보여준다.

 

“금연을 강조해온 포스코는 혈액검사로 코티닌(니코틴이 대사된 후 나오는 물질)을 정밀 수치로 계량해 금연 성공 여부를 판별한다….금연 성공 여부가 인사고과 점수에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은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직원들에 금연과 다이어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업무 생산성과 직결되어서다. 직원들이 수시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옆 자리 직원에게도 간접흡연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기사 바로가기).

 

마지막 사례(이른바 ‘테러방지법’)는 모든 것이 더 직접적이어서 생략한다.

 

정보와 감시, 개입과 관리는 늘 아슬아슬하다. 혼자서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때로 공적 가치를 키우기도 하지만, 개인에 침입하고 구속하며 불안하게 한다. 자유와 자율을 침해하는 것이다. 앞서 사례로 든 정책과 법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의인화된 집단적 가치와 기술적 효율성이 감시의 위험과 불행을 덮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충돌하고 긴장하며 갈등하지만, 선택은 피할 수 없고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인 한. 내용과 정책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감시사회의 위험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위험을 알아차리며, 그 위험을 성찰하는 것이 우선 할 일이다. 그리고 지루하고 고단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아주 비효율적이다!). 민주주의가 그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내용으로는, 조금 추상적이지만 데이비드 라이언의 말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가 쓴 <감시사회로의 유혹> (후마니타스 펴냄),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디스토피아로서의 감시사회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육체를 지닌 개인들로 인식되는 곳, 추상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대면 접촉을 우선하며, 자동화된 분류보다 정의(正義)를, 기술적인 필요보다 공동의 참여를 우선하는 곳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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