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세계 여성의 날에 돌아보는 미혼모의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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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며칠 뒤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벌써 108번째 맞이하는 여성의 날이지만, 한국 사회 여성의 인권 현주소를 돌아보면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아 씁쓸하다. 특히 미혼모들은 한국 사회에서 많은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건강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희주 교수는 ‘미혼모의 의료 서비스 이용 경험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발표했다. 저자는 11명의 미혼모와 3명의 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실시함으로써 미혼모들의 임신과 출산 단계부터의 의료 기관 이용 경험 및 의료 전문가들과의 상호 작용에 대해 분석하고자 하였다. (☞관련 자료 : 미혼모의 의료 서비스 이용 경험에 대한 사례 연구

분석 결과, 우선 미혼모들은 의료 기관에서조차 부정적인 시선이나 비하하는 말들을 들었고, 이에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끼고 상처받았다.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입양을 보낼 줄 알았나 봐요. 양육 아니죠? 이러는 거예요. 제가 양육을 하는지, 애를 보내는지 알지도 못하시면서, 나이가 어리다고 다 입양을 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상처받았어요.” (참여자2) 

“산부인과 미혼모 전문의였는데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정조 관념이 없어서 아이 가졌다는 식으로. 자기가 산부인과 하면서 미혼모가 세상에서 사회악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요.” (참여자 5) 

“동네 내과에서 미혼모 되기 전에 갈 때는 상냥했는데, 미혼모 돼서 가니까 엄마가 뭘 아냐고 무시하고, ‘미혼모이고 아니고’에서 갈리고 ‘돈 있고 없고’에서 갈리고….” (참여자7)

참여자들이 병원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간호사들이 의료적 절차를 이유로 아이 아빠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었다. 특히 종합병원의 경우, 수술이나 응급 진료의 각종 동의서 서명에 필요한 ‘보호자’를 남편 또는 아이 아빠로 간주하였는데,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지 못할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해 미혼모라는 신분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참여자들은 심리적으로 부담감과 위축감을 느꼈다. 심지어 접수 과정에서 간호사들이 미혼모의 이름 대신 시설 이름을 부르거나 진료 기록지에 미혼모의 신상을 기록해 다른 산모들에게까지 본인의 신분이 공개되는 등 낙인 이미지를 받게 되어 수치심을 느끼는 경험을 하였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이들의 의료 접근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 참여자들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한 충격과 혼란 속에서 초기 산전 검사 시기를 놓치거나 출산 직전까지 제대로 된 산전 진찰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성홍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혼모 산전 진찰 횟수는 평균 3.27회로 일반 산모의 평균 진찰 횟수인 12.3회보다 현저히 낮다. (☞관련 자료 : 미혼모의 출산과 사회 복지 실태에 대한 고찰

특히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재가 거주 미혼모들일수록 혼자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출산과 관련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산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 미흡한 산전 관리는 병원 응급실을 통한 분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산전 관리가 부족했던 참여자들 중 일부는 이로 인해 미숙아를 출산하거나 여러 가지 질병문제로 신생아를 입원시키며 산후 관리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욱이 많은 미혼모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이러한 의료 접근성 문제를 배가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미혼모 양육 및 자립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혼모 중 62.3%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으며, 양육 미혼모의 평균 소득은 78만 원 정도로, 비슷한 조건의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소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미혼모들은 자녀 양육과 경제 활동을 양립하는 것의 어려움, 또는 사회적 차별 등으로 인해 취업이 어려워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의료 급여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응급실 이용과 같이 급여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부분들이 커 의료 이용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편, 연구 참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건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적절한 의료 이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하였다. 보건소는 지역 사회 거주 미혼모들에게 산전 관리부터 산후 서비스까지 광범위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지역 사회 보건 기관이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보건소 의료 전문가의 불친절한 설명과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들에 불만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짧은 답변만 들을 뿐이었다고도 했다. 

“아이 케어하는 부분에서 부족해서 보건소에 가서 제가 아이 치아가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더니 의사가 ‘그럼 잘 하세요’ 이러면서 반말 쓰시고…정보를 얻으러 갔다가 기분만 상하고 이럴 거면 병원 가지 보건소 왜 온 건지….” (참여자4) 

“보건소에서 제가 이른 둥이로 낳았으니까 12개월 케어해주고 방문해서 모유 먹이고 하는 방법 알려주겠다 해놓고 ‘미혼모입니다’ 하니까 지원이 나가지 않는데요.” (참여자11)

이처럼 미혼모들은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미혼모 본인과 자녀 모두 의료 기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진료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들로부터 차별적으로 대우받거나, 사생활 보호나 권리들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혼모들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 전문가들의 인식 개선과 더불어 다양한 제도적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논문을 통해, 의료 전문가들이 사회적 차별 속에서 출산과 양육을 결정한 미혼 임산부들의 심리 사회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진료 과정에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고, ‘의료적 절차’로 진행되는 일부 관행들이 의도치 않게 미혼모를 차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인식 및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혼모들의 의료 이용 문턱이 낮아질 수 있도록 지역 사회 미혼모 지원 기관들과 의료 기관 간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응급 출산이나 고위험 미혼 임산부들을 위한 임신, 출산 지원 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임신·출산·양육의 과정에서 여성은 ‘여성’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며, 국가와 사회는 어떠한 차별이나 배제도 없이 그 과정을 지원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 소외된 여성들의 자유와 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상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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