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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은 건강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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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 세입자 건강에 해롭다

[서리풀 연구通] “부동산 정책은 건강 정책이다”

김 정 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6.19 부동산 대책, 8.2 부동산 대책,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반 년 사이에 부동산 관련 대책이 벌써 3번 발표됐다. 정부가 이토록 부동산 정책에 열을 올리는 것은 현재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사회정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정된 토지와 주택을 소수가 독점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 그 소수는 불로소득을 향유하고, 서민들은 안정된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집’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이 더욱 심해진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표현도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러한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부동산 문제를 ‘건강’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주거환경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실내 공기, 냉난방, 수도, 소음, 습기와 곰팡이 등 다양한 요소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주택 가격 자체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까?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최근호에는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호주에서 주택 가격의 변동에 따라 주택 소유자, 대출을 끼고 있는 주택 소유자, 세입자의 건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했다 (☞논문 바로 가기).

 

학계에서는 주택 가격과 가구의 부/재산, 그리고 개인의 건강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인과 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첫째,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집주인의 경우 건강과 관련한 투자를 늘릴 수 있고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반면 세입자는 임대료가 늘고, 자기 집을 마련하기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둘째, 주택 가격 그 자체보다는 이와 관련한 지역의 편의시설 분포와 경제 전망이 주택 가격과 건강, 웰빙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첫째 주장과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평균적으로 수입 능력이 낮아지고 낮은 가격의 주택으로 밀려나는 반면 건강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높은 소득을 얻고 가격이 높은 주택을 산다는, 즉 인과관계의 방향이 반대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들 가운데 어떤 것이 현실에 가장 잘 부합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구진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의 <호주 가구, 소득, 노동 다이내믹> 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은 주택 소유자의 신체적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반면 세입자의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대출이 없는 소유자에게 관찰된 긍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같은 추세는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이외에 다른 건강관련 지표들에서도 확인되었다. 주택 소유자는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스스로 건강이 좋다고 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늘어났고, 비만도(체질량지수)는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같은 현상은 가구의 가장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성별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주택 소유자의 신체적 건강 향상은 주로 남성에서, 세입자의 신체적 건강 악화는 여성에서 두드러졌다. 세입자의 정신 건강 악화 역시 여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주택 가격 인상에 따른 주택 소유자의 신체적 건강 향상이 건강 관련 투자 증가와 건강 행태의 개선에 의한 것으로 봤다. 실제 자료에서도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주택 소유자 가장의 정기적 운동 실천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고, 집안 활동(home production)을 하는 시간도 늘었다. 이는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이나 다른 여가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논문은 주택의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주택 가격 그 자체가 어떤 건강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주택 가격의 상승은 집을 가진 사람, 특히 대출도 없이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만, 세입자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악화 요인이 된다. 더구나 이러한 건강 피해는 여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동안 여러 정부들이 경기 활성화를 촉진한다며 부동산 부양 정책을 펼쳐왔다. 바로 지난 정부에서도 국민들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등을 떠밀었다. 언론에 가끔씩 등장하는 파산 같은 파괴적 결과가 아니더라도, 주택 가격 인상은 서민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규제정책은 사회정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중요한 건강 불평등 정책이기도 하다.

 

  • 서지 정보

Atalay, K., Edwards, R., & Liu, B. Y. J. (2017). Effects of house prices on health: New evidence from Australia. Social Science & Medicine, 192, 36–48. http://doi.org/10.1016/J.SOCSCIMED.2017.09.00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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