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마멋(Michael Marmot)이 한국에 온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이 분야 전문가나 겨우 이름을 알까, 연예인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그래도 무려(!) 기사 작위까지 받아 경(卿, Sir)이니, 아주 무명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책 저자로 더 유명할지 모른다. 최근 번역된 책이 <건강 격차>이고(책 소개 바로가기), 10년도 더 전에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가 출판된 적이 있다(책 소개 바로가기).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건강과 보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 불평등 전문가다.
그냥 연구만 하는 사람이면 이 분야에서 기사 작위를 받지는 못했을 터, 영국과 유럽, 세계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다.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정부, 학계, 언론, 국제기구가 이 사람의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물론 역할을 하는 분야는 건강 격차와 불평등이다.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8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 불평등 위원회’(정확한 이름은 다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이 편할 듯하다) 위원장 일을 한 것이다. 그 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는 각 나라에 건강 불평등의 상황을 알리고 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유명하다(보고서 바로가기). 곧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니, 사정이 되면 전체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유감스럽게도 번역본은 없다).
2010년에는 잉글랜드 보건부가 의뢰한 건강 불평등 정책 평가를 주관하고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삶’이라는 보고서도 펴냈다(보고서 바로가기). 2013년 영국의 도시 코번트리(Coventry)가 ‘마멋 시(市)’가 되기로 선언한 것은 그와 그가 하는 일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 아닌가 싶다(기사 바로가기). 이 시는 2019년까지 도시 전체의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는 중이다.
이번 한국 방문기간 동안 그는 두 차례 특별강연을 할 계획이다. 한번은 서울대학교에서(안내 바로가기), 또 한 번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창립기념 학술행사 자리다(안내 바로가기). 내용은 다르지만 큰 주제는 여전히 건강 불평등이다.
그가 한 일과 한국 일정을 상세하게 적은 이유는 책이나 행사를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논평을 내는 목적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한 마디로, 한국도 더 미루지 말고 ‘건강 불평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분야 세계적 유명인의 한국 방문이 새로운 움직임의 ‘정치적’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건강 불평등은 한참 전부터 국제사회의 공통 과제였고, 이제 거의 모든 국가가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고 있다. 그렇게 된 배경은 짐작할 만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힘을 강화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건강과 보건에서도 계층간, 지역간, 집단간 격차로 날로 확대되는 중이다.
불평등 현상만큼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지역간 격차.
“지역박탈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의 회피가능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87.09명, 지역박탈지수가 가장 낮은 지역의 회피가능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84.88명으로, 두 지역 간 회피가능사망률의 절대격차는 인구 10만 명당 102.21명, 상대격차는 2.20배임”(논문 바로가기).
모성사망비는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 절반이지만, 제주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마강래 지음. <지방도시살생부>. 개마고원 펴냄).
얼른 구할 수 있는 자료를 동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 불평등의 현상을 드러내는 데이터는 곳곳에 차고 넘치며, 해석도 크게 어긋날 일이 없다. 추세는 뚜렷하고 일관되며, 이는 소득, 교육, 노동 등 여러 사회적 인자의 불평등에서 연유한다.
이런 불평등 현상에 대한 탐구는 모자라면서도 남는다. ‘인권 시장(human rights market)’이 형성된다는 분석을 응용하자면(논문 바로가기), 혹시 ‘불평등 시장’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할 정도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지만, 실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쌓인 지식도 여러 가지다.
그 어떤 지식도 완전하게 무력하지는 않으니, 건강 불평등은 이미 모든(!) 정부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건강수명 연장과 건강형평성 제고”를 목표로 제시한 지 10년도 넘었고, 2016년 개정된 지역보건법 시행령에는 “취약계층의 건강관리 및 지역 주민의 건강 상태 격차 해소를 위한 추진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새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도 빠지지 않았다.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및 예방 중심 건강관리 지원’ 과제의 목표에 ‘건강증진사업 확대로 계층·지역별 격차 완화와 건강수명 연장’이 들어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부’가 현상을 모르지 않고 해야 할 일도 일부는 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다음. 현상에 대한 이해 다음 단계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또 다른 한국적 현상이다. 형식적으로 목표를 세운 것 이상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고요하다. 거기에 그런 목표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정치인과 관료가 태반일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가면 공백에 무력감이 겹친다. 무관심하거나, 부인하거나, 지레 포기하거나, 떠넘기기 일쑤다. 그런 것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데, 실천을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 기술과 전략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의지’를 빼고는 나아갈 길이 마땅치 않으나, 이는 ‘촉구’와 ‘선언’을 빼고는 능동적으로 할 일이 별로 없는 영역이다.
더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넓은 의미의) 지식이 널리 퍼져 민심의 바닥을 흔드는 것이다. 정치든 정책이든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여러 사람이 건강 불평등에 관심을 기울여 행동을 촉구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 더 많이 말하고 더 높여 외치는 것.
마이클 마멋과 그의 책 <건강 격차>가 가진 영향력은 피케티와 그의 <21세기 자본>에 한참 모자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정치고 사회이며 문화인 것을. 건강 불평등을 정책 의제로 만들려면 지금부터라도 더 멀리 전파해야 한다. 말을 만들어야 여론이 생기고 요구가 만들어진다.
그가 할 말이 뭐 그리 참신한 내용일까,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처음 듣는다 할 것이고, 태반의 정치인과 관료도 익숙하지 않다 말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도 기회다. 노출되는 것, 불편한 것, 그것이 정치적 의제가 되는 첫 단계다.
건강 불평등을 ‘정치화’하는 데에 마이클 마멋의 한국 방문을 최대한 활용하자. 읽고 듣고 주장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