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방대한 건강 정보는 우리 생활 습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음주에 대한 인식 다시 생각하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한주성
흡연, 음주, 과도한 지방과 짠 음식 섭취, 비만, 운동 부족, 과로… 현대인이라면 최소한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이러한 생활습관들은 만성질환과 암의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 정보 덕분이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건강증진정책의 중요 의제가 되면서 학교 교육부터 대중매체, SNS까지 건강 정보가 흘러 넘친다. 어떤 생활습관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 정보가 널리 퍼져 있어도 많은 사람들은 생활습관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아마도 정보를 접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즉각 생활습관을 고쳤더라면, 이런 정보는 더 이상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사람들이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진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할까?
2017년 국제학술지 <비판공중보건(Critical Public Health)>에 실린 호주 아델레이드 대학 연구진의 논문은 (원문 바로가기) 음주 습관을 예시로 삼아 건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연구진은 음주가 암을 유발한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적당한 음주습관을 가졌다고 하는 18~65세 성인 남녀 38명을 모집하여 집단 면담을 시행했다. 면담은 ‘음주가 암의 원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술병에 붙어 있는 음주 경고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등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의 응답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참여자들은 암이 피할 수 없는 질병이라고 묘사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은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셔: 저는 또 하나가 목록에 추가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이스: 그럼 암을 유발하지 않는 게 뭐죠?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 자외선 차단제가 암을 유발한다, 아마 목욕도 암을 유발할 겁니다.
빅토리아: 모든 것이 암을 유발할 수 있죠.
참여자들은 ‘모든 것’이 암의 원인이며, 음주는 단지 또 다른 암의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암 유발 원인을 과장하면서, 부정확한 정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이 과장된 단어를 사용해가며 음주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은 그 메시지의 진위를 의심하기보다는 음주 습관을 바꿔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둘째, 참여자들은 자신의 음주습관을 ‘정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니엘: 저는 좀 다르게 마시는데요.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네트워킹하는 거죠. 저녁이나 공식 석상에서 모두가 술을 마시죠. 술은 대화를 쉽게 하고, 일반적으로 다들 그렇게 해요.
산시아: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알렉스: 저는 적당한 것이라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적당히 (음주)하는 건 괜찮아요.
참여자들은 음주가 사회생활에 필요하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기 쉽다고 생각했다. 또한 무책임하게 술을 마시던 젊은 시절과 달리, 현재는 책임감을 느끼며 적당한 음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음주 습관은 정상적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음주 습관을 ‘정상적인’ 것으로 표현하여,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는 지나치게 방대한 건강 정보가 오히려 사람들을 무력하고 헷갈리게 만들며, 자신의 음주 습관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는 술이 암을 유발한다는 인식이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언론과 보건 교육 등을 통해 음주와 암의 연관성을 알린다고 해도 호주 사례처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생활습관이나 위험 물질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너무 많고, 이를 모두 회피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술 하나쯤 더 추가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 방대하다 보니, 그 중에는 틀렸거나 질 낮은 건강 정보들이 뒤섞여 있고 이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적당한 음주는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정보가 워낙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음주가 암을 유발한다는 정보가 있어도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음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음주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거나 무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류 광고뿐 아니라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음주에 긍정적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빈번하게 그려지는 인간적인 음주 장면은 사람들이 술을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것으로 여기에 만들고, 여가로 술을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가기: 알코올 규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적당한 음주는 책임 있는 좋은 습관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암연구소(IARC)는 음주를 1군 발암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낮은 수준의 만성적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관련기사: 1급 발암물질 술, 담배보다 암 유발원인 인식 낮다.) 적당한 음주가 건강한 습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음주를 개별적 행위로 보고 개인에게 더 노력하라고 설득하는 방식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사람들은 음주의 위험성을 알아도 자신의 음주 습관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여기에는 개인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방대하고 불확실한 건강정보, 음주가 사회관계 형성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문화적 요인, 음주 문화를 부추기는 대중 매체와 기업 마케팅의 영향이 모두 작용한다. 따라서 개인들의 건강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홍수처럼 메시지를 쏟아내고 개인들로 하여금 알아서 대처하도록 하기보다는, 바람직한 생활습관이 더 쉬운 생활습관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 서지정보
May, N, Eliott, J, Crabb, S. (2017). ‘Everything causes cancer’: how Australians respond to the message that alcohol causes cancer. Critical Public Health, 27(4), 419-429. (https://doi.org/10.1080/09581596.2016.1235260)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 알코올 규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건강이슈 2012-1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