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약자가 배제된 참여, 불평등 악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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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연구통]  약자가 배제된 참여, 불평등 악화시킨다

‘살아남은’ 사람들만 조사하는 한계

 

푸른언덕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작년 말 참여연대와 무상의료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재인 케어’ 실행과 관련하여 비판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케어 의정협의체’가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의료계와 정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비판의 요지였다 (☞관련 기사 : “문케어, 의사 아닌 국민 포함 범사회협의체 필요”). 이에 앞서 국회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시민 참여가 매우 제한되어 있는 현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관련 기사 : “건정심 등 의료정책 결정기구 ‘대수술’ 필요”).

이렇듯 최근 보건의료정책의 결정이나 실행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지난 해 서리풀 연구통(☞바로 가기 : 민주주의, 건강에도 이롭다)에서 소개한 것처럼, 성숙한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시민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참여의 확대와 더불어 참여에서의 ‘불평등’ 문제도 함께 대두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각종 공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나 기회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득실을 뛰어넘어 공동체적 연대나 공적 가치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참여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직업이나 학력, 소득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사회정치적 참여에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에 실린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 연구진의 논문(☞바로 가기)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망률 격차까지 고려하면 참여 불평등은 더 심각해진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생존이 참여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죽게 된다면 그만큼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몫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살아남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참여 불평등 현상을 파악한다면, 불평등의 실제 크기를 과소 추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사회정치적 참여와 건강관련 변수들이 포함된 1995년 ‘미국중년건강조사'(MIDUS I study) 자료, 이들에 대한 ’10년 후 사망추적조사'(2005년) 자료를 분석했다. 연령과 사회경제적 지위, 미래(2005년 시점) 생존여부 등을 주요 설명변수로 하여 종속변수인 참여도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1995년 조사 당시 (2005년에도 살아 있을) ‘미래의 생존자 그룹’은 (2005년 시점에 사망 상태인) ‘미래의 사망자 그룹’보다 참여도가 1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향점수 짝짓기 방법을 통해 두 그룹 간의 건강상태, 즉 생존확률을 비슷하게 맞춰주었더니 참여 격차는 절반 이상(56%) 줄어들었다. 이는 미래의 사망자들이 사망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취약한 건강상태로 인해 정치참여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전체 표본을 (2005년의) 생존자 집단과 (2005년의) 사망자 집단으로 나누어 연령에 따른 참여수준 분포를 비교해 보았다. 사망자 집단일수록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참여도 낮은 이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생존자만을 따로 살펴보면 ‘그림 1’에서처럼 전체 표본에 비해 참여도가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들 생존자 집단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참여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생존자 집단과 사망자 집단을 각기 따로 분석한 경우, ‘그림 2’에서처럼 ‘연령-참여’ 패턴이 서로 ‘뒤집혀진’ 양상을 보였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참여수준이 높아지다가 중년에 정점을 찍고 이후 다시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령-참여’ 유형이다. 이런 선행 연구 결과와 달리 ‘그림2’의 사망자 집단은 오히려 중년 시기에 참여도가 가장 낮다. 이는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로 인해 악화된 건강상태가 참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즉,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조기사망은 스스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출할 수 있는 정치 참여의 기회와 몫을 감소시킴으로써, 현재의 불평등을 영속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의의는 사회경제적 사망률 격차를 참여도 설명 모형에 포함시켜 기존에 과소 측정된 참여불평등의 실제적 크기를 구체적으로 추정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서 건강불평등을 비롯한 각종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참여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자면, 국내에서도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 우대조치’ 같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고려해야 한다.

 

* 서지정보

Rodriguez JM. Health disparities, politics, and the maintenance of the status quo: A new theory of inequality.  Social Science & Medicine 2018;200:36-4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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