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논평] 국립 공공의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국립 공공의료대학이 생길 모양이다. 지난 11일 정부와 여당은 폐교한 서남의대 정원을 활용하여 전북 남원(서남의대가 있던 곳이다)에 이 대학을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2022년 또는 2023년에 학교가 문을 열게 된다.
우리 의견을 말하기 전에 몇 가지 반응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서로 다른 반응들이 국립 공공의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의과대학과 의사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정치를 압축해서 나타내기 때문이다. 과거사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이해관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상한 대로 대학이 들어설 지역에서는 환영 일색이다. 예상 지역인 남원을 비롯해 전라북도는 의과대학 신설을 ‘지역 발전’의 계기로 이해한다. 남원 시장이 했다는 말에서는 사뭇 비장한 결의까지 느껴질 정도다.
“서남대 폐교 이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노력해 왔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중략)…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전북도민과 남원시민, 정치권과 대학유치추진위원 등이 모두 합심해 국립 공공의료대학(원)이 빠른 시일내 설립·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자.” (기사 바로가기)
그동안 의대 유치를 경쟁하던 순천과 목포의 반응은 역설적으로 의대 신설을 통한 지역발전 논리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잘 보여준다. 대학 신설은 환영하지만 어느 지역에 둘지는 다시 논의하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기사 바로가기), 이번 결정과 상관없이 따로 의대 신설을 추진하겠다는 다짐도 보인다(기사 바로가기). 각자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에 의대가 들어서야 한다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고, 소속 정당의 정치 성향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의대 신설을 둘러싼 지역 정치다(논평 바로가기). 지방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지역 불평등이 심한 상태라, 의대 신설을 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동기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의사 수나 의대 신설만 유일하게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아닌 다음에야 비수도권 지역의 절실함을 이해하고 싶다.
의견의 방향은 다르지만,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의사 단체의 반대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논리는 몇 가지로 나뉘는데, 이미 의사가 많은데 의대를 더 만들면 의사가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점, 의사의 전체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지역 불균형이 문제라는 점, 서남의대 예를 보더라도 제대로 교육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 등이 반대하는 핵심 이유다(기사 바로가기).
의사 인력이 과잉 공급되는지 여부는 논쟁적이지만, 현재 시스템에서 의사의 절대 숫자보다 불평등한 분포가 중요한 문제라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분포를 개선하는 데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가운데 의사들은 시장 원리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충분한 수입만 보장하면 농촌이든 섬이든 의사가 가지 않겠느냐는 것. 현실이긴 하되 문제를 푸는 대안으로는 사회적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공의료대학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은 막상 정부·여당이 발표한 의대 신설 취지와 겉돈다. 정부가 제시한 대학 신설 이유에는 지역 발전이나 의사 수나 의사 배출 문제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그보다는 지방 의료인력 부족과 공공의료 공백을 핵심 이유로 내세웠다(기사 바로가기).
“당정은 지방 의료인력 부족 해소와 응급·외상·감염 ·분만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의료인력 확보를 공공의대 설립의 이유로 들었다. 공공의료에 종사할 인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함으로써 지역간 의료격차를 줄이고, 필수 공공의료의 공백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서로 비켜나는 의견을 주고받는 틈에, 그나마 한 시민단체가 내놓은 의견이 정부가 발표한 정책 목표를 제대로 시비하는 쪽에 가깝다(기사 바로가기). 이 의견의 핵심은 정부가 대학을 신설하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성명을 통해…“공공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을 재추진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하지만 정원 49명의 규모는 공공의료인력 양성이라는 취지에 턱없이 부족하고 2016년 정부와 국회가 이미 논의한 정원 100명보다도 부족한 수준이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공공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국립공공의대 정원을 최소한 3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 의견을 말할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국립 공공의료대학이 정부·여당이 발표한 공식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지방에 부족한 의사와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확보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지만, 공공의료대학 하나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정원을 크게 늘려도 우리의 전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공의대 신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이 대학이 공공의료와 필수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국가 책임의 상징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이 국가는 지방 정부도 포함한다). 아니 기대보다는 당위를 압박하는 것에 가깝다. 의사 인력뿐 아니라 다른 인력에 대해서도, 인력을 넘어 시설과 서비스, 제도와 정책에 대해서도 심기일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결국, 공공의대 신설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정치적인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정치적 측면의 또 다른 기대도 있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책무성(책임)이 국가와 정부 영역뿐 아니라 사회와 민간까지 넓어지는 것이다. 공공성이 강한 보건의료가 어떤 것인지, 어떤 의사가 그런 일을 하는지, 어떤 교육가 훈련이 필요한지, 사회는 이를 어떻게 지원하고 육성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 전체가 논의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가의 공공성을 넘어 사회의 공공성으로.
정치적인 것을 제외한 나머지 효과는 현실의 한계를 피할 수 없다. 비수도권 지방이 당면한 보건의료의 취약성은 의사 수를 좀 늘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응급·외상·감염·분만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필수 의료인력”을 확보해야 마땅하지만, 국립 공공의대 신설만으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한두 가지 정책과 사업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결은커녕 크게 개선하기도 쉽지 않다고 해야 정직하다. 어려움의 이유도 분명하니, 의사 인력을 비롯한 모든 인력, 시설, 돈, 행정 등이 얽히고설킨 문제가 아닌가. 시스템 전체가 잘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의대 신설이나 몇 군데 재정지원 사업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정치는 본래 해야 할 제 구실을 하라. 중앙 정부와 정치권은 “공공의료대학까지 만들 참이니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이 일은 시민과 주민에게 좋은 보건의료, 공공성이 높은 서비스, 그것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공성을 논의해야 한다.
모든 관련 당사자에게 당부한다. 설립주체가 누구인지 되새기면 ‘국립’ 공공의료대학도 정부 소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 일부 집단의 것도 아니어야 한다. 지역과 지역발전 논리가 득세해서도 곤란하다. 헌법에 명시된 그 ‘민주공화국’이 세우는 대학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립 공공의료대학은 하나부터 열까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진일보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 구축과 결합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제도로서의 공공을 넘어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큰 그림’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 보건의료체계라기보다는 ‘건강체제’의 공공성이 더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