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소득 불평등, 근본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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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논평] 소득 불평등, 근본 변화가 필요하다

 

 

불평등이 나빠지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아니, 남 일인 듯 평정심으로 말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다. ‘역대 최대’ ‘사상 최악’이라는 말이 서슴없으니, 저절로 이 시기와 시대가 어떤 때인지를 묻게 된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40%(1∼2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이 역대 최대로 급감했다. 반면에 소득 상위 20%(5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로 급증해 분기 소득이 사상 처음 월평균 1천만 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소득분배지표는 2003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악으로 나빠졌다.”(기사 바로가기)

 

자료를 낸 통계청의 해석은 이렇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퇴직가구가 1분위에 많이 편입되면서 1분위 소득이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기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용직, 40∼50대가 중심인 5분위는 임금인상 덕에 소득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저임금 인상 영향은 전 분위에 골고루 영향을 미치지, 특정 분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두고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없다는 한가한 논평이 대다수, 그중에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사사건건 실천한 논자들도 금방 눈에 띈다.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불평등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드물지 않다. 주로 경제 신문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가구원 중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을 경우 최저임금 상승이 전체 가구 소득을 높이는 데 긍정적이다.” 어떤 집의 어떤 아르바이트생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기에 불평등의 원인이 될 정도인지, 금방 이해하기 어렵다.

 

소득 불평등 문제가 중요함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왜 문제인지, 불평등이 심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 불평등은 모든 종류의 삶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달라지고 교육에 차이를 불러오며, 이 모든 불평등이 몸과 마음에 새겨지면 건강의 차이와 생명의 불평등도 피할 수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건조한 그 숫자는 현실로 번역해야 생명력을 얻는다. 멀리 갈 것도 따로 자료를 찾을 것도 없다. 내 주위에서, 지금 알바로 살아가는 청년들, 폐지를 모으는 노인, 마트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여성 가장의 삶을 보라, 어찌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날로 불평등이 심해지면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공동체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연대와 동질감은커녕 극단적인 각자도생이 삶의 원리가 될 것이 뻔하다. 이런 분열되고 파편화된 사회와 공동체는 다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환경으로 작용한다. 어디 공동체의 원리와 가치뿐인가, 어떤 이들이 금과옥조로 믿고 말하는 경제도 주저앉는다. 오죽하면 한때 첨병이었던 국제통화기구(IMF)까지 나서서 지나친 불평등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했을까(기사 바로가기).

 

불평등 악화가 분명한데도 정치·경제 권력은 딴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느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한다고 해야 하겠다. 이 시대 불평등의 정치경제란 그것이 핵심인지도 모른다.

 

먼저, 허위의 이데올로기가 된 지식에 주목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최저임금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난리다. 다수 언론이 주도하고 경제 관료가 맞장구를 치는 형국에, 과학이나 합리성보다는 아무런 인과성을 찾을 수 없는 짐작, 믿음, 선동이 난무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악화된 고용지표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이유를 찾는다. 올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며 가구소득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려 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늘어난 고용비용을 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메우고 있다”며 “그 타격이 고용이 불안정한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기사 바로가기)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용기가 놀랍다. 교수가 논문을 이렇게 썼으면 당연히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을 터, 지식이 아니라 의견이고 믿음이라 해야 한다. 불평등에는 관심도 없는 기업, 언론, 학계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뭉치는 것이 그다음 순서.

 

소득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단순화했으니 왜 기회가 아니겠는가, 몇십 년째 기승전결로 되풀이하는 주장이 이어진다. 뜬금없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비약하거나(기사 바로가기),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이 ‘더 완전한 시장’만 외치는 각종 성장론을 설파하는 중이다.

 

정부와 정치는 이를 바탕으로 삼아 다시 ‘시장 친화형’(사실은 기업 친화형) 정책을 쏟아낸다. 모두가 주어와 목적어를 숨긴 채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고 하지만, 기실은 소득 불평등을 가속하는 대책들로 일관한다. 막 사고를 친 최저임금법 개악이 대표적 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의결 강행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저임금 노동자 최소 30%가 임금 인상에서 피해를 보고 그 중 10%의 임금은 동결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중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2024년까지 절반 이상이 임금 인상에서 불이익을 본다는 분석도 나왔다.”(기사 바로가기)

 

이 정도면 보수 정치는 불평등 악화를 감수하는 계급 정치를 실천하는 중이라 할 만하다. 무엇을 목표로 누구를 위해 법을 개정하는가? 헌법에 정한 민주공화국은 허울일 뿐, 국가는 어떤 특정한 집단과 부류를 대변하는 ‘집행위원회’ 구실을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소득 불평등을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대로는 곤란하다. 시장 논리에 기초한 이상한 대안들은 들을 가치도 없지만, 현 정부가 내세우는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정책도 그것만으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 경험도 성공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좀 더 근본적 대안, 담대한 변화를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왜 기본소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가? 기본소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앤서니 앳킨슨이 주장한 ‘참여소득’이나 베르나르 스티글리르가 말하는 ‘기여소득’도 상관없다.

 

소득 불평등으로 한정해도 경계를 밀어야 할 상상은 기본소득에 멈추지 않는다. 기초연금, 사회적 일자리, 공공보건의료체계, 조세 등 구조를 바꾸어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 변화가 필요한 때다.

 

근본에 관심을 두는 한,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구체적인 정책 기술과 방법보다 불평등 논의를 시작하고 우리 사회의 공통 관심사로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야만적 수준으로 진입하는 소득 불평등을 이대로 둘 것인가? 저출산과 고령화에 저성장이 겹친 이 시대에, 어떤 사회경제와 소득 체제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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