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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논란과 계획되지 않은 출산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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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논란과 계획되지 않은 출산의 부작용

[서리풀 연구通] 낙태죄 폐지한 사례 살펴보니

 

김 선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지난 5일, 이번 정부 첫 ‘저출산’ 대책이 나왔다. 기존의 출산율 위주의 정책에서 ‘2040 세대 삶의 질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러나 구체적 내용은 기존 제도에서 범위나 금액을 확대·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지원’을 더 하면 낳을 것이라는 전제다.

정부 대책이 발표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덮어놓고 낳다보면 내 인생은 폭망한다”, “출산율만 중요하냐 내 생명도 소중하다”고 외쳤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대우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임신중단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철저히 인구조절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출산률이 높으면 낮추는 방향으로, 낮으면 또 높이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전 정부는 “낙태율을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며 ‘낙태 줄이기 캠페인’과 ‘낙태 안 하는 사회 환경 조성’을 ‘저출산’ 대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낙태 줄인다고 저출산 극복될까?”)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가 쉬워지면 낙태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들이 동네 편의점에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낙태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연구 결과들은 ‘임신중단 합법화 여부와 낙태율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임신중단을 결정하기까지 힘겨운 고민의 과정을 거치고, 일단 임신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낙태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안전한 임신중절을 필수적 의료서비스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보건경제학(Health Economics)>지에 실린 논문은 조금 색다른 관점을 제기한다. 임신중단이 합법화되면 실제로 낙태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출산의 결과는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과 우르과이 국립대학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우루과이에서 임신중단 합법화가 출산 결과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은, 2012년 12월 3일, 임신 12주 이내의 자발적 임신중단을 합법화한 우루과이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바뀐 법에 따르면,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은 3인의 보건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나야 한다. 위원회는 여성에게 처치의 위험, 대안적 선택, 출산 혹은 입양을 위한 사회지원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여성은 5일의 숙려 기간을 거친 뒤 결정을 내려야 하며, 임신중단을 결정하는 경우 약물(미소프로스톨)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임신 중단이 이루어진다. 비용은 보건부가 부담한다.

연구팀은 임신중단 합법화가 첫째, 계획되지 않은 출산을 감소시킬 것이며, 둘째, ‘선택적 과정’을 거쳐 전반적인 출산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자료원은 우루과이 주산기 정보체계를 활용했다. 이 자료는 임산부와 출생아의 특성은 물론, 임신의 특징, 특히 계획된 임신인지 여부를 담고 있다. 합법화 시점 전후 19개월씩, 총 38개월을 분석 대상 기간으로 삼았으며,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부인과 병원 15개의 자료가 포함되었다. 이들 병원은 해당 기간 몬테비데오에서 일어난 출산의 90% 이상, 전국 출산의 50% 이상을 담당했다.

분석 대상 기간 동안 임신 13주에 도달했던 사례들 중, 계획된 임신을 ‘대조군’으로,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처치군’으로 정의했다. 계획된 임신은 임신중단의 합법화 여부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반면,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임신중단 합법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이중차이분석을 방법을 통해 합법화 전-후 대조군과 처치군의 변화를 비교하여 합법화의 순수한 효과를 추정하고자 했다.

분석 결과, 예측대로 임신중단 합법화 전후 ‘계획된 임신’의 빈도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약간 증가했다). 그러나 계획되지 않은 출산은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여타 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계획되지 않은 출산의 감소 효과는 특히 20~34세, 중등 학력의 임산부에게서 두드러졌다. 이들은 전체 임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큰 집단이다 (그림 2). 한편 임신중단이 합법화된 이후 20~34세, 중등 학력 임산부들이 산전 관리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고, 아프가 점수(APGAR score)로 측정한 신생아 건강 상태도 유의하게 개선되었다.

그림 1. 합법화 전후 출산 수의 변화

▲주: 연한 선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 진한 선은 계획된 임신의 경우 (출처: Anton et al. 2018)

그림 2. (임산부의 연령과 학력에 따른) 합법화 전후 출산 수의 변화

▲ 주: 1) 왼쪽 열은 20세 이하, 가운데 열은 20~34세, 오른쪽 열은 35세 이상. 위쪽 줄은 초등교육, 가운데 줄은 중등교육, 아래쪽 줄은 고등교육. 2) 연한 선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 진한 선은 계획된 임신의 경우. (출처: Anton et al. 2018)

 

연구팀은 경제학자들답게 “출산의 양과 질을 맞교환(trade-off)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출산에 관한 여성의 의사결정은 두 단계, 우선 임신에 대한 결정, 다음으로 임신지속 혹은 중단이라는 결정 과정을 거친다. 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보다 많은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통한 ‘계획되지 않은 출산’의 감소(양)는 전반적으로 더 나은 출산 결과(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풀이하자면, 임신중단 합법화가 출산의 수적 감소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질적 측면에서 임신과 출산의 결과는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맞교환’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미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한 한국 상황에서 과연 임신중단을 합법화한다고 출산율이 더 떨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우루과이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단 서비스를 통해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산전 돌봄을 통해 다음 세대 아이들의 건강까지 보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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