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通]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면 어린이가 건강해진다
‘공식 돌봄’과 ‘비공식 돌봄’의 차이, 아시나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강화돼야
팥수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19년은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으로 언론과 정부는 ‘운세’까지 활용하고 있다.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재물운이 있고 뭐라도 다 좋단다. 그리 되면 참 좋기는 하겠는데, 지난해에 비추어 올해 태어난 아이들에게 갑자기 무슨 좋은 운이 따라 붙을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게 될 쯤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립유치원 비리가 일거에 해소된다는 소식을 혹시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작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로 적발된 1878개의 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그리고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해 △교비회계 수입 또는 재산을 교육목적 외에 부정사용 금지 △보조금 또는 지원금을 부당 사용할 경우 전부 또는 일부 반환할 것 △국가관리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사용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소위 ‘유치원3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끝내 법안 통과는 무산되었다. 비슷한 시기,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립한 사회서비스원의 업무에 ‘보육’이 들어가는 것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강하게 반발하며 저지했다. 이에, 시범사업을 하기로 한 서울시에서도 ‘보육’을 배제한 계획안을 수립했다가 시민사회와 학부모들의 더 큰 항의로 한발 물러섰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4개 광역시 시범사업을 거쳐 2020년부터 전국적으로 사회서비스원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자체 역시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린이는 국가의 미래고, 교육은 백년대계라는데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최근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실린 프랑스 소르본 대학 연구팀의 논문 “조기 아동돌봄 유형은 중기 아동기 정서와 행동 궤적을 예측한다”는 영유아 시기 아동 돌봄의 공공성이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바로 가기)
공식적인(formal) 조기 아동 돌봄은 아동의 인지능력, 언어능력, 학령 전 기술 뿐 아니라 학업 준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동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논쟁적이다. 어떤 연구는 학교 입학 전 엄마가 직접 돌보지 않을 때 행동장애가 늘어난다고 보고했지만, 또 다른 연구에서는 그러한 영향을 발견하지 못했다. 즉, 아동이 부정적 행동을 보인다는 증거가 없거나, 공식적 돌봄 기간이 매우 짧을 경우에만 부정적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연구들은 공식적인 조기 아동 돌봄의 긍정적 효과는 고위험 가정에서 자라는 아동에게 가장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연구들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는 다양한 돌봄 정책, 돌봄의 질, 아동의 행동이 확인된 나이, 아동 행동에 대한 보고를 부모가 했는지 교사가 했는지 등 여러 요인과 관련 있다.
이 논문은 선행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동 돌봄에 대한 보편적 정책을 가진 프랑스에서 아동 돌봄 유형을 직접 비교하고, 수 년 동안 아동 돌봄 유형에 따른 아이들의 심리, 행동 발달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 조사했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아동이 3세가 되면 공식적인 학교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다. 3세의 97%, 4세의 99%가 이러한 체계 안에서 공식적인 돌봄을 받는다. 그리고 프랑스는 3세 미만 아동을 위한 공식 돌봄 장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유럽 평균이 33%인 것에 비해 프랑스는 약 52%의 아동이 공식 돌봄을 받고 있다. 유니세프의 평가에 의하면 프랑스의 조기 아동 돌봄 질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아동 돌봄이 보편성 원칙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즉, 모든 아이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공식 돌봄에 접근할 수 있다.
프랑스 가정은 두 가지 유형의 공식적 돌봄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센터 기반 돌봄(아동의 약 27%)과 주정부에서 자격을 인정한 전문적인 ‘보모’에 의한 돌봄이 그것이다(아동의 약 49%). 보모는 자신의 집에서 2~6명의 아동을 돌본다. 아동 돌봄 비용은 주정부 보조금으로 보모에게 직접 지급되며, 두 가지 유형에 비슷한 비용이 지불되지만 교육 내용 측면은 약간 다르다. 센터 기반 돌봄은 일반적으로 보모가 제공하는 돌봄에 비해 좀 더 구조적이고 표준화되어있다. 센터와 보모는 모두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이용 가능한 장소의 수는 지자체마다 지역과 시간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센터 기반 돌봄을 더 선호하지만 센터 수가 제한되어 있고 시간 운영이 항상 유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가족은 센터기반 돌봄에서 보모 돌봄으로 바꾸기도 한다.
연구진은 프랑스 EDEN(Etude des Déterminants du de la Santé de I’ENFant) 모-자녀 코호트에 속한 어린이 1428명에 대해, 생애 첫 3년 동안의 돌봄 유형이 3~8세 사이의 행동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또한 공식적 아동 돌봄의 이용과 그 효과가 아동의 젠더, 엄마의 학력, 심리상태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도 확인했다.
연구에 참여한 아동 1428명 중, ‘공식적(formal)’ 돌봄을 받는 경우가 거의 70%였고, 부모나 조부모 또는 비정기적 베이비시터 등 비전문적인 돌봄자에 의한 ‘비공식’ 돌봄을 받는 경우가 29.8%(425명)였다. 공식 돌봄 중에는 보모에 의한 돌봄이 44.5%(636명), 전문가들이 고용된 데이케어센터나 어린이집(day nursery or creche) 같은 센터 기반 돌봄이 25.7%(367명)를 차지했다.
아동의 정서, 행동 특성은 강점·난점 설문지(SDQ)를 이용하여 3세, 5.5세, 8세에 3회에 걸쳐 측정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확인된 행동과 정서 문제(정서적 증상, 또래 관계 문제, 과잉행동/집중력부족, 행동 문제, 친사회적 행동)에 대해서 성향점수와 역확률가중치 부여 기법을 활용하여 공식 돌봄과 비공식 돌봄의 효과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비공식 돌봄을 받는 아동과 비교할 때, 센터 기반 돌봄을 받은 아동은 정서적 증상, 또래 관계 문제, 낮은 친사회적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더 낮았다. 보모가 돌본 아동은 높은 수준의 행동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센터기반 돌봄을 받은 아동보다 높았다. 또한 1년 이상 센터 기반 돌봄을 받는 것은 특히 정서적 증상, 또래 관계 어려움, 낮은 친사회적 행동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일한 유형의 돌봄을 받더라도 남아보다는 여아가, 괜찮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이득을 얻었다.
말하자면, 3세 이전에 센터 기반의 공식적 돌봄을 받은 경우, 특히 최소 1년 이상 공식적 돌봄을 받은 경우에, 중기 아동기(3세-8세)의 정서적, 사회적, 행동적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양질의 센터 기반 돌봄은 아동의 사회화와 인지발달 자극에 좋은 기회로 작동하고 이는 이후 아동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정서적 어려움을 예방하고, 장기적으로는 심리사회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에서 자격을 갖춘 교사에 의한 공식적 돌봄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해 제공된다. 그러나 프랑스와 비교할 때, 돌봄의 질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양질의 보육을 받을 수 있는 보편성 역시 크게 부족하다. 아동돌봄의 공공성이란 국가와 사회가 ‘아동 돌봄’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양적 측면 뿐 아니라 ‘질 관리’가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가장 저차원적인 비리조차 통제 못하는 한국의 돌봄 상황에서 수준 높고 보편적인 아동 돌봄의 질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누누이 지적하지만,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떠들기 전에 이미 태어난 한명 한명의 어린이들의 돌봄부터 챙겨야 마땅하다. 모든 아이들이 공공적이고 질 높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이 사회가 보장해야 할 아이들의 마땅한 권리이자, 이들이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요건이라 할 것이다.
- 서지정보
Gomajee R, et al., “Early childcare type predicts children’s emotional and behavioural trajectories into middle childhood. Data from the EDEN mother–child cohort study“,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18;72:1033–1043. doi:10.1136/jech-2017-210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