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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건강불평등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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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조국사태 블랙홀’이란 표현조차 이제는 식상하지만, 담론 지형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6일과 7일, 경향신문은 <서초동도 광화문도 아닌 청년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10개의 릴레이 기고를 연재했다. 그 중 하나, “나 곽빛나는 광화문도 서초동도 아닌 밀양에서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칼럼의 저자는 “외고도 자사고도 과학고도 없고, 하나 있는 대학교마저도 폐교될 위험에 처한”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단다. ‘지역소멸’을 앞두고 있는 밀양의 청년들은 “매일 회자되는 불평등 계급사회에서 아웅다웅 다툴 위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공화국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서조차 서울로 가야한다. 지난 8년간(!) 송전탑 반대 운동을 위해 수도 없이 서울행 새벽 버스에 오른 것처럼. 필자는 검찰 권한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밀양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고, 제2, 제3의 밀양송전탑 문제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남과 전남에서 태풍 타파, 미탁 피해가 속출하는 동안 서초동과 광화문 보도에만 열중하던 언론, 왜 이렇게 태풍이 많이 오는지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인지 관심도 대책도 없어 보이는 정치권, 송전탑을 지역에 내다버리고도 되려 지역을 배제하는 우리 사회 모두를 호명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건강 또한 지역불평등이 존재한다. 사회역학은 개인의 불건강과 질병의 원인에는 다시 그것의 원인, 즉 ‘원인의 원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의 원인’에 접근해야 한다. 어떻게?

 

비판적 건강정책 연구자들은 ‘왜, 어떻게’의 답이 정치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대표적인 이가 영국 뉴캐슬 대학의 클래어 밤브라 교수다. 어떤 장소들과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특권적 지위에 있고 다른 곳과 이들은 주변화된다. 이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 곧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권력이 누구의 이해에 의해 행사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밤브라 교수와 동료들은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건강과 장소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건강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의 ‘수평적’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수직적/구조적’ 요인, 즉 거시 정치경제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지역 건강불평등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으로 개념화했다. 장소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는 장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초과사망률에 대한 사례 연구에 기초하여 이러한 주장을 검증한다. 이 지역은 영국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 수준이 나쁜데, 심지어 탈산업화나 빈곤문제를 가진 비슷한 사회경제적 환경에 놓인 다른 도시들, 이를테면 맨체스터나 리버풀과 비교해도 여전히 조기 사망률이 30% 이상 높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통적으로 크게 두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첫째, 개인적 혹은 구성적(compositional) 설명이다. 예컨대 글래스고의 65세 이하 인구에서 초과사망의 절반은 알코올이나 약물과 관계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이곳에는 알코올이나 약물을 남용하는 사람들, 즉 건강행태가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그러다보니 지역의 사망률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건강 행태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리버풀이나 맨체스터와 비교했을 때, 글래스고의 흡연, 식이, 신체활동 실천율은 사망률 증가에 기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글래스고 지역에는 교육수준이 낮은 이들이 조금 더 많지만, 이것으로는 초과 사망의 극히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가설은 주민들의 특성이 아니라 지역 그 자체의 속성에 대한 설명, 즉 수평적 혹은 맥락적 (contextual) 설명이다. 이를테면 글래스고 지역에 강수량이 더 많고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비타민 D 합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초과사망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 이는 근거가 없었다. 또 다른 가설은 글래스고 지역이 맨체스터와 리버풀에 비해 주거 과밀율이 높고, 방치된 지역에 근접성이 높다는 점을 잠재적 원인으로 꼽았다.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것 자체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이는 이러한 환경을 야기한 구조적, 정치적 요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 개인들의 속성으로 환원하는 방식이나 지역의 맥락적, 수평적 특성에 기초한 접근으로는 지역 간 건강불평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연구진이 주창하는 정치경제적, 수직적/구조적 설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연구진은 글래스고 지역에서 이루어진 2016년 연구결과를 재분석함으로써, 주거와 도시화의 정치적 결정요인이 사실상 글래스고의 초과사망을 설명하는 핵심적 요인임을 확인했다.

첫째, 1980년대 영국 중앙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글래스고 지방정부의 대응은 맨체스터나 리버풀과 달랐다. 글래스고 지역의 정책결정자들은 도심 지역 개발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고, 이는 이미 취약한 이들의 건강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을 수 있었다.

둘째, 글래스고는 전후에 대규모로 빈민가 철거를 단행하면서 거주민들을 주변의 열악한 대단지 주거시설로 이주시켰다. 이 주택들 중 상당수는 고층 아파트였다. 동시에 지역 정책결정자들은 주거 유지보수에 대한 인구 당 투자를 훨씬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2017년에 목격한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셋째, 같은 시기 스코틀랜드 정부는 선별적인 ‘뉴타운’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쇠퇴하는 도시로부터 뉴타운으로 산업이 이전되고 근로가능인구도 이주했다. 글래스고 지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스코틀랜드의 정책 접근을 우선시하고 확대했다.

마지막으로, 특히 1980년대 스코틀랜드의 ‘민주주의 결여’가 글래스고 지역의 사회심리적 건강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다. 1979년 이래 영국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말 그대로 노동계급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었다. 보수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약했던 글래스고와 스코틀랜드 서부 지역은 더욱 불공정한 방식으로 표적이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경남 밀양은 지난 2018년 세종병원·세종요양병원 화재참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의사, 간호사를 포함해 총 62명이 사망하고 130명이 부상한 대참사였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 참사 의 기억이 아직 또렷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마침 2018년에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다행히도 인명 피해가 없었다. 여러 언론이 두 병원의 시설과 인력 차이를 보도했지만, 서울의 대형병원과 지역의 중소병원, 요양병원이 처한 구조적 현실의 차이를 다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왜 지역에는 중소병원, 요양병원이 (상대적으로) 많은가? 왜 그 병원들은 열악한 시설과 인력으로 운영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병원들은 노인들로 가득 차 있는가? 왜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는가?

세종병원이 있던 가곡동 주민들은 빨리 새로운 병원이 생기길 희망한다고 한다. 밀양에는 현재 요양병원이 4곳, 요양원이 18곳 있지만 노령 인구가 많은 탓에 동별로 요양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시민들의 요구다 (관련 기사: “밀양 세종병원 화재1년, ‘가곡동 병원 하나 생겼으면’”). 2015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간한 <2015 시도별 지역보건취약지역 보고서>에 따르면, 밀양시는 지역 내 보건의료 수요는 높지만 의료자원의 접근성과 건강수준이 낮고, 지자체의 재정여건도 열악한 이른바 ‘지역보건 취약지역’ 중소도시 상위 10위에 포함됐다. (관련 기사: “지역별 보건의료 취약수준 점수화했더니…시각화된 건강불평등”)

우리 연구소는 이미, 밀양의 화재 참사에 대해 인구 고령화와 지역소멸이라는 구조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새삼스럽지만, 지역 불평등의 역사와 정치경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 “지역 불균형 발전은 국가 존립을 배반하는 것”) 그렇다면 대안은? 단순히 병원 시설과 인력을 개선하는 것, 병원 하나를 더 짓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 중심의 삶터’를 만드는 것, 이는 ‘시민 중심의 삶의 정치’를 만들고 회복하는 것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주장한다. (관련 기사: “사라지는 고향을 되살릴 길은?” “6월 지방선거, 지방 살리기 아니라 사람 살리기”)

 

*서지정보

Clare Bambra, Katherine E. Smith, Jamie Pearce, “Scaling up: The politics of health and place,” Social Science & Medicine, Volume 232, 2019, Pages 36-42.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19.04.036.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27795361930236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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