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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받는 나이, 모두 똑같아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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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 기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작년, 영국에서는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남녀 동일하게 65세로 높였다. 스웨덴도 내년부터 61세에서 62세로 높일 계획이다. 한국은 출생연도에 따라 기준을 1세씩 높여가는 중이다. 1952년생까지는 60세에 연금을 받기 시작하지만 1953~56년생은 61세, 1957~60년생은 62세에 받는 식으로 해서 1969년생부터는 65세에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관련자료: 출생연도별 연금수급개시연령). 개인의 선택에 따라 최대 5년까지 일찍 받기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연금 수령액이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기대수명 증가와 관련 있다.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된 만큼 은퇴 시기도 늦어진다고 보아 연금 수급 시점도 미루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기대수명과 은퇴시기가 동일한 수준으로 늘어날까?

 

한국의 평균수명 82.7세, 법적 정년 기준은 60세이지만 모두가 같은 삶의 궤적을 밟는 것은 아니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작년 발표한 결과를 보면, 시군구 소득하위 20%의 기대수명의 평균은 72.4세에 불과했지만 소득 상위 20%는 88.6세로 무려 16.2년 차이가 났다(☞관련자료: 지역 건강불평등 현황). 생존 여부만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산출한 건강수명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벌어져 26.5년이다. 평균 수명과 법적 정년 기준에 근거한 단일한 연금 지급 기준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결과다.

이번 달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실린 영국 런던대 머레이 박사 연구팀의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연구진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단이 건강 문제 등으로 일찍 은퇴한다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집단에 비해 연금을 받기까지 더 오랜 기간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힘겨운 노후를 겪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사회계급에 따라 은퇴 후 사망까지의 기간, 다시 말해 ‘일 없이 살아야 하는 노후 기간’에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했다(☞관련 자료 : 직업적 사회계급에 따른 은퇴 후 사망까지의 기간의 불평등).

 

연구 자료는 영국 통계청의 종단연구를 활용했다. 연구 대상은 2001년에 50-75세였던 고령자 76,485명으로 10년 뒤인 2011년 시점을 기준으로 은퇴와 사망, 건강 등에 관한 정보를 파악했다. 사회계급은 은퇴 전 종사했던 직업에 따라 ①전문직, ②관리직, ③숙련비육체직, 숙련육체직, 부분숙련직, 미숙련직의 6개 집단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는 사회계급에 따른 출생과 사망 실태를 국가 공식통계로 산출해 온 영국 정부가 과거 50년 가까이 사용했던 것으로, ①에서 ⑥으로 갈수록 사회계급이 낮다고 본다.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계급이 낮을수록 은퇴가 빠르고 사망이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숙련직의 평균 은퇴연령은 여성 57.6세, 남성 58.8세로 같은 성별의 전문직 종사자보다 각각 2.1년, 3.2년 빨랐다. 또한 2001년 대비 2011년, 즉 10년 사이 사망한 사람들의 비율 또한 미숙련직 여성 18.2%, 남성 28.1%로 전문직(여성 11.0%, 남성 20.7%)에 비해 훨씬 높았다.

더불어 연구진은 사회계급이 낮을수록 일 없는 노후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미숙련 노동자의 은퇴 후 사망까지의 기간은 전문직 종사자보다 평균 3.9년 더 길었다. 건강, 나이, 성별, 교육수준의 차이를 고려한 모델에서 차이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지속되었다. 직업에 따른 사회계급 분류의 하위 3개 집단에 속하는 육체직 종사자(숙련·육체직, 부분숙련직, 미숙련직)는 비육체직(전문직, 관리직, 숙련·비육체직)에 비해 은퇴 후 사망까지의 기간이 최소 1년 이상 길었다.

 

종합하자면, 사회계급이 낮을수록 은퇴 시기가 더 빨리 찾아오고, 더 오랜 기간 일 없이 노후를 보내야 하며, 더 높은 사망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연금수급 기준 하에서, 낮은 사회계급의 사람들은 연금 없이 버텨야 하는 기간이 더 길고, 또 연금이 시작된 이후에 받을 수 있는 기간은 더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획일적 연금 지급 연령, 특히 개시 연령 기준을 높여가는 현재의 정책 경향이 낮은 사회계급의 노후를 위협하고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연구진은 육체직 노동자가 비육체직보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총 노동 기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즉, 획일적 연령기준은 육체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연금에 기여한 만큼 충분히 되돌려 받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당한 것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사회계급에 상관없이 건강을 유지하며 노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회 제도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건강 악화, 가족 부양 의무 등 부득이한 이유 때문에 노동시장에 남아 있기 어려운 사람들이 배제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래서 연구진은 사회계급에 따른 차이를 반영해서 육체직 노동자들의 연금수급 시작연령을 2년 더 낮추자고 제안했다. 아니면 연금 수급 시작 기준을 연령으로 하지 말고 노동을 해온 기간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진의 제안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은 ‘재정 고갈 위기’ 논란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재원이 바닥나서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서, 모두 각자의 몫을 지키기 위해 대립 중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세대 간의 불평등과 지속가능성 문제만이 아니라 같은 세대 안에서의 불평등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 모두의 기여와 연대를 바탕으로 노후를 함께 대비하고자 운영하는 연금이 특정 집단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면 이는 불공정과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된다. 게다가 현재의 국민연금은 저소득층의 주머니를 쥐어짜며 절약을 감행해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연금수령이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수급 같은 다른 사회보장 급여를 삭감시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관련 자료 :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젠 해결하자). 이런 맥락에서 오늘 소개한 연구는 연금의 기준이 사회 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좀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를’ 위해 ‘평등’하게 설계한 연금이 현실에서 ‘공평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끝)

 

  • 서지정보

Murray, Emily T., et al. “Inequalities in time from stopping paid work to death: findings from the ONS Longitudinal Study, 2001–2011.”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1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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