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다양한 정신보건 ‘운동’을 환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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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과 정신보건을 둘러싼 시도와 노력이 점점 더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또한 환영할 일이다. 정신보건이 과제로 해야 할 일의 폭이 넓고 관련자도 적지 않으므로 피할 수 없는 경향이며, 또한 발전이다.

지난 주말(26일), 서울에서는 제1회 ‘매드 프라이드’ 행사가 열렸다(기사 바로가기).

“‘매드 프라이드’란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신장애인과 지지자들이 모여 정신장애인들이 배제당하고 차별받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대중운동이자 축제다.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매드)를 당사자가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언어로 되찾고, 이러한 정체성에 자부심(프라이드)을 느끼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기사 바로가기)

오는 11월 7~8일에는 ‘당사자 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 개혁과 대안을 위한 전국대회’가 열린다(기사 바로가기 ). ‘당사자’를 강조하면서 주최하는 쪽이 밝힌 이 행사의 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활성화되기 시작한 당사자운동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당사자의 역량을 강화하여 정신건강서비스를 개혁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음. 전국대회를 통해 의료모델에 따른 기존 정신건강서비스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당사자 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환경 조성에 기여하고자 함.”

 

정부 내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 언론 보도를 참고하면, 보건복지부가 현재의 정신건강정책과를 한 단계 올려 ‘정신건강정책국’ 신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정부 정책의 관심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 조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난 4월 조현병 환자가 벌였던 진주 참사의 원인을 복기하면서 현행 정신건강정책과를 국 단위 부서로 확장해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관리할 실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복지부 내부에서 힘을 얻은 것이다. 정신건강정책과는 △정신보건 △알코올 등 중독자 치료 △자살예방 사업 등을 맡고 있다. 그간 예산은 물론이고 인력도 부족해 정신질환자들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이들 모두가 어느 것 할 것 없이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은 이렇게 나아간다. 환자, 가족,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자, 여러 실천의 활동가와 지지자, 연구자와 전문가, 정책 당국 모두가 각자 그리고 힘을 합해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당사자’의 시각과 역할이 커지고 또 그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추세를 환영하고 지지한다. 우리는 건강 문제 또는 이와 관계가 있는 정책과 사업에 ‘사람 중심’의 관점을 강조해 왔다. 정신건강 또한 마찬가지, 전문가나 정부 당국의 시각은 늘 ‘사람들’과 만나고, 협력과 함께 긴장 관계에 놓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 다가올 미래가 더 중요하다. 정신건강과 보건은 사회적으로 점점 더 큰 관심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이 직접, 간접으로 연관될 것이다. 정부의 조직 개편 논의에서 드러나듯, 정신건강과 정신보건은 사회화, 정치화, 경제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신건강과 정신보건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원리를 지향해야 하는지 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틀’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신보건이 주로 ‘사회문제’의 형태로, 예를 들어 강제입원과 인권침해, 사고, 자살 등을 통해 의제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원론적 지향’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첫째, 사회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정신건강과 보건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져야 한다. 조현병 등 상대적으로 ‘중증’ 정신질환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할 수 없으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가벼운’ 정신건강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중증-경증이라는 분류가 주로 치료를 기준으로 한 것인 만큼, 정신건강과 보건은 증상이 중한 정도(중증도) 그 이상이어야 한다.

모든 사회문제를 정신건강 문제 또는 질환으로 보자는 뜻이 아니다. 노인의 불안, 수면장애, 우울감, 약물남용, 알코올 의존을 (자살 등 좀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코 사소한 문제라 할 수 없다. 청소년과 학생의 스트레스, 여러 행동장애, 불안, 공포 등은 또 어떤가. 지금까지 정신건강은 어느 사회에서나 신체 건강보다 중요성이 덜 했던 것, 시급한 과제와 아울러 ‘보편적 정신건강’ 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의료 모델이 정신건강을 독점하는 사태를 경계한다. 주로 중증 정신질환에 대해,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의학적 개입의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것이 ‘의료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단지 치료 시설 위주의 입원 치료만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다(지역사회 재활도 의료 일변도가 될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적 방법이 많지 않다고 해서, 청소년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단기적 방법이 없다 해서, 약물과 의학적 개입에만 의존하는 것은 곤란하다.

 

셋째, 정신건강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 능력에 무관하게 적절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사회적인 것에 포함되지만, 이른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측면에서 정신건강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영국과 그리스의 긴축 정책이 정신건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상식이다. 온갖 차별과 오명(스티그마)은 또 어떤가. 성차별을 빼고 여성의 정신건강을 설명할 도리가 없으며, 노인 빈곤은 자살의 핵심 이유다. 학교 교육과 입시 경쟁이야말로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아닌가.

다시, 건강권이라는 관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슨 지표가 OECD 1등이어서, 비용이 많이 들어서, 사고가 자주 나기 때문에, 국제기준에 어긋나서, 이런 이유가 아니다. 정신건강은 환자를 포함해서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자 건강권이다.

 

기본권으로서의 정신건강, 이 권리를 충족할 의무는 누가 져야 하는가? 새삼 대답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니, 굳이 따로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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