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⑩] ‘치료와 돌봄’공간에서 골병드는 병원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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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병원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공간이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있을까? 정말이지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티던 인턴 시절의 경험과 한국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했던 연구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인턴을 하던 시절 나는 생리통이 무척 심했는데, 생리휴가(공식명칭 보건휴가)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는 근무환경에서 나는 사탕 까먹듯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타라신 주사를 맞아가며 생리 기간을 버텼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인턴의 근무 계획표는 가히 살인적이었고, 이런 업무 강도는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방에서 생활하던 네 명의 인턴 모두가 생리불순을 겪었던 것은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체로 규칙적이었던 생리 주기가 흔들리고, 연달아 힘든 과를 돌던 시기에는 무월경이 생기기도 했다. 하긴 일주일에 백 시간 넘게 일하는 여성들에게 생리불순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인턴 시절을 마지막으로 병원을 떠났지만, 병원에서 가장 오래 또 많이 일하는 전공의들의 건강과 근무환경은 내 연구주제가 되었다. 2014년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주 평균 93시간을 일했고(인턴 평균 116시간), 한국의 다른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세 배에서 스물두 배까지 높은 수준의 근골격계 통증과 수면장애, 우울감을 안고 살고 있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 일하면서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 성폭력을 경험한 전공의도 각각 11.4%, 44.4%, 14.1%(여성)으로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김새롬, 김자영, 김승섭. 2015). 물론, 다행스럽게도 수련을 마치고 난 이후 의사의 객관적 건강 수준은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훨씬 높아서, 모든 원인에 의한 표준화 사망률이 일반 인구집단의 0.47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유철, 강재헌, 김철환, 2005).

(라포르시안 2020.09.16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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