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뭄에 웬 파업?” “월드컵 앞두고 웬 파업?” “지진에 웬 파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마다 보수언론들이 뽑아내는 기사 제목이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파업해도 괜찮은 날을 찾기란 ‘손 없는 날’로 이삿날 정하기보다 백배 더 힘들다. 날씨와 자연재해, 국제 행사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가 호황이면 찬물을 끼얹을까 봐, 불황일 때는 경기를 악화시킬까 봐 조심해야 한다. 헌법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명시되어 있지만, 아무리 ‘합법적’ 파업을 해도 “시민의 발을 볼모로” 따위의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사용자 측의 회유와 협박, 폭력적 진압, 손해배상 가압류 조치도 드물지 않다. 파업으로도 안 되면 노동자들은 고공 철탑에 올라가고 단식, 삼보일배를 한다. 그렇게 해도 기업주나 책임 있는 관료, 유력한 정치인이 나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파업’이다.
그러니 “코로나 시국에 웬 의사 파업?”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의 파업에 해당하는지 따져 묻지 않겠다. 진료 거부든 파업이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행동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병원 경영진이 파업 참가자들을 두둔하고,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여당과 야당의 대표들을 만나고, 담당 부처의 관료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대화에 노력하는 모습에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이렇게 다들 따뜻한 분들이었나?
더욱이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정책 추진을 일단 중단하겠다’고, ‘의사들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수차례 해명과 근거자료를 제시했지만, 파업 당사자들은 요지부동이다. 단호한 투쟁 의지가 진심인 것은 이제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대체 왜 그렇게 단호한 것인지는 그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그들의 단체행동 때문에 당장 나와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의사들에게 감정이입하여 그 처지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한다면, 일반 시민들에겐 너무 가혹한 요구다.
……………
(시사인 678호 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