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최근 ‘이웃사촌’ 이라는 말을 듣거나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까이 사는 이웃이 멀리 사는 자식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까운 이웃과 서로 의지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이제는 옆집에 사는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홀로 살아가는 노인에게는 멀리 사는 자식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그냥 비유적 표현만은 아니다.
6년 전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논평을 통해 고독사 문제를 짚은 적이 있다(논평 바로가기: 고독사의 사회 문제). 상황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전체 고독사의 절반 이상(52.1%)이 60세 이상의 노인이며, 그 중에서도 70세 이상이 28.4%를 차지하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무연고 고독사 매년 증가하는 이유…’가족붕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가족이나 복지관 직원이 아닌 배달노동자의 신고로 고독사 현장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는 사회복지시설 이용 중단, 사회복지 인력 부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가까운 이웃이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어땠을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홍콩과학기술대학과 중국 상하이 대학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발표한 것으로, 사회 통합과 참여에 초점을 맞추어 상하이 거주 노인들의 동네 특성과 우울, 그리고 그 기전을 탐색했다 (☞ 논문 바로가기: 동네, 사회적 결속, 그리고 노인의 우울). 연구진은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전통적인 가족 지원 감소라는 맥락에서 노인 돌봄에 동네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논문은 그동안 서구사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일수록 주민들의 사회적 결속력이 낮다고 보고한 것과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서구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일수록 빈곤, 범죄, 주거 이동 비율이 높고 사회적 통제는 느슨하며 공공서비스는 불충분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웃과의 사회적 연대, 지지적 관계가 부족한 것으로 보고되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논문의 결과는 다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중국에서 개혁 이전 시대에 시행된 주택 정책과의 관련성을 제시했다. 이 시기 중국은 직장, 주거, 복지와 관련된 사회 시설들을 한 지역에 통합했고, 그 결과 강도높은 이웃 관계, 강한 사회적 결속이 형성되었다. 이후 작업단위주택(work unit housing)이 민영화되고 할인 가격으로 판매되면서 영구공공주택 단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주거 이동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웃과 정기적 연락을 하고 사회 통합이 높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연구진은 이웃과의 상호작용이 노인의 주관적 웰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하며, 고령화 정책의 우선순위로 노인의 사회 참여 독려를 제안한다.
주된 일자리에서의 은퇴, 사별과 자녀의 결혼 등으로 초래된 가족구조의 변화는 노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지역의 경로당이나 복지관 등 노인 집합시설은 노인들이 이웃과 교류하고 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이것이 모두 어려워졌다.
현재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노인의 우울과 자살 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모니터링과 사례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젊은 세대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이는 가까이 있는 이웃과 지역 사회일수밖에 없다. 코로나19에도 취약하지만 고립과 우울에도 취약한 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웃과의 안전한 교류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서지정보
J Miao, X Wu, X Sun (2019). Neighborhood, social cohesion, and the Elderly’s depression in Shanghai. Social Science & Medicine, 229, 134–14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