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감염병 위기에서 신뢰의 함정

965회 조회됨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코로나19는 바이러스를 통해 일어나는 질병이지만, 다양한 비생물학적 요인, 특히 소득과 직업, 인종, 젠더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발생률과 사망률에 영향을 미친다 (논문 바로가기☞코로나19에서 건강형평성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필요성, 미국의 인종적, 경제적 그리고 건강에서의 불평등과 COVID-19 감염).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가난한 나라나 부유한 나라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들이 물리적 거리두기, 손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소위 ‘비약물적’ 방역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자연실험적 상황에 착안하여, 거버넌스 역량이나 시민사회의 성격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국가 간 코로나19 유행 통제나 감염자 규모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분석하는 국제 비교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 정부에서 신속하게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며 시민의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당국에 대한 비판을 용인하는 개방된 국가에서 코로나19 대응도 효과적이었다 (논문 바로가기☞ 판데믹에서 거버넌스, 기술 그리고 시민행동: 동아시아에서 COVID-19의 교훈, COVID-19 사망자수 예측인자로서 보건의료 역량, 보건지출, 그리고 시민사회: 국제적 분석).

 

최근 캐나다 칼튼대학교와 맥길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국가들마다 코로나19 사망자나 확진자 숫자가 다른 것은 방역정책이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의 차이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소득불평등, 사회적 결속과 연대라는 사회적 자본이 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었다(논문 바로가기 ☞신뢰의 문제 : 84개 국가에서 사회적 자본, 소득불평등 그리고 코로나19 사망자 수에 대한 시계열 분석).

 

연구팀은 2020년 9월 3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자가 10명 이상 발생하고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 WVS) 5~7차 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84개 국가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각 국의 소득불평등 자료와 코로나19 사망자 자료는 각각 표준화 세계소득불평등 데이터베이스(SWIID)와 유럽질병관리본부(ECDC)에서 제공받았다. 소득불평등은 지니계수를 이용하여 측정했고, 사회적 자본은 세계가치조사의 측정문항 중에 신뢰, 집단 소속감, 시민 참여, 정부 기구에 대한 믿음 등 4가지 차원에 대한 응답을 합하여 각국의 점수로 계산하였다.

 

분석 결과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두 배가 되는 시간은 2.99일이 걸린 니카라과부터 23.33일이 걸린 모로코까지 나라마다 차이가 컸다. 인구 크기, 국가의 부, 65세 이상 인구비율을 통제변수로 포함하여 코로나19 사망자 수와 소득불평등, 사회적 자본의 관계를 보았을 때, 소득불평등이 클수록 사망자 수도 많아졌다. 소득불평등이 가장 적은 나라에 비해 소득불평등이 가장 큰 나라에서 사망률이 25% 가량 높았다. 그리고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자본의 4가지 차원에 대한 발생률의 비(Incidence Rate Ratio, IRR)를 시간 경과에 따라 보았을 때,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자본 중 신뢰와 집단 소속감은 25일을 기점으로 더 많은 사망자 발생과 관련이 있었다. 이밖에도 국가의 부나 국가의 크기도 사망률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구팀은 부유한 국가들이 더 정확한 사망자 데이터를 가지고 있거나 보건당국이 자료갱신을 빨리 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사실은 사회적 자본의 4가지 차원이 코로나19 사망자 수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시민참여와 정부기구에 대한 믿음은 사망자 수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시민참여가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앞선 연구들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관련 논문 ☞50개국의 사회적 자본, 건강 그리고 삶의 만족도, 지역사회 회복탄력성과 건강: 사회적 자본의 결속, 중개, 연계의 역할). 특히 지역사회가 공통의 위험에 직면했거나 공공선(예를 들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하기)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타협하도록 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시민참여는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된다. 또한 사스나 신종 플루 유행에서도 보건당국에 대한 공적 신뢰와 협조는 감염병 통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반면 신뢰나 집단 소속감은 사망자 수를 낮추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것을 소위 사회적 자본의 ‘어두운 면’이라고 하는 특징으로 해석한다. 즉 사람들이 가치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인식할 경우 자부심과 자기효능감을 강화하여 건강과 웰빙에 보호적 효과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집단 내부인들끼리 행동의 전염을 통해 위험한 건강행동까지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논문 바로가기: 사회적 자본의 어두운 면: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 건강효과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무비판적 신뢰와 소속감이 과학적 근거와 사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전체 시민들의 코로나19 감염위험을 높인 사례를 우리는 이미 지난 8월 광복절집회를 통해 본 바 있다. 앞으로 감염병이 더 크게 유행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정서적, 인지적 편향은 부정적인 사회적 자본의 효과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거대한 위협과 공포에 직면한 인간이 자신에게 만족감과 효능감을 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한 사회적 연결과 접촉을 추구하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해석한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판데믹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최우선의 방역지침은 인간의 진화론적 적응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바로가기 ☞판데믹과 커다란 진화론적 불일치).

 

이러한 연구결과들에 비추어본다면, 우리 사회의 2차 대유행 대비는 격리와 금지, 봉쇄와 차단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평가를 토대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사회적 연결을 추구하고 노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정비하고, 방역당국과 시민이 소통하고 참여하는 상호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이 친밀성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하면서도 공공의 안전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규범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 서지정보

 

  • Vida Abedi, Oluwaseyi Olulana, Venkatesh Avula, Durgesh Chaudhary, Ayesha Khan, Shima Shahjouei, Jiang Li, and Ramin Zand. Racial, Economic and Health Inequality and COVID-19 Infection in the United States. J Racial Ethn Health Disparities 2020
  • Jahidur Rahman Khan, Nabil Awan, Md Mazharul Islam, and Olav Muurlink. Healthcare Capacity, Health Expenditure, and Civil Society as Predictors of COVID-19 Case Fatalities: A Global Analysis. Front Public Health. 2020; 8: 347.
  • Frank Elgara, Anna Stefaniak, Michael Wohl. The trouble with trust: Time-series analysis of social capital, income inequality, and COVID-19 deaths in 84 countries. Social Science & Medicine. Volume 263, October 2020, 113365
  • Christopher Davis, Michael Wohl, Stephen Trites, John Zelenski, Michael Martin. Social capital, health and life satisfaction in 50 countries. Health & Place. Volume 17, Issue 5, September 2011, Pages 1044-1053
  • Villalonga-Olives E, Kawachi I. The dark side of social capital: A systematic review of the negative health effects of social capital. Social Science & Medicine, Volume 194, December 2017, Pages 105-127
  • Guillaume Dezecache, Chris D Frith, Ophelia Deroy. Pandemics and the great evolutionary mismatch. Curr Biol 2020 May 18;30(10):R417-R41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