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 와치 외부 기고문

스페인,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임시 국유화’를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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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김진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따라가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잘 알기는 어렵다. 지난 3월 CNN이나 Business Insider 같은 미국 언론이 “스페인이 모든 민간병원을 임시 국유화했다”라는 보도를 내어놓으면서 스페인은 잠깐이지만, 축구 이야기가 아닌 내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한창 병상이 모자라고 민간병원의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중이었다는 맥락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쓰인 ‘국유화(nationalize)’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짧은 기사 이후 스페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임시 국유화’라는 표현이 가지는 무게는 어떤 것인지, 그 외에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진 급진적인 조치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룬 후속 보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스페인은 ‘국유화했다더라’라는 소문만 남긴 채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고, 민간병원에 대한 국유화 조치와 함께 보도되었던 의약품 확보를 위한 조치 역시 같이 잊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소개할 이야기는 백신 같은 의약품, 마스크나 개인보호장구 같은 의약외품,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이루어진 조치들에 대한 것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에 기댈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일부는 정부의 행태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일어난 일을 참고하여 한국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상력을 얻고, 또 잘못된 결정에서 배울 기회로 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스페인의 면적은 한국의 5배 정도이지만 인구 규모(4694만여 명)나 경제 수준(1인당 GDP 3만 달러)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스페인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는 2020년 2월 15일에 발생했고, 한 달 후인 3월 20일 하루에 1만851명의 환자가 확진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5월 6일에서야 하루에 발생하는 환자가 500명 이하로 떨어졌고, 그때까지 총 25만414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중 10분의 1인 2만5613명이 사망했다. EuroMOMO의 추계에 따르면, 유행이 가장 심각하던 시기에 평년 대비 관찰된 사망자의 상대적 크기를 의미하는 Z 점수가 34.86에 달해, 스페인은 그야말로 국가 위기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통상적으로 2 이내에 있으면 정상 범위로, 4보다 크면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본다).

 

스페인이 코로나19 유행에 훌륭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배우고 참조할 지점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에서는 별도의 인센티브 없이는 유행 대응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정상처럼 여겨지는 민간기업이 유행 대응에 참여하도록 한 일이다. 실제 이루어진 일이 국유화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스페인 시민사회의 비판도 있지만, 국가가 위기 상황을 맞이하여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민간기업 역시 그에 호응하여 유행 대응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3월 14일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경보 상태를 선언(463/2020)하면서 개인 소유의 의료기관, 서비스, 시설에 대한 업무 부과 권한을 확보하고, 의약품 확보를 위해서는 △ 공중보건 보호에 필요한 제품의 부족으로 영향을 받는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시장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주문을 발행할 권한 △ 민간 소유의 의료센터·서비스·시설, 제약 부문의 시설을 포함한 모든 성격의 산업·공장·작업장·농장·건물에 개입하고 일시적으로 점유할 권한 △ 모든 유형의 재산에 대해 필요한 경우 개별적인 의무를 부과할 권한을 설정하여 보건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1)

 

흥미로운 것은 제약회사를 포함한 민간기업들을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수동적 조치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정부는 3월 23일 특정 의약품의 정보 보고, 공급, 제조 의무를 설정하는 명령(SND/276/2020)을 발표하고, 이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정한 의약품의 종류를 계속해서 수정해 나가고 있다.2)

 

명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약품의 종류를 지정해서 제조업체와 판매허가 보유자에게 △ 재고 여부, 지난 24시간 동안 공급된 수량, 입출고 예측(날짜, 수량)을 보고할 정보제공의 의무 △ 휴일과 주말을 포함하여 지정된 의약품을 충분하게 공급할 의무 △ 지정된 의약품을 우선적으로 제조할 의무를 부과하는 큰 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정된 의약품에는 항생제, 심혈관계 약품, 인슐린, 진통제 등이 포함되어 있고, 여름에 접어들면서 코로나19 치료제 후보에 올라있었던 렘데시비르(Remdesivir)와 실툭시맙(Siltuximab)도 명단에 추가되었다.

 

마스크나 손소독제와 같은 위생용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가 이루어진 끝에 빠르게 조달하기 위한 임시적인 체계를 갖추었고, 이후 이어진 일련의 조치를 통해 마스크와 손소독제의 최소규격과 판매가의 상한이 설정되어 한국과 유사한 공적마스크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3),4),5)

 

▲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이 “Sanitarios Necesarios(보건의료노동자가 필요해)”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출처: AFP)

 

한국과 비교하면 대단히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긴축정책이 침식해 온 스페인의 보건의료체계는 코로나19 유행 대응에 있어 계속해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스페인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공공보건의료체계 보호와 치료제와 백신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공개서한을 보낸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6)

 

그러나 국가가 나서 의약품과 같이 필수적인 물품에 대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고, 정부가 하는 일의 전모와 구체적인 내용 모두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투명성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 한국과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이다. 지금까지 경과로 미루어 한국이 스페인 정도 규모의 유행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준비되지 않은 것을 급하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 역시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를 열심히 찾아보며 배우고 준비할 때다.

 

* 참고문헌

 

1)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Real Decreto 463/2020, de 14 de marzo, por el que se declara el estado de alarma para la gestión de la situación de crisis sanitaria ocasionada por el COVID-19.(2020년 11월 17일 접속).

☞ https://www.boe.es/eli/es/rd/2020/03/14/463

 

2)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Orden SND/276/2020, de 23 de marzo, por la que se establecen obligaciones de suministro de información, abastecimiento y fabricación de determinados medicamentos en la situación de crisis sanitaria ocasionada por el COVID-19. (2020년 11월 17일 접속).

☞ https://www.boe.es/eli/es/o/2020/03/23/snd276

 

3)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Orden SND/326/2020, de 6 de abril, por la que se establecen medidas especiales para el otorgamiento de licencias previas de funcionamiento de instalaciones y para la puesta en funcionamiento de determinados productos sanitarios sin marcado CE con ocasión de la crisis sanitaria ocasionada por el COVID-19.(2020년 11월 17일 접속).

☞ https://www.boe.es/eli/es/o/2020/04/06/snd326

 

4)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Orden SND/354/2020, de 19 de abril, por la que se establecen medidas excepcionales para garantizar el acceso de la población a los productos de uso recomendados como medidas higiénicas para la prevención de contagios por el COVID-19.(2020년 11월 17일 접속).

☞ https://www.boe.es/eli/es/o/2020/04/19/snd354

 

5) Agencia Estat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Resolución de 2 de mayo de 2020, de la Dirección General de Cartera Común de Servicios del Sistema Nacional de Salud y Farmacia, por la que se publican los Acuerdos de la Comisión Interministerial de Precios de los Medicamentos, de 28 de abril de 2020, por los que se determinan importes máximos de venta al público en aplicación de lo previsto en la Orden SND/354/2020, de 19 de abril, por la que se establecen medidas excepcionales para garantizar el acceso de la población a los productos de uso recomendados como medidas higiénicas para la prevención de contagios por el COVID-19.(2020년 11월 17일 접속).

☞ https://www.boe.es/eli/es/res/2020/05/02/(1)

 

6) Salud por Derecho. We appeal for measures to safeguard the public health system and ensure access to treatment and vaccines for COVID-19.(2020년 11월 30일 접속).

☞https://saludporderecho.org/en/we-appeal-for-measures-to-safeguard-the-public-health-system-and-ensure-access-to-treatment-and-vaccines-for-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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