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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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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코로나19 유행으로 사회적 교류가 감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립감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이주민들의 우울감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가족과 친구 등 사회적 지지를 주고받던 관계를 뒤로하고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이니 이주민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연구는 이주민들의 고립과 고독이 단지 사회적 지지의 결핍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메릴랜드 볼티모어 대학 연구팀은 남미 지역에서 볼티모어로 이주해온 일용직 남성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의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 고독은 빠져들게 하고 억압한다” : ‘불법성과 그것이 라틴계 일용직 이주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연구팀은 지금까지 사회적 고립과 건강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지만, 주로 개인 수준의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사회적 요인들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8건의 초점집단인터뷰 분석을 통해 ‘불법’ 일용직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배제와 고립 등을 중점적으로 탐색했다.

 

연구 결과는 ‘불법성’과 관련된 사회적 배제와 단절,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건강 영향 측면으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먼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불법성’은 구조적으로 기회를 제한하고 여러 형태의 배제의 원인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오랜 기간 미국에 머무르면서도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일용직 노동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길거리에서는 ‘너희 나라로 가! 여기는 너희 나라가 아니야!’ 라는 말을 듣고, 비디오 촬영을 당하는 등의 인종차별도 겪었다. 그뿐 아니라 미등록 일용직 노동자라는 사회적 조건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언급도 많았다. 경찰에 신고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을 알고, 범죄자들이 미등록 이주민을 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비인간화되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권리가 없으며, 자신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한다고도 생각했다. 더불어 사회안전망과 형사사법제도에 접근하기 어려워 일상적인 임금 착취와 폭력 피해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외로움이 일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혼자 밥 먹고, 혼자 돌아다니고, 밤에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으며, 빈집에 돌아와서는 말소리를 채우기 위해 TV를 본다. 원래 살던 나라의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은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돈을 송금하지 못할 때는 연락하기 힘들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소통의 한계와 수치심이 쌓이고, 이것이 가족 관계를 악화시킨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감정적 깊이가 없고 원래 살던 곳에서처럼 사회적 지지를 느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이주노동자의 위험한 건강행태를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 주류의 공간에서 배제되고, 다른 일용직 이주노동자들과만 교류하면서 빈번하게 술과 마약의 유혹을 받는다. 어느 골목에서나 마약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불법’ 일용직 노동자로서의 외로움과 불안정한 삶을 달래는 방편으로 술과 약물을 사용하였다. 멕시코 출신의 65세 일용직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더 외로운 사람일수록 악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친구가 많이 있어도…혼자예요. 외로움은 사람을 사로잡고 압박합니다.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잊으려면 나가서 약을 하는 게 좋아요.”

 

이주노동자들의 고립감과 외로움의 원인에는 사회적 지지의 결핍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야기된 사회적 단절이 있었다. ‘불법성’은 보건의료, 사법체계, 고용과 노동의 보호 등 핵심적인 사회안전망과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을 경제적, 물리적, 심리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등록 이주민이 아니라 고용허가제도를 통해 정부가 알선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조차 임금체불을 당하고, 제대로 된 구제도 못 받는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코로나 19 유행 기간에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고용유지지원금 등에서 배제되었다. 사업주는 숙소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이주노동자를 말 그대로 고립시켰다. 심지어 서울시와 경기도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가 앞장서서 인종차별적 방역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연구팀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등의 구조적 개입 없이 이주노동자의 심리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접근은 잘해봐야 고립을 조금 완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 지적한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보호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미등록 이주민이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조차 사회 시스템을 불신하고 접촉하기를 꺼리게 만든다고 덧붙인다. 미등록 이주민도 추방 걱정없이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라고 아무리 이야기한들 정부 당국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구조적으로 야기된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단절을 최소화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방역정책, 정신보건정책, 사회정책이다.

 

*서지정보

Negi, N. J., Siegel, J. L., Sharma, P., & Fiallos, G. (2021). “The solitude absorbs and it oppresses”: ‘Illegality’ and its implications on social isolation, loneliness and health. Social Science & Medicine, 273, 113737.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1.11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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