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정부의 코로나19 예방접종 현황자료에 따르면, 6월 7일 기준, 1차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 759만명,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사람은 227만 명에 이르렀다(자료 바로가기: 코로나19국내발생 및 예방접종 현황). 백신관련 정보공개와 유통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백신접종이 본격적으로 물살을 타는 지금, 이주민 등 의료접근권이 취약한 이들도 빠짐없이 백신접종에 참여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세심한 개입이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3개월 이상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의 경우 한국 국민과 동일한 기준으로 예방접종을 받을 것이며, ‘불법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모두 똑같이 접종대상에 포함된다’고 발표했다(기사 바로가기: 40만 불법체류 외국인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받는다). 지난 4월 발표된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의 Q&A 자료에서도 75세 이상 외국인에 대한 예방접종을 안내하면서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경우에는 보건소에서 신청하고 접종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3개월 미만 단기체류자, 여행목적 방문자 등 제외). 그렇다면 정부의 발표대로 이주민들은 차질없이 백신접종을 받고 있을까.
지위가 불안정한 이주민이 접종을 망설이는 이유
영국 이주민건강연구그룹은 이주민이 코로나19백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파악하고 코로나19백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주민 32명을 심층인터뷰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이주와 건강>에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코로나19 예방접종의 형평성 보장을 위한 전략과 실천: 미등록이주민, 망명신청자, 난민 심층인터뷰 연구). 인터뷰 참여자들은 18세 이상, 15개 국가 출신으로 모두 영국에 체류한지 10년 미만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망명신청자(19명), 미등록이주민(8명), 난민(3명), 체류기간이 제한된 이주민(2명) 등 모두 지위가 불안정한 이주민이다. 2020년 9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진행된 인터뷰에서 23명(72%)은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게 주저된다고 밝혔고, 2명(6%)은 백신을 절대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보건의료와 백신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없애야
연구참여자 다수는 공통적으로 보건의료시스템을 불신하고 있었다. 미등록이주민이라는 이유로 1차 의료기관에서 병원 직원에게 푸대접을 받았던 경험, 또는 친구나 가족의 안 좋았던 진료경험 때문이었다. 특히 미등록이주민은 코로나19백신을 맞으러 가면, 비용이 청구되거나 출입국심사를 받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무엇보다 참여자들은 코로나19가 만연했던 판데믹 기간 동안 정부와 보건의료서비스에서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역시, 백신접종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망명신청자의 경우, 망명 신청은 대부분 연기되었고 임시보호소에 남겨졌다. 그곳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능했고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코로나19 백신이 올 거라고 들었어요. 영국 사람들이 우선이고 망명신청자들은 가장 나중이겠죠.” “약한 사람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요. 이것도 저것도 만지지 마라, 공유하지 마라 그러죠. 사람들은 아직도 공용숙소에서 살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아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죠.” “우리는 (코로나19 백신을) 믿지 않아요. 그 사람들(정부)이 우리를 신경쓰지도 않았으니까요.”).
아무도 모르는 정보
영국 정부는 2020년 1월, 코로나19백신을 미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이주민에게 접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발표 후 진행한 심층인터뷰 당시에 이 정보를 아는 이주민은 아무도 없었다(“무료로 백신을 나눠주는 거면 알려줘야지요.” “저는 미등록이에요. 와서 백신을 맞으라고들 하지만 저는 안 가요.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니까요.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일 수 있어요.”)
정부는 접종대상으로 이주민을 포함한다지만, 참여자 다수는 어떻게 코로나19백신에 접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는 1차 의료기관을 갈 수 없었던 접근성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주민 중에는 행정상 등록이 어려워 1차 의료기관에 갈 수 없는 이들이 많고, 이들은 코로나19백신도 당연히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망명신청자나 난민이 갈 수 있는 1차 의료기관이 없다, 그런데 정부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기존에는 보건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자선단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에 등록하거나 워크인센터(영국에서 1차 의료기관 이용이 불가능할 경우 긴급방문하는 의료기관으로 대개 비용이 무료임)에 의지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이주민들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확신을 주는 정보, 다양한 언어와 포맷으로
이주민이 보건의료시스템과 정부에 갖는 불신도 있지만, 백신접종에 대한 기본 정보가 애초에 부족했다(“부작용이 있다고 말해줘야죠. 내가 알고 있는 건 1차 의료기관에서 들은 말인데, 우선순위가 있고 고령층에 먼저 준다는 것뿐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영어로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요. 모든 정보는 다른 언어로도 만들어져야 해요.”). 판데믹이나 코로나19백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만한 정보가 없으니, 입소문이나 소셜미디어에 의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참여자 다수는 백신에 대해 다양한 언어로 된 정보(잠재적 부작용, 백신성분, 임상시험결과 요약자료, 백신접종 방문장소, 시간, 자격)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미등록이주민을 위해 백신접종 받는 곳에서 비자나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리플렛, TV뉴스, 인터넷 자료, 포스터부터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대표자, 단체 네트워크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당 이주민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연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주민 커뮤니티‧지원단체와 연계로 의료접근성 확대
백신을 맞을지 안 맞을지 결정하는데 핵심요인은 편의성이다. 어디서, 언제 접종을 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정보가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익숙한 환경에서 접종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1차 의료기관에서 긍정적인 진료경험이 있는 이들은 1차 의료기관에서 접종받는 것이 가장 편안할 거라고 답했다. 미등록이주민은 백신접종시 익명성이 보장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응답자 다수가 워크인센터나 믿을만한 단체를 통해 접근하고 싶어했다. 여기서 핵심은 믿을만한 그룹이나 기관(NGO, 커뮤니티 그룹)과 소통하면서 백신접종전략을 수립할 때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주민에게 보건의료서비스 자원이자 정보제공 역할을 해온 단체나 기관, 커뮤니티 그룹과의 연계와 협력이 관건이다. 커뮤니티가 백신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과 관행을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커뮤니티와 적극적인 파트너쉽을 통해 백신에 대한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필요하다면, 커뮤니티 내의 공공장소를 정해서 이동식 접종사업을 펼칠 수 있고, 해당 커뮤니티 기관을 거점으로 코로나19백신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과 공유, 백신 접근성 확대, 궁극적으로 코로나19대응을 위한 연계가 가능해질 수 있다.
‘소외’ 없는 코로나예방접종
2020년 12월 발표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 1,051명이 참여한 실태조사 결과, 코로나19 관련 차별 경험으로 ‘외국인 또는 건강보험 미가입자라는 이유로 공적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17.9%, ‘코로나19감염 방지 명목으로 직장 기숙사 외출금지‘가 16.7%로 나타났다. ‘1339 또는 보건소의 통역 부재로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경험’은 5.5%였으나,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아예 연락하지 않았다는 부연 설명이 다수였다(자료집 바로가기: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이런 결과를 감안하면 이주민을 포함하는 코로나19 백신접종계획은 매우 세부적인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의 Q&A자료를 뛰어넘는 구체적이고 세심한 계획이 없다면 이주민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는 발표는 그저 입에 발린 말에 그칠 것이다.
서지정보
Deal, A., Hayward, S. E., Huda, M., Knights, F., Crawshaw, A. F., Carter, J., et al. (2021). Strategies and action points to ensure equitable uptake of COVID-19 vaccinations: A national qualitative interview study to explore the views of undocumented migrants, asylum seekers, and refugees. Journal of Migration and Health, Volume 4, 2021, 10005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