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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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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젠더는 남성과 여성의 건강에서 나타나는 상당한 격차를 설명한다. 특히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성들이 살아가는 동안 직면하는 불리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이런 이점을 상쇄시킨다. 그렇다면 젠더에 따른 건강불평등은 젠더 평등 정책을 추진할수록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완화될까? 혹은 젠더 평등 정책이 시행되는 각 나라의 사회환경에 따라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다르게 나타날까?

 

국제 학술지 <국제 보건서비스 저널>에 실린 포르투갈 리스본 노바대학교와 영국 뉴캐슬대학교 연구팀은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지난 2004~2016년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특히 이것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또한 각 사회의 젠더평등 수준에 따라 건강불평등은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를 함께 살펴보았다(☞논문 바로가기: 젠더 평등, 그리고 주관적 건강에서의 젠더 불평등: 2004-2016 유럽 27개국 종단 연구).

 

이를 위해 연구팀은 유럽연합의 통계청인 유로스탓(Eurostat)에서 만든 소득 및 생활 조건 유로스탓 데이터베이스(EU-SILC)를 이용하여 27개국 25–64세 2,931,081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젠더와 주관적 건강의 관계를 보았다. 주관적 건강 상태는 “귀하의 건강 상태는 전반적으로 어떻습니까?”에 대한 질문에 본인이 느끼는 건강상태를 ‘매우 좋다’, ‘좋은 편이다’, ‘보통이다’, ‘나쁜 편이다’, ‘매우 나쁘다’ 중 하나로 답하는 것으로 측정했다. 이렇게 스스로가 평가하는 건강상태는 그간 많은 연구들에서 실제 신체 및 정신건강 수준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신뢰할만한 측정 도구로서 증명되어 왔다. 연구팀은 이 다섯 가지 대답 중에서 ‘나쁜 편이다’와 ‘매우 나쁘다’라고 답한 사람들을 한 그룹, 여기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을 다른 한 그룹으로 묶었고 이렇게 두 집단으로 나눈 건강상태와 젠더, 고용상태, 교육수준 등 여러 사회경제적 변수들과의 관계를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연구팀은 젠더를 기반으로 한 건강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과의 관계를 보기 위해 27개국을 젠더평등지수(Gender Equality Index, GEI)에 따른 다섯 개의 군집으로 나누었다. GEI는 유럽연합이 노동, 경제, 지식, 시간, 권력, 건강 6개의 세부 영역을 바탕으로 젠더 평등 정도에 관한 종합 지수를 산출한 것이다. 1을 완전한 불평등, 100을 완전한 평등상태로 가정하여 1~100 사이로 점수를 매긴다. 27개국의 평균 GEI는 2005년에 59.78이었고, 모든 국가에서 점수가 높아져 2015년에는 63.44가 되었다. 연구팀은 2005년과 2015년의 점수를 전후로 비교하여 27개국을 ‘낮음-낮음’, ‘낮음-중간’, ‘중간-중간’, ‘높음-높음’, ‘매우 높음-매우 높음’ 이렇게 다섯 개 집단으로 나누었다. 2005년에도 젠더 평등 지수가 높았고 2015년에도 높았던 이 ‘매우 높음-매우 높음’ 그룹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두 나라가 포함되었는데, 2015년 두 나라의 평균은 79.65이다. 참고로 GEI가 유럽연합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2020년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로 비교하면, 1점을 완전한 평등으로 봤을 때 노르딕 국가들이 0.8점대를 기록하며 1~4위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은 0.672로 153개국 중 108위에 머물고 있다.

 

분석 결과, 전체 데이터에서 연령, 조사연도, 국가명을 보정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17% 더 나쁜 건강상태에 있을 위험이 있었다. 시간에 따라서는 2004년에서 2016년에 이르기까지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낮아졌지만 여성이 더 나쁜 건강상태를 보고할 위험은 연도에 상관없이 유의했다. 즉 젠더에 따른 주관적 건강의 불평등이 지속되었다. 또한 이러한 불평등의 양상은 교육수준과 고용상태를 고려했을 때도 없어지지 않았다.

 

젠더평등지수에 따라 국가들을 다섯 개 그룹으로 나누어 분석했을 때도, 다섯 개 그룹 모두에서 여성은 더 나쁜 건강상태를 보고했다. 흥미로운 점은, 다섯 개 그룹 중 가장 높은 건강 불평등을 보인 그룹이 스웨덴과 덴마크가 속한 젠더 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이 집단에서는 고용상태와 교육수준을 보정한다고 하더라도, 즉 여성과 남성이 같은 고용상태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37% 더 나쁜 건강상태에 있을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 27개국 모두에서 남성과 여성 둘 다 나쁜 건강상태를 보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역시 모든 국가에서 젠더평등지수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지속되어 왔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이 교육수준, 고용상태와 더불어 노동, 경제, 지식, 시간, 권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사회적인 젠더 평등의 정도에 관계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말한다.

 

이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교육수준과 고용상태가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주요하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젠더 평등의 정도가 가장 높은 스웨덴과 덴마크가 속한 그룹은 학교를 어느 정도 나왔는지와 유급노동시장에 고용되었는지가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설명하기에 미약했다는 것이다.

 

그간 남성과 여성의 고용상태와 교육수준의 격차는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으로 연구되어 왔다. 이 연구에서도 전체 대상자를 교육수준별로 나누었을 때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에서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에서는 고용률과 임금의 차이 역시 다른 집단에 비해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그룹에 속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그들이 받는 낮은 임금 때문에 가사노동에 대한 자율성 및 협상력이 낮아지고, 또한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에 취약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게다가 이들은 한부모 가정의 양육자가 될 가능성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집단에 속한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건강이 나빠지고 나쁜 건강상태로 인해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적어지거나 더 나은 삶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고용상태도 젠더 건강 불평등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 하나다. 흔히 유급노동은 여성들에게 유익한 건강 효과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유급노동시장에 고용되어 있는 여성들은 경제적 자율성을 가지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많으며, 일을 통해 자존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용상태는 건강 불평등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요인으로 고려되지만, 이 연구를 포함하여 많은 선행연구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과 남성 노동자에서도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이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같은 자격사항을 가지고도 성별임금격차에 직면하거나 전통적으로 여성들만의 직업으로 분류되어 평가절하당하는, 더 낮은 임금을 받는 부문에 고용된다. 게다가 여성들은 유급노동과 가사 및 돌봄 노동의 이중 부담에 더 많이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젠더 평등지수가 높은 노르딕 나라들에서 젠더 건강 불평등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통해 고용상태와 교육 수준 외에 젠더 건강 불평등에 영향을 주는 다른 구조적 요인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여성의 고용을 늘리거나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젠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연구는 ‘요즘 세상에 젠더 불평등이 어디 있느냐’라는 세간의 질문에 대한 답이자 ‘그래도 예전보다는 세상 좋아지지 않았느냐’란 누군가들의 푸념에 여러 사회 부문들에서 젠더 평등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되고, 하물며 그것이 진척된 사회라고 할지라도 그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평등한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멈출 수 없는 염원과 좌절 때문이라면, 그러한 좌절을 줄여나가는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

 

* 서지정보

 

Roxo, L., Bambra, C., & Perelman, J. (2021). Gender Equality and Gender Inequalities in Self-Reported Health: A Longitudinal Study of 27 European Countries 2004 to 2016.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51(2), 146–154. https://doi.org/10.1177/002073142096034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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