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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백신 허브’ 인도, 왜 코로나19 백신 공급에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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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와 기업의 ‘이윤 추구’가 부른 화

 

박지원 한국민중건강운동(PHM Korea) 펠로우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 이후 정부는 한국을 ‘글로벌 백신 허브 국가’로 도약시키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춘 국내의 생산능력과 결합하면 ‘백신 생산의 가속화와 신속한 전 세계 보급’이 가능할 것이며, 나아가 ‘국내 공급 측면에 도움이 되고 기술 이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바로 가기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6월 18일 자 ‘코로나 방역 모범국에서 글로벌 백신 허브국가로‘)

 

그러나 백신 허브 자리를 노리는 국가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아시아만 해도 인도네시아(☞ 관련 기사 : <THE STAITS TIMES> 6월 7일 자 ‘Indonesia holds inaugural dialogue with China, seeks help to build vaccine production hub‘), 베트남(☞ 관련 기사 : <THOMSON REUTERS FOUNDATION NEWS> 6월 17일 자 ‘Vietnam urges WHO to accelerate COVAX drive as COVID-19 cases hit record‘), 말레이시아(☞ 관련 기사 : <malay mail> 2월 17일 자 ‘Malaysia could become hub for halal vaccines, says Khairy‘) 등이 자국을 ‘백신 생산 허브화’ 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국가들이 백신 허브를 꿈꾸게 된 것은, 원조 백신 허브이자 ‘세계의 약국’이라 불렸던 인도가 2차 대유행 이후 원활한 백신 공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계에서도 ‘인도의 백신 생산 위기가 국내 업체들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6월 23일 자 ‘세계의 백신 공장’ 인도 노리는 한국…마스크가 운명 갈랐다‘)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이던 인도는 왜 코로나19 백신 공급에 실패하게 되었나? 이 글은 원조 글로벌 백신 허브인 인도의 코로나19 백신 정책을 살펴봄을 통하여 국내의 백신허브 전략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세계의 약국’ 인도

 

인도는 세계 백신 생산의 선두주자로, 인도 제약기업은 전 세계 백신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해왔다. 특히 세계 최대의 백신 제조사인 인도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 SII)는 디프테리아, 파상풍, B형간염 등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매년 15억 도즈 이상 생산하였으며 전 세계 65%의 아동이 최소 1번 이상 이들이 생산한 백신을 접종하였다.(☞ 관련 기사 : <Deutsche Welle(DW)> 6월 4일 자 ‘Why the world depends on India’s vaccine production to beat COVID‘) 인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백신을 생산한 곳 역시 이 인도혈청연구소와 바랏 바이오 테크(Bharat Biotech)라는 두 기업이었다. 인도혈청연구소는 영국 아스트라 제네카의 백신을 위탁 생산하였으며, 바랏은 인도 정부 기관인 인도의학연구협의회(ICMR)와 국립 바이러스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Virology)에서 자체 개발한 백신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전 받아 코백신(Covaxin)을 생산하였다.(☞ 관련 기사 : <NEWS CLICK> 5월 8일 자 ‘Bill Gates, the White Man’s Burden and Modi Government’s Vaccine Debacle‘) 이들이 생산한 백신은 코백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중저소득국가에 보급되었다.

 

인도가 코로나19 백신의 생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의 제네릭 공장 역할을 해 온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의 백신 생산은 1920년대 뭄바이의 하프킨 인스티튜트(Haffkine Institute)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 특허법(물질이 아닌 제법에만 특허를 부여. 이후 ‘2005년 특허법’은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 비준에 따라 물질특허를 도입)’ 하에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인 과학산업연구회(CSIR) 산하 연구소와 생산시설들은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을 뛰어넘으며 제네릭을 생산하였다. 즉 인도 정부의 공적 지원 하에서 인도는 세계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자, 즉 ‘세계의 약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코로나19 백신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인도.(출처 : <BBC> 4월 9일 자 ‘Covid-19 vaccination: Is India running out of doses?’ 갈무리)

 

그러나 올해 3월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발생하면서, 인도는 원활한 백신 공급에 실패하였다. 인도혈청연구소는 올 연말 전까지 기존에 약속한 코백스 프로그램의 백신 공급을 재개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련 기사 : <NEWS CLICK> 5월 22일 자 ‘India: World’s Biggest Preducer Fails to Vaccinate its People‘) 인도 정부는 백신의 수출을 금지하였고, 생산 시설을 늘리며 뒤늦게 수습을 시도하고 있다.

 

공급 실패의 원인? 뒤늦은 대응과 두 기업의 ‘백신 복점(vaccine duopoly)’

 

여타 중저소득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도의 백신 공급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고소득 국가가 다국적 제약사의 백신을 선구매하는 백신 제국주의에 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3월 24일 자 ‘세계는 지금 ‘백신 아파르트헤이트’, ‘백신 제국주의’ 속으로‘) 그러나 인도의 국내적 차원에서는 모디 정권의 뒤늦은 대응과 두 민간기업이 모든 백신을 생산하는 ‘백신 복점(vaccine duopogy)’적 생산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우선 모디 정권은 인도가 코로나 대응에 성공했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하며 올해 1월 인도혈청연구소로부터 1100만 개의 백신을 구매하는데 그쳤다. 이후 2차 대유행이 발생하며 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3월에 두 기업으로부터 1억 2000만 개의 백신을 추가 주문하고, 공적 생산시설을 가동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뒤늦은 대응이었다. 즉 백신 생산을 가속화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공적 투자가 아닌 기존 대응에 대한 성공적 평가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대응 시점보다 구조적인 원인으로 거론된 것은 인도가 기존에 갖추고 있던 공적 생산 역량을 최대한으로 가동시키지 않은 채 두 민간기업이 독점적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것이었다. 두 기업은 여러 차례 자신들의 백신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임을 홍보하였으나, 동시에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백신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인도혈청연구소 백신의 이윤은 도즈당 최대 2000%, 바랏 바이오 테크의 백신은 도즈당 4000%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The Intercept_> 6월 19일 자 ‘INDIA’S VACCINE MAKERS ARE PANDEMIC PROFITEERS, NOT HUMANITARIANS‘)

 

우선 인도혈청연구소의 경우 인도의 코로나19 최대 수혜자로 손꼽힌다. 인도혈청연구소의 대표이자 인도의 8번째 재벌인 아다르 푸나왈라(Adar Poonawalla)는 세계 백신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고, 지난 3월 미국 정부의 백신 원자재에 대한 연방물자법 동원을 강하게 비판하며 ‘백신 왕자’이자 거대 제약사에 맞서는 ‘탈식민지적 도전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실상 그가 다국적 제약사의 코로나 백신 특허에 반대하는 것은 공평한 백신 보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철저한 이윤 추구이다. 정작 그가 인도 내의 다른 백신 제조사의 생산 확대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거나 코로나19를 “일생일대의 기회”라 언급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관련 기사 : <GQ> 6월 4일 자 ‘Adar Poonawalla on producing a Covid-19 vaccine, handling the pressure and preparing for the future‘)

 

▲ 인도혈청연구소의 대표인 아다르 푸나왈라.(출처 : <THE TIMES> 5월 1일 자 ‘Adar Poonawalla: ‘Aggression over Covid vaccines is overwhelming . . . Everyone expects to get theirs first” 갈무리.)

 

한편 인도의 자체 생산 백신인 코백신의 경우 모디 총리의 코로나 대응 기조인 ‘자립 인도(Atmanirbhar Bharat)’와 연관된다. 모디는 인도에서 개발한 백신을 “자립 인도의 상징”이라 강조하였으나 정작 개발된 백신을 민간 기업인 바랏에 독점적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바랏은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백신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전 당시 바랏은 “‘물 한 통’과 같은 저렴한 가격에 백신을 보급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이후 정부에 5.4달러, 민간병원에는 16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백신을 판매하였다.

 

즉 모디 정권은 자국의 두 거대 제약사의 이윤 추구 행위를 통제하지 않았고, 이들은 독점적으로 백신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두 기업은 위기를 기회 삼아 막대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으나, 인도 국민은 백신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나아가 지난 5월 인도 정부는 생산된 백신의 절반만을 구매하고, 나머지 절반은 인도의 28개 주와 민간 병원이 민간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남겨두는 “자유화된” 백신 분배 정책을 선포하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비판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백신 가격에 상한선이나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것, 공공의 백신 생산 체계를 활용하지 않는 것, 지적재산권 유예나 강제실시를 하지 않고 2개의 거대 기업에서만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인도 시민사회단체인 민중과학네트워크(AIPSN)는 팬데믹 이전부터 백신 생산과 수출을 2개의 민간기업에 의존해온 것이 코로나19에도 이어졌음을 비판하며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바로 가기 : Urgently Expand Public and Private Sector Production along with related R&D to meet India’s Vaccine Requirements: AIPSN Statement endorsed by Scientists, Academics, Doctors) 성명서에 따르면 2000년도까지 인도 백신의 80%는 공공 영역에서 생산되었으나, 오늘날 90%가 민간 영역에서 고가에 생산되고 있다. 이들은 인도 정부가 현존하는 공공 영역의 시설들을 가동시켜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확대해야 하며, 더불어 민간 시설의 생산 확대, 강제실시 등의 정부 개입을 주장하였다.

 

거센 비난에 모디 정권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지난 2일 인도 정부는 정부 소유의 공공제약사 3곳을 지원하여 백신 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을 발표하였으며,(☞ 관련 기사 : <ET> 6월 2일 자 ‘Government to support 3 public enterprises for ramping up vaccine production‘) 6월 21일부터는 중앙 정부에서 75%의 백신을 구매하여 무료로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THE HINDU> 6월 7일 자 ‘Prime Minister Narendra Modi’s address | Centre to take over vaccine procurement from States, provide free for 18-44 age group‘)

 

백신 생산은 공중보건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때 백신 허브였던 인도가 세계적 보급은 물론 자국민의 접근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의 백신 허브 논의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정부는 ‘백신 허브화’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내외 백신 접근성 보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흐린 채 ‘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포부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위탁 생산이 백신의 국내 공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생산을 통한 ‘국익 극대화’가 백신의 글로벌 공공재화에 기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도 저널리스트 팔라구미 사이나스는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재난은 굉장한 비즈니스다. 많은 이들의 절망 안에서 언제나 돈이 만들어진다”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 : <THE WIRE> 4월 15일 자 ‘‘Forbes’, India and Pandora’s Pandemic Box‘) 한국의 백신 허브를 향한 포부가 소수 기업의 이윤 창출이 아닌, 글로벌 보건 위기 극복을 위한 책무성 실현이 되기 위해서는 인도의 사례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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