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시간당 9,160원으로, 올해와 비교해 440원 ‘인상’한 금액이다(최저임금위원회 바로보기). 그런데 440이라는 이 숫자가 어째서인지 한국 사회에, 좀 더 정확하게는 경제에 엄청난 위협이 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올리다가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모두 함께 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최저임금이 고용주의 부담을 키워 결국 고용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심의를 시작할 때부터 최저임금을 결정한 후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최저임금발 고용 쇼크’를 걱정했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후에는 소상공인의 절규가 들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먼저 짚을 것. 국가 경제와 소상공인을 향한 걱정과 주장은 실체도, 그 근거도 확실하지 않다. 2022년 최저임금 심의 시작과 동시에 언론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면 일자리가 최대 30.4만 개 감소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지만(관련 자료 바로보기1, 바로보기2), 이는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률을 높이는지 낮추는지, 세계적으로는 어느 쪽도 확실하게 증명된 바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의 원인이라는 사실 역시 정확하지 않다. 지난해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전국 소상공인 3,41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사업장 경영비용에 가장 부담이 되는 요인을 조사한 결과, 임대료(69.9%)와 대출이자(11.8%)라고 응답한 소상공인의 비율이 인건비(8%)라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우리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 계속되는 데에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은 흔히 자기 이익만 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 또는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 취급을 받는다. 국가는 경제 역성장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경영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데, 꼭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유가 무엇이든 실업, 소득 상실, 건강 악화 모두 노동자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며, 국가, 사회, ‘우리’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우리 사회가 국가적 경제위기와 사용자의 경영상 어려움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데는 ‘성장주의’라는 오래 묵은 담론 탓도 있다. 국가를 위해 경제 성장을 위해 어떤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어떤 개인이나 집단, 계층의 생명, 안전, 삶보다 국가와 국가 경제가 중요하다는 성장주의 담론은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이래 그 힘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작동해 왔다. 최저임금을 충분히 인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몇십 년째 아직(!) 우리 경제가 이 수준을 수용하기 어려워서. 아직은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다.
이상 세 가지 이유, 즉 과학적 근거 부족, 이데올로기, 성장주의 담론은 최저임금 제도의 본래 목적을 왜곡한다. 생각해보자,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기본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초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다른 경제 영역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목적에 종속되거나 고려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도, 기업의 고용 어려움도, 국가 경제위기도 아닌 노동자의 삶을 최저임금 제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 체제에서는 더구나 최저임금의 본래 목적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 노동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다(관련 통계 바로보기). 이들 대부분은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사회보험의 보호 대상에서 빠진 채 온갖 취약성을 이중, 삼중으로 가진 노동 빈곤층이며, 여성, 청년, 이주민 등 코로나19 유행과 대응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집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 빈곤층도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최저임금이다.
임금이 가장 중요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점도 우리가 주목하는 바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나쁜 노동조건이 건강의 위험요인이라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건강이 나빠지면 노동과 임금이 모두 불리해지는 것이 현재의 노동 구조이며, 또한 시간이 갈수록 소득과 건강 불평등이 함께 또 점점 심화하는 경로이다.
새삼스럽지만, 건강은 기본적인 삶의 가치이자 노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역량이다. 이 때문에 권리로서의 기본적인 소득과 임금을 다룰 때는 건강을 포함해야 하고, 따라서 건강생활을 최저임금을 구성하는 한 가지 핵심 요소로 다루어야 한다. 오죽하면 기존 생계비 모델을 탈피해 ‘건강한 생활을 위한 최저생계비’를 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을까(관련 기사 바로보기).
지금도 이럴진대 포스트 코로나 체제에서 ‘건강한 생활’과 ‘국가 경제’ 사이에 권력관계가 더 기우뚱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노동하는 사람의 삶”보다 “안 그래도 어려운 국가 경제”가 더 힘이 세면 최저임금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코로나19에서 드러난 온갖 불평등 그리고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최저임금을 더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행정적’ 최저임금이 ‘사회적’ 최저임금을 바탕으로 한다고 믿는다. 올해 이후까지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