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불평등을 지적하며 부스터 샷 도입을 유예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처음에는 최소 9월 말까지 추가접종 도입을 중지해달라 하였고, 상황이 변하지 않자 연말까지 유예 기간을 확대하며 다시 한번 권고했다. 그러나 고소득 국가들은 아랑곳없이 추가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곧 이 대열에 동참할 참이다. 고령층을 비롯해 고위험군의 추가접종 예약이 시작됐고, 12월부터는 얀센 접종자들에게도 추가접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한다.
일부 국가의 대량 부스터 샷이 (과학으로는 논쟁해볼 만하나) 윤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접종완료자가 추가접종을 하는 동안 저소득 국가에서는 고위험군조차 한 번도 접종을 하지 못했다. 접종완료자가 추가로 접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 번이라도 접종하는 것이 유행 억제에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국경을 넘어서 글로벌 수준에서도 다르지 않다(서리풀 연구통 바로가기).
윤리와 과학에 더해 경제와 국격 등 여러 계산이 더해져 다른 나라에 백신 공여와 재판매에 대한 논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국의 부스터 샷을 전제한 논의들이다. 우리는 부스터 샷 전에 그 백신이 최대한 빠르게 한 번도 맞지 않은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하면서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가장 낮은 북한에 백신을 지원해야 한다.
뜬금없이 북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ㆍ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평양공동선언문 바로가기)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2018년에 남북한은 평양공동선언문에서 방역 및 보건ㆍ의료 분야의 협력을 결의했다. 당시에 이런 팬데믹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에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하겠다는 말인가.
북한이 아직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코백스의 백신 공급을 거절하기까지 했으니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하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백신 공급을 거절했다 해서 정말 백신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믿기 힘들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국경 폐쇄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 북한 지도부가 백신 공급을 거절한 속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북한의 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주민들의 삶을 위해 어떻게든 백신을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조만간 이루어지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전쟁 위험과 적대적 관계를 뒤로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한반도의 절실한 과제다.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는 것은 협력적 관계 구축에 작은 단초가 될 수 있다. 단번에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할 굳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니,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의 경험을 쌓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코로나19 공동 대응 경험은 이후에도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북한과 반드시 일대일 교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국가 또는 다자기구와 함께 북한에 코로나19 백신 지원 계획을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침 북한이 오랜 국경 폐쇄 속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일부 보건·영양 물자 운송을 허용했다. 정부는 말로만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과 배분이 필요하다 할 것이 아니라(관련기사 바로가기), 실천함으로써 의지와 능력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