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수요일(8월 10일)부터 시작하는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아프면 쉴 권리”를 기획하고 진행에도 참여하는 최홍조 비상임연구원이 <질라라비> 2022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내가 아프면 쉴 권리?
함께 사는 누구나 아파도 쉴 권리!
최홍조 • 시민건강연구소
가난은 질병을, 질병은 더 큰 가난을
가난은 사람의 몸을 아프게 한다. 오래전에는 가난만이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따져 보니 아프지 않으려면 – 혹은 덜 아프려면 – 교육 수준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돈도 좀 벌어야 하고, 노동환경도 안전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집의 환경도 중요하다. 내 마을의 주변 여건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나열하는 것도 숨이 찬데, 여기도 끝이 아니다. 우리가 받은 차별과 혐오는 우리 몸에 각인되어 질병의 원인이 된다. 민주주의의 정도도 내 건강에 영향을 미치니, 다른 사회정책, 환경정책, 경제정책, 교통정책…, 모두들 내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는 목표가 있다. 바로 보편적 건강보장이다.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도 공평하게 보건의료서비스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으면 좋고, 병원 이용에 드는 비용도 적거나 없으면 좋다. 쉽게 말해, 보편적 건강보장은 누구나 아프면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처럼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면 – 이미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지만 – 가난이 만드는 몸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다가 아니었다. 병원을 가까이 옮기고, 비용을 줄여 문턱을 낮추어도, 여전히 가난은 질병의 원인이다. 잘 살펴보니 그 순서가 뒤바뀌는 삶도 많았다. 다시 말해, 아파서 병치레하고 보니 우리 집의 경제가 더 나빠진 경우다. 이제는 가난에서 질병이, 그리고 질병이 다시 더 큰 가난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현실이 되었다.
왜, 이런 일 – 아프고 보니 더 가난해진 – 이 생겨나는 걸까? 한번 아파 본 사람은 아마도 쉽게 그 사연을 설명할 거다. 김창오(2021)1)는 그 이유를 학술적으로 증명해 보았다. 질병 치료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비용 – 혹은 의료비용 – 으로 본인부담금과 간병비 등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두 번째는 간접비용2)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치료와 돌봄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이다. 시간비용은 곧바로 (나 또는 나와 함께 사는 누군가가 아파서) 일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완전하게 일하지 못하는 – 실업 –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빈번하게 돌봄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노동시간을 줄이게 된다. 결국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게 된다. 치료와 돌봄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거나 전세에서 월세로 옮긴다. 저축은 언감생심, 버는 족족 생활비와 치료와 돌봄 비용으로 쓰기에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 혹은 나와 함께 사는 누군가의 질병은 다시 우리의 가난을 더 크게 만든다.
가난이 질병을 낳는 과정, 그 과정이 초래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보편적 건강보장이라는 꿈을 좇아 왔다. 이제 그 반대의 과정, 질병이 더 큰 가난을 초래하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내가 아프면 쉴 권리 혹은 함께 사는 누구나 아파도 쉴 권리다. 어려운 말로 사회적 보호라기도 하고, 제도의 이름으로는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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