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서리풀논평

소식

[서리풀 논평] 팟캐스트로 들으세요

시사 팟캐스트로 유명한 “김종배의 시사통’ 월요일 프로그램으로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진연구소가 함께 [프레시안] 팟캐스트를 진행합니다. 강양구 기자와 김창엽 소장이 월요일 오전에 발간되는 서리풀 논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7260 전체 프로그램 중 [서리풀 논평]은 앞부분에 진행 됩니다. 들어보시고 피드백과 함께 주변에도 널리 알려주세요.      

서리풀 논평

암의 위협, 더 생각할 것들

  바로 지난 화요일, 2월 4일은 세계 암의 날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주도해서 매년 기념도 하고 각오도 되새기는 날이다. 한국은 몇몇 언론이 스치듯이 다룬 것을 빼면 조용히 지나갔다. 그래도 언론이 이 정도라도 취급한 것은 오랜 만이다. 다른 해에는 그나마 그냥 지나친 때가 많았다. 마침 세계보건기구의 산하 기구인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2014년 판 <세계 암 보고서>를 펴냈기 때문이다. 아직 원문은 못 봤으니, 센터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참조한다 (바로가기).   우선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 2012년 암 발병 건수는 약 1천 4백만 건인데, 20년 이내에 연간 2천 2백만 건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이 맞는다면 암 발생이 57퍼센트나 늘어나는 셈이다. 암이 늘어난다는 경고, 그 자체가 관심사이긴 하다.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도 ‘겁주기-안심-건강행동’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암에 걸려도 이제는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예방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으라는 것이 핵심이다. 담배나 술 같은 해로운 습관을 줄이라는 권고까지 보태면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국제암연구센터가 내놓은 보고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몇 가지 메시지를 더 담고 있다. 첫째는 불평등의 문제. 보고서에서는 주로 국가간 불평등을 지적했다. 이제 개발도상국에서도 암이 큰 문제고 (에이즈와 말라리아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비중으로 보더라도 여기에서 암 발생과 사망이 더 많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다루기는 어려웠겠지만, ‘국내’ 불평등도 심각하다. 암의 발생과 사망은 말할 것도 없고, 예방과 치료도 모두

서리풀 논평

고향은 안녕하시던가요

  설 연휴를 막 지난 때라 ‘고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급한 일도 많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잊기 마련이다. 연례행사로 되새기는 것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할 것, 그리고 할 일로 남겨놓아야 한다.   마침 교육부가 얼마 전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2023년까지 9년 동안 전국 대학의 입학 정원을 16만 명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방’ 대학이 차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어법에도 맞지 않는 ‘지방’이란 표현이 영 마땅찮지만 모두들 쓰는 대로 따르자). 대학 구조조정은 고등교육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역시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의 한 측면이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수도권과 지방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는 한국 사회의 공간적 불평등.   격차와 양극화는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심해지고, 더구나 악순환의 고리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한다. 삶의 조건이 나빠지면 사람이 떠나고 그래서 조건은 더 나빠진다. 또 사람이 떠난다. 새로운 계기나 탈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 교육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의료만큼 격차가 심각한 분야를 다시 찾기는 어렵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분만이나 응급의료 문제는 어쩌면 너무 익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방의 환자가 서울로 몰리는 문제도 낯선 것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이번 명절에 고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부담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2013년 10월 11일 <강원도민일보>의 보도를 보자.

서리풀 논평

내 건강 정보는 안녕할까

  신용카드 정보가 새 나간 것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점을 칠 능력은 없으나 경제부총리나 금융 당국의 높은 사람들이 줄지어 자리를 내놓지 않을까 싶다. 불만들이 많고 선거까지 앞뒀으니 아무리 운이 좋아도 어렵게 생겼다. 피해자가 1,700만 명을 넘고 전현직 대통령의 정보도 유출되었다니, 우선 한심하단 말이 먼저 나온다. 무슨 일이 생겨서 속을 들여다보면 어찌 그렇게 하나같이 부실하고 엉터린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 이게 그렇게 ‘깜짝’ 놀랄 일인가? 피해 규모만 빼면, 정보 유출은 그동안에도 ‘늘’ 있던 일이었다. 먼 옛날도 아니다. 2010년 이후만 하더라도 한 손으로는 모자란다. 휴대전화(KT, SKT), 네이트, 넥슨, 현대캐피탈, 신세계몰 등에서 적게는 몇 십만부터 많게는 천만 명이 넘게 정보가 유출되었다. 어지간한 정보쯤은 이미 내놓겠다고 각오하고 있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 땅에서 사는 평균적인 사람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생활의 원리이다. 각자 알아서 예방하고 대비하는 것, 나아가서 드러나도 괜찮아야 한다는 무의식, 이미 거기에 맞추어 스스로 삶을 조직하는 것은 아닐까. 여느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입할 때를 생각해보라. 혹시 이 정보가 새 나간다면? 하고 꼭 필요하지 않는 것들은 이미 숨기고 속인다. 일부러 옛날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예를 들어 신용카드나 인터넷 결제보다 현금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유명하고 난해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그물처럼 촘촘한 정보의 사슬은 우리를 ‘훈육’하는 단계를 넘어 ‘관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보유출이 마치 보통명사처럼 쓰이듯, 사고가 나는 경과나 이유도 어찌 그리 판에 박은 듯 같을까. 정보기술이나 기계가

서리풀 논평

국가의 공정성을 묻는다

  근대 이후 국민이 기대하는 정부(곧 국가라도 말해도 좋다)는 중립적이고 공평한 정부다. 어느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갈등과 반목을 줄이는 ‘권위’ 있는 조정자를 원한다. 기댈 데 없는 약자가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 노릇을 바랄 때도 많다. 물론 이런 기대가 허망한 ‘착각’이란 비판은 오래 되었다. 국가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19세기적 인식이 대표적인 것이다. 물론 그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한 사람의 순수한 인격체처럼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그 때와는 영 딴 판이 된 지금도 국가의 편파성은 여전하다. 의뭉스러운 속을 알아차리기는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법률과 제도를 앞세우고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하니 말이다. 어느 때보다 복잡하지만 그 변함없는 치우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오늘 일차적 관심이 아니다. 차분하고 정확한 분석도 필요하지만 당장의 현실이 더 급하다. 국가와 정부가 최소한의 공정성도 내버린 채, 대놓고 편들기에 나서고 있어서다. 이런 편들기가 또한 피해와 고통의 편 가르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다시 조금 더 익숙한 말로 바꾸면, 이익은 개인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것. 바로 ‘이중적’인 의미에서의 편 가르기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태도 그렇지만, 새해 초부터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민영화’ 논란이 국가와 정부의 성격을 다시 묻는다. 맞춤 교과서라고나 할까. 국가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저렇게 하는가.   의료 영리화 문제에서 이 질문은 더

서리풀 논평

위험한 편 가르기 – 정상과 비정상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정상화’를 앞장세울 기세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3대 추진전략 가운데 하나라니 몰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김빠지게 할 의도는 아니지만, 우선 이 말은 해야 하겠다. 어떻게 시작했든 이제 정상화 담론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이가 아닌 대통령이 이처럼 강조했으니, 한국적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르긴 해도, ‘정상화’란 이름이 붙은 온갖 추진계획과 위원회, 운동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보험공단은 벌써 ‘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는 길은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저기 귀걸이 코걸이 식이 될 공산이 크다. 새 정부가 하는 일로 치면 시작은 평범했다. 모두 알다시피, 80개의 정상화 과제를 뽑아서 발표한 것이 지난 12월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명분도 괜찮다. “사회 곳곳에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찾아보고 이를 정상화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것이다. 1차 정상화 과제로 공공부문과 민생에 초점을 맞춘 10대 분야, 핵심과제 48개와 단기과제 32개를 선정했다고 한다. 까짓것 숫자야 좀 많으면 어떤가, 내용이 괜찮으면 봐줄 만하다. 좀 수상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누구라도 시비 삼기 어렵다. 국민의 눈높이와 체감, 발본색원과 같은 목표도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벌써 과거사가 되었다. 벌써부터 진화와 변신을 거듭하고 있으니 처음에 정상화가 무엇을 뜻했는지 묻는 것은 이미 부질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한 기자회견에서도 힘주어 강조했으니 이제 새롭게 ‘생명력’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실무

서리풀 논평

2014년을 맞으며 – 민주와 복지, 공공의 희망

  서리풀 논평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들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매번 다르다. 오늘은 말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우리’라는 것을 전제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이고 인민이며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다. 그러니 이번 논평은 새해 다짐이라고 해도 좋다.   지난 주 2014년의 마지막 논평은 조금 어두웠다는 평들이 꽤 많았다(논평 바로가기 , 프레시안 바로가기). 철도파업의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분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새해 첫 번 논평이기도 한 만큼 희망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위기는 위험이지만 동시에 기회다. 2013년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징후는 새로운 기회의 씨앗을 스스로 품고 있다. 2014년은 위험을 기회로 바꾸어 내는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기회는 저절로 어떤 성취를 보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본래의 말뜻대로 기회는 하나의 조건 이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 스스로 힘을 만들고 모으지 않으면 기회는 아무런 성취 없이 역사로만 남을 뿐이다.   건강과 보건, 그리고 좀 더 넓히면 복지라는 맥락에서 새해 희망을 점검해 보자. 그러하지만 밖으로는 그 범위를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1. 민주주의를 실천할 힘과 공간이 더욱 커질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의 횡포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꼭 비관할 것만은 아니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움틀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유행처럼 번진 ‘안녕들하십니까’나 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학생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단적인 예다. 단순한 에피소드나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다. 배제와 축출,

서리풀 논평

2013년을 보내며 – 위기의 징후들

  내일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고, 모래는 다시 새해다.   이번 논평의 주제는 모두들 예상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 되돌아보기다. 너무 뻔하달 수도 있지만 하는 수 없다. 일부러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여느 언론의 회고처럼 갖가지를 망라하는 것은 곤란하다. 요즘 들어 대놓고 민낯을 드러낸 사납고 어지러운 권력이 한 해의 기억을 모두 지배하기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 한 해 동안 주로 건강과 보건의료를 시비해 온 만큼, 같은 맥락에서 2013년을 정리한다.   1.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후퇴라기보다는 노골적인 공격이라 해야 맞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틀이었던 ‘1987년 체제’의 안정성을 의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례를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몇 가지만으로도 위기의 증거들은 가득하다. 아무래도 제일 앞자리는 권력 기관과 군의 선거 개입과 처리 과정. 쉴 새 없는 터지는 불안정의 다른 징후들 때문에 기억과 망각을 되풀이 했지만, 심판은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중대한 민주주의의 후퇴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기는 집권 세력의 퇴영적 역사 인식이 아찔하다. ‘종북’ 몰이로 대표되는 외부의 적 만들기라는 광풍.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온실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되살아난 역사의 유물이라 할 만하다. 제법 체화되었다 싶었던 정치적, 시민적 권리조차 정말 가볍게(!)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삼권분립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허울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서리풀 논평

정부도 의료 민영화는 반대한다는데…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때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다. 거듭 후퇴하는 이 정부가 걱정스럽다. 희망이 넘치는 가슴 부푼 새해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요즘 유행하는 대로 하면, 안녕하지 못하다. 솔직하게 병원과 약국의 영리화도 이제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철도 민영화도 의료 민영화만큼이나 중요하다. 당초에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두고 괜한 입씨름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리병원을 반대한다고 하면 ‘괴담’을 유포한다는 것이 이 정부의 대응이다. 지난 주 논평과 같은 주제지만 (바로가기), 다시 생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지난 18일 보건복지부가 <다음 아고라>에 “대한민국 모두가 반대하는 의료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바로가기) . 보건복지부의 누리집 첫 페이지에도 실려 있다. 더더구나 다시 살펴봐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일단 정부가 민영화를 반대한다니 다행이기는 하다. 한편으론 어쩌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꼴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한심스럽다. 게다가 정부의 입장이란 것이 다시 한 번 문제를 비튼다. 알고도 그런 것이든 모르고 하는 것이든 마찬가지. 달을 가리키는데 자꾸 손가락을 설명하는 꼴이랄까. 정부는 아마도 의료 ‘민영화’를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고라와 누리집에 쓴 것을 그대로 옮긴다. “지금 다니시는 병원도 그대로, 진료 받고 내시는 돈도 그대로, 건강보험이 드리는 도움도 그대로,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국가가 운영하고 책임지는 건강보험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도록 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서리풀 논평

병원 ‘주식회사’는 누가 살리나

  철도 민영화 문제를 다루려는 참이었는데, 정부가 마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그럴 작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종합 선물세트가 되었다. 온갖 민영화와 영리화, 이것저것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예상한 대로 투자활성화 대책의 핵심에 영리병원 문제가 들어있다. 부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나서서 영리화가 아니라고 했다지만, 그게 영리가 아니면 무엇을 다시 이렇게 부를까. 정부가 낸 보도자료에 ‘실질적 대안’이라고 써 놓았으니 말의 왜곡이 극심하다. 이들이 말하는 실질적 대안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우회’하는 전략이라고 읽힌다. 무엇을 우회하느냐고?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면 안 된다. 이미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한 사회적 합의이자 공감대가 아니던가. 실질적 대안이란 그런 사회적 합의를 돌아서 영리병원으로 가겠다는 것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막상 자세한 내용은 시시콜콜 따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의료법인이 영리 목적의 자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하고, 부대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도록 한 것, 그리고 법인약국을 설립할 수 있게 한 것이 핵심이다. 반대와 비판을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다. ‘자법인 남용 방지’와 의료취약 지역에 공익의료 서비스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아킬레스건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대책치고는 참 초라하고 궁색하다. 사실 정책과 제도의 자세한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기획재정부의 뜻대로 미리 목표를 정하고 오랜 기간 검토하고 회의를 거쳤을 것이다. 가짓수가 많고 복잡할 만하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이루겠다는 목표가 ‘영리’라는 사실이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방어해 봐야 진실은 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