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정의

서리풀 논평

불평등 시대, 새로운 정의의 원리를 수립하자

  비정규직을 줄이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자본과 기업이 어떻게 하리라는 상황은 예상했지만,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반대한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특히 청년층 정규직이 강하게 반대한다니(☞관련 기사 :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 새로운 논란, 청년 정규직들 반발, 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느 회사 ‘정규직 전환 반대’ 포스터에 적혔다는 내용을 보면, 반대하는 이유와 심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공명정대한 공개채용 제도를 부정하는 특혜성 정규직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 정책인가요?”, “기준 없는 무분별한 그들만의 정규직화는 취업을 준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청년들에게 정규직 일자리가 돌아가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무수저 서민에게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입니다. 반칙으로 이뤄진 결과의 평등은 다음 번 당신의 기회를 빼앗을 겁니다”.  찬성과 반대를 넘어 먼저 안타깝고 답답하다. 정치와 경제 ‘구조’가 비정규 노동을 양산하고 온갖 고통을 만들어냈는데, 해결 과정에는 개인들이 분열하여 갈등과 긴장을 부담해야 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부담은 사회화”하는 이 시대의 교리, 그리고 개인까지 이를 내면화하게 한 교묘한 통치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갖가지 속사정을 모두 알기는 어려우니, 정규직 청년들의 불만을 일축하고 싶지는 않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정규직 취업에 성공한 것이 ‘공명정대한 제도’와 ‘기회의 평등’ 덕분이라 하지 않는가. 이제 이를 무너뜨리는 것에 스스로 성취한 것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와 역사가 구축한 ‘정의’는 이를 넘지 못했음을 절감한다.     일부 사정을 이해한다고 그들의 ‘반대’에 동의하는

서리풀 논평

‘법치주의’ 시비

몇 달 동안 법이 유례없이 가까워졌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특별검사가 이른바 ‘국정 농단’의 당사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헌법 개정도 시기만 문제지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다. 법은 어느 때보다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시민 전체가 이렇게 깊게 법을 공부한 시기가 있었던가? 헌법재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절차와 내용을 알고 의견을 주장한다. 모두 법 전문가가 되어야 하니, 어찌 보면 시대적 불행이다.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의 내용과 절차를 알아야 하는 사회가 어찌 좋다고만 하겠는가. 이런 법(들) 또는 법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이 시기, 법이 사회발전의 동력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자들을 단죄하는 것, 나아가 죄를 고발하고 책임을 묻는 데에 법이 작동한다. 많은 사람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헌)법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인 한, 법과 법치주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권력 집단의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횡포와 악행을 줄일 수 있다면, 법의 역할을 낮춰볼 수 없다. 한때는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는 중요한 근거 노릇을 했다. 그뿐인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소득과 부동산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을 어찌 법의 횡포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법은 또한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삶의 보호와 안녕이 아니라 자칫 억압과 기득권 보호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법리를 따진다는 명분으로 명백한 죄를 논란으로 만드는가 하면, 실정법을 핑계로 죄를 도덕과 정치의 문제로 바꾸는 일도 흔하다. 당장 며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