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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희망하기’를 되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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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생기는 희망은 없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한 올해, 이제 마무리가 남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연구소가 새해를 맞으며 미리 생각했던 2023년의 조건 몇 가지가 새삼스럽다(☞관련 자료: 저절로 생기는 희망은 없다 – 2023년 새해를 맞아). 그런 전망이 맞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한 해였다.

 

예측이든 전망이든 어쩌면 당연하다 싶다. 어려운 경제 상황, 지정학적 위기, 인구 고령화와 지역 불평등이라는 국내 모순, 기후 위기의 증상과 징후, 모두 금방 해소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예상보다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국내로는 불평등한 고통을 보태는 무능한 경제 정책, 국외로는 팔레스타인의 학살과 인권 침해를 보태야 한다.

 

조건을 미리 짐작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만큼, 한 해를 어떻게 살아냈나 하는 점에 더 신경이 쓰인다. 다른 무엇보다, 각박하고 거친 조건 속에서도 모두 용케 견뎌왔다 싶다. 스스로 조금 긍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울러 동료, 동학(同學), 동지(同志)들과도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싶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적다고 ‘실패’와 ‘무의미’로 규정할 것도 아니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저항하는 힘을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 최악을 피하자고 우리가 막아섰던 작고 좁은 길이 새롭게 큰 길을 내는 단초가 될 수 있으면 그 또한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찌 아쉬움이 없을까. 조건을 감수하는 것을 넘어 ‘능동(能動) 하기’를 위해 새해 첫 논평에 적었던 것을 다시 불러온다. 미리 말하지만, 감히 한국 사회 전체를 논할 수 없으니 우리 연구소의 ‘지식 운동’에 대한 자성으로 한정하려 한다.

 

“전망이 틀리려면, ‘의지’를 바탕 삼아 희망하고 실천하는 것을 빼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희망과 실천의 근거는 삶의 구체적 토대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저항’의 힘이다. 우리는 고통과 결핍이 새로운 의지를 만들어내는 역설을 믿는다.

경제든 국제정치든 또는 지역 소멸이든, 언제까지나 한 가지 힘만 작동하는 단선적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희망과 실천이 그 완강한 경로와 운동을 막아설 때, 대안적 경로,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희망과 실천을 말했으나, 저 완강한 경로와 운동을 얼마나 저지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삶의 토대에서 나오는 저항의 힘을 믿자고 했지만, 아마도 자주 잊고 흔들렸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라는 표현이 못내 상투적으로 보이는 것, 그 미래가 어느 쪽으로 난 길인지 또렷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탓이리라.

 

알게 모르게 현실 정치에 끌려다닌 것은 아닌지도 반성할 거리다.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자기 분열적 기대와 혐오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나, 그를 통해 미래를 희망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회의 정치가 중요하되, 주류 현실 정치가 불평등과 부정의의 주된 이유인 바에야 대안적 정치의 토대를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노라고 했다고 쳐도 집단적 공부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 ‘사회적인 것’에 관한 공부라 한정해도, 무슨 제도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책이나 논문을 덜 읽었다는 뜻도 아니다. 개인과 사회를 옥죄는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그 너머를 구상하는 일, 무엇이 걸림돌인지 찾아내고 힘을 모으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을 우리의 공부라고 해야 한다.

 

조건이 어려울수록 그리고 교착 상태가 길수록 사회적 실천은 개인화되고 도덕주의에 쏠리기 쉽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체제 권력의 구조와 운동이 장기적이고 완강할수록 그 체제를 ‘문제화’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우리의 공부는 이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이어야 한다.

 

집단적 공부를 말했지만, 우리는 이 공부가 개인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내가 하는 일, 어쩌면 소소하고 사소한 일은 공부를 통해야 비로소 그 새로운 미래와 연결되고 ‘해방’의 경험으로 바뀔 것이다. 2023년을 돌아보면서 2024년을 구상할 화두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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