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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에 눌려 진보의 가치를 유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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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도 정치적 혼돈의 연속이었다. 대선 직전에 한 공당의 대통령 후보의 출마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시민들의 선거권을 침해하려 한 대법원의 이례적인 재판 진행으로 정치적 긴장이 한껏 고조되었다. 고등법원이 대선 이후로 재판을 연기함에 따라 긴장 수위가 다소 내려갔지만, 불과 며칠 뒤 국민의힘에서 대선 후보를 기습적으로 교체했다가 당원 투표로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통령이 탄핵됐음에도 소위 “사법 쿠데타”나 “정당 쿠데타”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잇따르면서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스트레스는 우리를 계속해서 교감신경 항진 상태로 몰아넣고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대역폭’을 좁히고 있다.

 

다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내란 종식 우선론’이 대선 구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평등사회를 향한 정치적 상상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 결과, 지난주 논평에서 다루었듯이,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청산되어야 할 경제성장주의가 여전히 시대정신인마냥 회자되는 현실이다.

 

물론 우리는 ‘인민 주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이번 대선에서 내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하지만 꼭 같은 이유로, 내란 세력의 근간이 되는 극우 파시즘과, 그 자양분이 되는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도 함께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은 대선 기간, 진정한 ‘내란 종식’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의미 투쟁에 적극 참여해야 할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의 악화된 경제 상황은 평등사회 건설을 ‘내란’ 종식의 확장된 의미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 ‘부채불평등’의 대안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지분형 모기지’를 보더라도 실상은 주거 불평등을 악화시킬 우려가 큰 부동산 부양책에 가깝다. 경제위기론과 재정안정론 등은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을 비호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특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넘쳐나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다른 어떤 정부보다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소극적이었다. 불충분한 보장성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낭비적 지출을 줄여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며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와 같은 여러 비용 통제 정책을 꺼내들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동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제도적 보장성의 부실함보다 재정 관리의 허술함에 향하도록 만들고 있다. 일례로 최근 공개된 건강보험공단의 감사 결과, 본인부담상한제의 허점으로 고액의 장기 체납자들에게 수십억원이 넘는 환급액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기도 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물론 제도적 신뢰를 약화시키는 이러한 문제들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보편적 의료보장의 관점에서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하여 급여가 정지된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생계형 체납자들(약 73만 세대)이라는 사실로(☞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러한 광범위한 의료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시급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밖에 간병비 부담을 비롯해 보건의료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진보적 의제의 부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이 내놓을 보건의료 공약의 대략적인 윤곽을 보더라도, 제도적 보장성 강화에 있어서 눈에 띄는 적극성은 보이지 않는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오히려 집권할 경우 재정 안정화에 주안점을 두고 윤석열 정부에서 논의됐던 비급여 관리·실손의료보험 개혁방안 등을 그대로 이어받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도 불필요한 과잉 진료와 비급여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사보험 시장을 더욱 확장하고 정부의 부담을 더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어떤 정책이든 그 ‘진짜’ 목표와 기대 효과는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산업화에 주력했던 윤 정부는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 공유와 같이 보험업계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였다. 실손보험 ‘개혁’ 역시 마찬가지로, 그 핵심 동기는 적자에 허덕이는 보험사를 구제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 자본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개혁일 뿐이다. 사람 중심 관점의 개혁에서는 실손의료보험 그 자체를 비판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실손보험이 도입된 까닭은 국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불충분한 보장성의 한계를 실손보험으로 메우기로 한 정치적 결정의 후과로 지금과 같은 문제적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의료보장의 역할을 시장에 내맡긴 것도 문제지만, 노무현 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실손보험 도입이 논의되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산업화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실손보험이 본격 출시되자마자 가입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던 건 급여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본인부담금을 전액 보장해주는 상품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험 설계가 왜곡된 과잉진료 행태를 부추길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보험사들은 시장 개척을 위해 그에 따른 높은 손해율을 감수하였고, 국가는 의료보장에 대한 책무 회피와 보험산업의 육성을 위해 그러한 위험성을 가진 상품 출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내세운 명분과 달리, 실손보험이 도입된 이후에도 시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만 갔다.

 

실손보험이 도입될 당시(2007년) 5.1%였던 보건의료비 지출(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중)은 2023년에 9.9%까지 올라갔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건강보험 보장률은 여전히 60% 초중반에 정체돼 있는데, 보건의료를 위해 우리 사회가 짊어지는 비용 부담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고령화 추세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이것이야말로 실손보험 제도가 낳은 사회적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국가는 그동안 실손보험이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유도하였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여기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무기 삼아, 공보험의 보장성 강화 대신 실손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며 보험사의 이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롭다는 지식과 담론은 이러한 국가 전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지난 2007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억누르는 정치적 담론으로 동원되는 문제적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 담론이 득세할수록 재정을 틀어막는 일이 우선과제가 되면서 보장성 강화 정책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적 의료보장 체계의 강화를 동반하지 않는 가운데 진행되는 의료비 지출 구조의 개편 결과가 어떠할지, 즉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피해를 입게 될지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 사보험이 공보험을 대체하고 잠식해 들어올수록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보건의료 불평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같이 재정의 지속가능성 담론이 불평등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복무하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은 시민들의 삶과 건강을 불공평하게 갉아먹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보건의료를 경제성장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왜곡된 ‘비효율적’ 체계를 만들어 온 국가권력이 유포하는 재정 공포에 눌리지 말자. 그리고 모든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지키는 공공재로 다뤄졌어야 할 보건의료를 시장화·영리화하는 모든 정책과 구조와 기제를 고발하고 심판하는 기회로 이번 대선의 장을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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