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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고통,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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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예기치 못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강한 정신적 충격 혹은 상처”로 정의되는 트라우마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자리잡기도 하고, 자연재해에 노출된 뒤 심각한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한다 (참고자료: 자연재해의 트라우마, 물질남용으로 이어져).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국가 트라우마 센터가 설립되었다 (관련기사: 재난피해자 심리치료, 국가가 나선다).

 

그렇다면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특정 사건’의 피해범위는 얼마나 넓은 것이며, 또 그 피해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이 글에서는 ‘특정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랜 기간 지속되는지 탐색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 여름 국제학술지 <약물과 알콜 의존 Drug and Alcohol Dependence>에 미국 뉴욕시 건강․정신위생과 연구팀이 발표한 이 논문은 911 테러 이후 피해자들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논문 바로가기: 세계무역센터 911 테러 피해 등록자들의 2003-2010년 약물, 알콜 관련 입원).

 

미국 뉴욕 시는 911테러 발생 당시 구조 활동에 직접 참여한 사람, 발생 지역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 인근 도보의 보행자, 그리고 뉴욕 지역 주민과 학생 등 총 71,431명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여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뉴욕시는 트라우마 노출 상황을 측정하기 위해 1) 참사 당시 구조 활동 여부, 2) 참사로 인한 상해의 지속 여부, 3) 센터 붕괴 당시 건물 내에 있었는지 여부, 4) 건물과 비행기 충돌, 건물 붕괴, 사람이 뛰어내리는 장면 등을 목격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 바 있다. 이 논문은 등록자 중에서 41,176명의 성인에 대해 분석했는데, 이들 중 21.2%는 테러 당시 상해를 경험했고, 47.8%는 구조/재건 인력이었으며, 40%는 세 가지 이상의 외상성 이벤트를 목격했고, 6.9%는 건물에 비행기가 부딪혀 붕괴될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등록 시점에서 18.3%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들 성인 등록자를 대상으로 2010년까지의 입원 기록을 연계 분석한 결과, 1.5%가 그동안 최소 1회 이상 알코올이나 약물 관련 문제로 입원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비행기 충돌, 건물 붕괴, 건물에서의 투신 등으로 구분했을 때, 여러 장면을 목격한 사람일수록 약물 오남용으로 입원할 확률이 높았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때 약물이나 알코올 오남용으로 인한 입원 확률이 각각 2.6배와 1.8배 높아졌다. 연구진은 테러 이후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에게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빈번하게 관찰될 뿐 아니라, 비교적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먼저 재난과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뉴욕시는 테러 발생 이후, 직접 대응 활동에 참여한 공무원, 소방/응급구조 요원 뿐 아니라, 당시 참사를 목격한 시민, 그리고 테러 이후 태어난 자녀들의 건강까지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논문 역시 이런 방식으로 10년이 넘게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출판된 것이다. 뉴욕시는 재난과 참사로 인한 신체적, 물질적 피해를 직접 겪지 않더라도 그 상황에 노출되었다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재난으로 인한 피해 기간을 언제까지 유효하다고 인정할지에 대한 문제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고통은 참사 직후는 물론이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발현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는 뉴욕 테러 발생 후 10년이 지나도록 참사 경험자들이 약물이나 알코올 오남용으로 인한 입원치료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유병율은 점차 높아졌다. 이는 개개인에 따라 트라우마가 나타나는 시점이 다르고, 나타난 후에도 완전한 치유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 현장의 직접 피해자, 그리고 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들, 더 나아가 그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는 모두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그 영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경주·포항의 지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커다란 재난과 참사를 경험했고,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트라우마를 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될 문제에서,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될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스스로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하고 (관련기사: 잠자는 가습기 살균제법, 국회는 응답하라), 의료지원 기간도 제한적이다 (관련기사: 세월호 피해 의료비 지원 2024년 연장안국무회의 통과). 세월호 참사 5주기와 국가트라우마센터 개소 1주년을 앞둔 지금, 우리의 트라우마 치유 대책이 시민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와 넓이, 시간을 제대로 반영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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