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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접근권을 회사홍보에 이용하는 제약회사? 인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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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조(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대통령이 지식공유를 말하는데, 특허청은 지식독점을 홍보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제 73차 세계보건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 지식을 공유하고 공평하게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관련기사: 文대통령, WHA 연설 “백신은 공공재로 전세계에 공평 보급돼야”). 하지만 4월에 출범한 ‘코로나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은 6월에 특허청을 지원단에 포함시켰다. 그리고나서 바로 특허전략 지원을 포함하는 특허 보호 정책을 발표했다 (참고자료: 시민사회 공동성명). 대통령의 국제회의 연설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지원단은‘지식공유’의 의미를 뿌리부터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특허청은 새로운 특허창출을 통한 지식독점이 가능하도록 기존의 코로나19 치료제와 관련된 특허정보를 ‘공유’하고 있다(참고자료: 특허청 보도자료). 아마도 기존의 특허정보 공유를 지식공유라 생각하고, 이를 지식독점을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건강권의 주요 개념에 대한 오해 혹은 의도적 오용 사례는 또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의약품 접근권’이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최근 제약회사들은‘의약품 접근권’이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기업 연례보고서에 의약품 접근권을 개선하기 위한 자신들의 전략을 소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홍보한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기업이 말하는 접근권 개선 활동이 과장되어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어떤 관점에서 의약품 접근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것이 실제 건강권 개선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올해 2월 국제학술지 <글로벌 공중보건 Global Public Health>에 실린 브라질 연구팀의 논문은 이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바로가기: 제약회사에 의한 혁신적 의약품 접근권: 국제보건을 위한 지속가능한 이니셔티브인가, 유용한 광고인가?). 논문은 제약회사에서 말하는 의약품 접근권 개선 활동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안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업광고 활동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유럽의약품산업협회(European Federation of Pharmaceutical Industries and Associations: EFPIA)에 속한 44개 다국적 제약회사가 2018년에 발표한 연례보고서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를 분석했다.

 

우선 특허 관련 항목이다. 의약품 접근권에서 특허보호 정책은 흔히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진다. 따라서 기업의 접근권 개선 전략에는 특허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44개 회사 중 11개만이 특허 관련 정책을 통해 접근권 개선을 도모하려 했다. 따져보면 이마저도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의약품 특허 풀(Medicine Patent Pool)’은 누구나 관련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특허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조사대상 기업 중 의약품 특허 풀에 자사가 보유한 특허를 포함시킨 사례는 1개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특허 문제에 대해 ‘자발적 실시(Voluntary license)’라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이는 특허 보유자(라이선스 제공자)가 다른 사용자(라이선스 사용자)에게 의약품을 제조, 사용 내지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자발적 합의를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국경없는 의사회 2018년 접근권 캠페인 보고서). 자발적 실시는 공익 목적으로 정부 허가에 의해 제3자 또는 정부가 특허 보유자 동의 없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실시(Involuntary license)’나 의약품 특허 풀에 비하면 지식공유의 성격이 약하다. 뿐만 아니라 강제실시를 회피하기 위해 저소득 국가에서는 아예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사례도 상당수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제약회사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한 전략은 교육을 통한 역량강화 활동이었다. 중저소득 국가의 일반시민이나 보건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역량강화 활동은 지속가능한 의약품 접근권 개선에 이바지하는 바가 큰 것이 사실이다. 보건체계 강화, 의약품 공급체계 강화, 연구개발 역량 강화 등의 방식으로 실행되었다. 교육 활동은 지속가능한 전략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다국적 제약기업에 대한 홍보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하다.

 

셋째, 제품의 직접 기부를 접근권 개선 전략으로 채택한 기업들도 있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제약사가 신약을 국내에 1개월 치 무료 공급한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무료 기부는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단기 대책에 불과하다. 그래서 단순히 기업 홍보활동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 외에 가격 및 공급 정책이나 연구개발 지원, 환자에 대한 직접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의 항목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위한 기업 활동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대개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홍보 전략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서, 의약품 접근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업의 많은 활동이 지속가능한 전략이기보다 기업 홍보활동 성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장기적 의약품 접근권 개선이 가능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허권 강화가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논문 바로가기: 혁신에 대한 지적 재산권의 경험적 영향). 심지어 특허권 강화가 제약 산업의 혁신을 약화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논문 바로가기: 국가 특허법은 국제 특허환경에서 국내 혁신을 촉진하는가?).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개혁을 통해서 특허권을 강화하면서도 혁신을 지속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특허권 강화가 아니라 지식 공유을 통해 혁신을 촉진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의 질문이다.

특허권 개념이 약했던 시대에 인류는 많은 혁신과 진보를 이루었다. 하지만 특허권이 강화된 오늘날 오히려 혁신과 진보는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드러난 것처럼 감염병 치료제와 백신이 그동안 연구개발 투자에서 소외되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금 이 시기에 지식공유를 통한 혁신과 그 혜택의 평등한 분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대통령이 지식공유를 말하는데, 관련부처가 나서서 지식독점을 홍보하는 이 불일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서지정보

 

  • Rocha, M. d. M., de Andrade, E. P., Alves, E. R., Cândido, J. C., & Borio, M. d. M. (2020). Access to innovative medicines by pharma companies: Sustainable initiatives for global health or useful advertisement? Global Public Health, 15(6), 777-789.
  • Lerner, J. (2009). The empirical impact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n innovation: Puzzles and clues. American Economic Review, 99(2), 343-348.
  • Qian, Y. (2007). Do national patent laws stimulate domestic innovation in a global patenting environment? A cross-country analysis of pharmaceutical patent protection, 1978–2002. Th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89(3), 436-45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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