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낙태죄 폐지? 퇴보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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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반 전 우리는 <서리풀 논평>을 통해 이렇게 낙관했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때로 격렬한 논쟁이 있겠지만, 우리는 낙관한다. 낙태죄 폐지는 성, 젠더, 재생산, 불평등, 좀 더 나은 사회를 논의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가 아닌가. 이제 새로운 시작이니, 앞으로도 방향을 벼리고 힘을 내자는, 응원과 연대의 다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순진했는지도 모른다. 10월 7일 정부가 낸 모자보건법과 형법 개정안은 낙태를 ‘처벌’한다는 기본 원리를 그대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모자보건법의 낙태 허용 요건을 형법 조항으로 격상했다.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는커녕 명백한 퇴보다.

 

분노, 참담함, 무력감에 앞서 그사이 우리는 뭘 했나 싶어 부끄럽다. 수구의 벽은 이토록 높고 공고한데,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만으로 혹시 무엇이 될 줄 알았던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한 걸음 나가는 것이 이만큼 어렵다는 데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그 낙태죄와 임신중지의 범죄화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 <논평>에서는 재론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혹시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있으면, 인터넷을 잠깐만 검색해 보시라.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기 전까지 논의를 포함해 판단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황당한 결과가 나왔을까?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놀랍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2019년 4월 15일의 <서리풀 논평>을 통해 우리는 낙태죄 폐지 후 할 일의 네 가지 원칙을 이렇게 주장했다.

 

첫째, ‘낙태죄’를 없애야 한다.

둘째, 임신한 당사자의 고민, 고통, 자기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아니, 존중을 넘어 인정하고 사회적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다.

셋째, 낙태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낙태의 ‘의료화’에는 반대한다.

넷째, 낙태와 처벌을 넘어 당사자의 권리, 즉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네 가지로 나누었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각각 따로 돌아갈 수 없는 과제들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국가가 죄를 묻지 않아도 사회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재생산권, 예를 들어 피임, 임신, 임신중단, 출산, 양육과 보육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확장되고 보장되지 않으면, ‘낙태죄’를 어떻게 하든 건강 피해와 삶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원칙들을 실천할 주체는 일차로 국가와 정부다. 우리는 국가와 정부가 첫째부터 넷째 과제까지 그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했다고 판단한다. 셋째와 넷째 원칙의 내용, 그리고 둘째 원칙의 과정 그 어느 것도 노력하지 않았으니, 첫째 원칙의 실패는 당연하다.

 

석 달도 남지 않은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입법예고 과정이고 당정청 협의를 거친다니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다하기는 어려울 터, 우리는 남은 기간 안에 ‘최소한’ 다음 몇 가지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요구한다.

 

첫째, ‘낙태죄’를 폐지하라.

구체적으로는 특히 형법상 ‘낙태의 죄’를 없애야 한다. 지난 8월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도 이를 권고하지 않았던가. 막상 개정안에서는 모자보건법의 조항을 옮겨와서 낙태의 ‘범죄화’를 더 강화하다니,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도 이건 아닐 것이다.

 

둘째, 유산유도제를 합법화하고 도입과 사용을 허용하라.

식약처가 적발하는 유산유도제 ‘불법’ 사례가 지금도 한해 수천 건을 넘는다.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처지. 정품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각자도생으로 또 다른 삶을 찾는 사람에게, 아무 대안도 없이 범죄자 딱지를 붙이는 것이 어떻게 생명 존중인가?

 

셋째, 안전한 의료 서비스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체계 개혁을 시작하라. 지금 체계가 ‘부재’ 상태라면, 기존 체계를 개혁하는 일이라기보다 새로 체계를 만드는 일일 수도 있겠다.

먼저, 범위에 대한 시각 조정부터.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보장, 예를 들어 임신중지를 국민건강보험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체계’의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가장 좁게 보더라도 피임, 임신, 임신중단, 출산에 대한 ‘공적’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체계의 출발은 사람이며 당사자다(다른 체계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을 포함해 피임, 임신, 임신중단, 출산 등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에게 연락하고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지금 각자 알아서 정하고 행동하는 방식, 다른 모든 의료 서비스의 원리를 그대로 따를 것인가?

 

출발은 단순하지만, 그다음부터 체계는 여러 가지를 함께 해결하는 구조여야 한다. 일차의료(의원)는 무엇을 하고 병원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보건소와 학교, 사회복지는 어떤 역할을 맡는가? 인력이나 시설이 모자라는 지역에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나? 필요한 돈은 누가 어떤 식으로 부담하나? 공공병원의 역할이 따로 있을까? 교육, 상담, 예방, 건강증진 서비스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건강 주치의제는 불가능한가? 서로 다른 영역은 어떻게 협력하고 연계할 것인가? 등등….

 

장기 과제라며 미루지 말라. 낙태죄 폐지야말로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보건의료체계를 논의할 둘도 없는 기회가 아닌가, 이미 상당 부분 기회를 놓쳤으니,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그 일이 국가 책임인지, 정부가 해야 할 일인지, 왜 자기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가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재생산 보건’을 ‘후진국’ 일인 양 여긴다. 지금이라도 국가와 정부 책임을 다시 규정할 것을 촉구한다.

 

사태가 이렇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니, 이 모든 논의가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에 인용했던 문구 그대로다. “당사자의 고민, 고통, 자기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아니, 존중을 넘어 인정하고 사회적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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