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코로나 자본주의’가 방역을 망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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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9일 <서리풀 논평>의 제목은 “‘코로나 자본주의’와 ‘코로나 공공보건’”이었다(논평 바로가기). 제목과 내용 모두, 거의 반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논평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

 

과거를 타박할 겨를이 없는데도 돌아보는 이유는 지금 비슷한 방향으로 비슷한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렸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과학적 방역의 원리를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경제 권력’이 존재한다.

 

다만, 코로나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익 추구, 탐욕이나 비윤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코로나를 비롯한 모든 재난 자본주의는 시장 원리와 경제적 성과를 금과옥조로 삼는 체계, 시스템, 사회 원리, 국정의 지향을 표현하는 ‘기계’(들뢰즈) 또는 ‘이성’(푸코)과도 같은 것이다. 이른바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각자도생 노력하는 힘과 그 방향으로, 개인과 무관하지 않으나 개인을 초월한다.

 

 

일차적으로 의료기관의 운영 원리가 코로나 자본주의를 따른다. 예를 들어, 그렇게 많은 이가 경고하고 충고했으나 정부는 언제라도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상과 인력을 준비하지 못했다. 왜? 개인 공무원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체계의 원리로는 공공 중심의 태세와 그 준비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류 정책 당국의 사고는 지금도 경제적 동기, 인센티브, 민간의 자원봉사 등을 벗어나지 못할 터이니, 이건 지식, 습관이나 행태를 넘어 체화된 근본 원리에 가깝다. 의료기관도 마찬가지, 시장에서 떨어져 나올 수 없으면 개별로 병상을 내놓고 병동을 비우는 것은 기껏해야 눈치 보기 또는 강요된 참여 이상을 넘기 어렵다. 매일 환자와 매출, 인건비, 경영 수지, 대출 상환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원리이자 논리가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방역에 개입하는 코로나 자본주의는 병원과 병상의 논리를 훌쩍 넘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개인이나 기업의 행태인 동시에 그동안 축적된 자본주의와 시장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세 가지 사례만 든다.

 

첫째, 치료제

 

치료제는 지금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를 쓸 수 있다고 한들, 이 유행을 억제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런데도 특정 기업이 끊임없이 치료제 성공(의 가능성)에 대한 뉴스를 생산하고, 언론은 무차별로 퍼뜨리며, 정부 또한 이렇다. 이유가 무엇이며 무엇이 동력일까?

 

지난달 여당 지도부가 항체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기업 회장을 국회로 불러 토론회를 열었는데, 바로 다음날 또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인사를 만나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둘째, 신속항원검사

 

대부분 전문가가 한정된 경우에만 유용하다는 검사 방법이 마치 ‘게임 체인저’라도 되는 양 시끄러웠다. 여당과 야당, 여러 지방 정부까지 나서는 바람에 방역 당국이 혼선을 정리하느라 애를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이런 해프닝이 관련 산업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힘이 방역에 작용한다고 판단한다.

 

국내 정식허가를 받기 위한 심사 단계에 있는 제품은 7개에 불과하지만, 수출용 허가는 44개 제품이 받았다. 신속 항원 검사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 나온 이상 긴급사용승인 등으로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단키트 제품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방역에 개입하는 경제 권력은 하나의 ‘복합체’다. 첫 번째로 말한 치료제도 마찬가지, 정부는 촉진 또는 규제와 연관되고(관련 기사 바로가기), 전문가 또는 연구자와 언론이 개입하며, 금융 또는 주식시장과 불가분이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 일련의 현상이 온 사회가 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서고 ‘3T’를 신화화하는 그 힘과 무관할까(관련 기사 바로가기).

 

셋째, 국산 백신 문제

 

정부는 백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을까? 정확한 정보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정부가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다른 어떤 기준보다 안전성을 강조하는 원칙에 동의하며, 백신 거부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이 맞다.

 

국내 사정만 고려하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백신 확보에 나서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글로벌 정의를 아랑곳하지 않고 사재기를 해야 옳았을까? 다만, 출발은 어느 쪽이든 ‘국산’ 백신에 대한 고려(또는 무형의 압력이나 착시?) 때문에 방역 목적의 판단이 왜곡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미 하나의 경제적 가상이 되어버린 산업적 기대와 투자,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압력은 지금도 작용할 것이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우리는 모든 것에 앞서 기술과 산업이라는 수단이 안전과 건강이라는 본질에 앞서는 가치 역전을 경계한다. (글로벌 수준의) 백신 확보가 후자라면 (국산) 백신 개발이 전자에 해당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정부는, 아니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어디에 더 투자했나?

 

어디 이 세 가지 영역뿐이랴, 시장과 경제적 이익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방역에 개입한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유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럴 것이다. 절대 지치지 않는다.

 

방역이든 백신이든 성공이라 할 궁극적 결과는 안전과 건강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 사익을 우선하는 코로나 자본주의,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경제를 치열하게 경계하고 또 비판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기준으로 우리가 ‘함께’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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