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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대 동안 가장 큰 방역 실패’ 영국, 코로나 백신 싹쓸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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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한국민중건강운동(PHM Korea) 펠로우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영국의 일일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만9237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일일 사망자 수는 744명으로 1차 유행 때인 지난 4월 30일 이래 최대치였다. 지난 5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영국은 유럽 내 코로나19로 인한 최다 사망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유행 초기 영국 정부의 안일하고 비과학적인 대응이 방역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의학저널 <란셋(Lancet)>의 편집장 리처드 호튼은 초기 영국 정부의 행태를 “한 세대 동안 가장 큰 과학 정책 실패로 기록될 일”이라고 비판했다.1)

 

영국의 초기 상황은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개인보호장비와 인공호흡기 수급에 있어서는 말이다. 지난 2월과 3월, 유럽연합(EU)은 인공호흡기 및 개인보호장비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네 차례의 공동조달협정(Joint Procurement Agreement)을 시행했다. 영국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영국 보건부는 “참여를 위한 정보를 제때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외무부 고위 관계자들은 EU와 함께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2)

 

초기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여전히 독자 행보를 고집하고 있다. EU 백신 공동구매 계획(EU Vaccines Strategy) 불참은 물론이고 인구당 4회 이상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의 백신을 싹쓸이했다.3) 세계 최초로 백신을 승인한 영국의 결정은 국제사회의 노력을 자국의 공로로 돌리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4)

 

▲ 영국의 코로나19 의료진들이 런던의 성 토마스 병원 응급실 앞에서 마스크 등 개인보호장비(PPE)를 요구하고 있다. <스카이 뉴스(sky news)> 4월 19일 자 ‘Coronavirus: Delivery of 84 tonnes of protective equipment for NHS delayed’ 갈무리.

 

지난 3월 17일, NHS 잉글랜드는 보건당국이 충분한 양의 마스크, 가운, 장갑 등 개인보호장비를 비축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개인보호장비는 영국 보건부가 관리하는 긴급비축물자(Emergency Stockpile) 목록에 포함된다. 보건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비축된 개인보호장비는 양과 질 모두 불충분한 상태였다. 가디언(Guardian)은 지난 2013년부터 6년간 공공 부문 재정 삭감으로 인해 긴급비축물자 총량이 40%로 감소했고, 예산 역시 8.31억 파운드에서 5.06억 파운드로 감소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2020년의 재앙을 불러온 긴축정책을 비판했다.5)

 

최전선에 있는 의료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었다. 현재까지 약 140여 명의 의료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의료계와 언론은 정부의 늦장 대응을 비난했다. 영국 정부는 뒤늦게 개인보호장비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품의 관세 면제와 더불어 자국 내 제조기반을 활용한 물량 확보에 나섰고, 공급 채널을 다양화했다.

 

상황은 인공호흡기도 비슷했다. 2011년, 2012년, 2014년 각각 발표된 정부의 팬데믹 대응 로드맵은 개인보호장비,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담고 있지만, 인공호흡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2016년 진행한 전국적 독감 유행 대비 훈련 결과 인공호흡기 부족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정부의 팬데믹 대응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인공호흡기 5000대밖에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6) 정부는 긴급히 수입 물량을 확보하고 자국 진공청소기 회사 다이슨에 인공호흡기의 대량 생산을 요청했다. 수요가 감소한 즉시 요청을 취소했지만 말이다.

 

유행 초기 수급 차질에 대한 비판, 급증하는 사망자, 무능한 정부 대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정부는 7개 다국적 제약사와 백신 사전구매계약(3.57억 회 접종분)을 체결했다.7) 특히 정부는 자국 기반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을 집중 지원했다. 4월 미국, 프랑스 등 제약 강국들의 자국산 백신 수출 금지 선언에 대한 대응으로, 영국 역시 영국산 백신 마련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부는 옥스퍼드 대학에 자국 제약회사와의 파트너십 체결을 요구했고, 백신 제조 역량이 입증된 GSK는 프랑스와 선 계약 했다는 이유로 협상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백신 생산 경험이 없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선정되었고 영국산 백신을 위해 총 8.8천만 파운드(공공 백신 R&D의 16.5%)를 지원했다.8),9)

 

▲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현지시간으로 12월 24일 브렉시트(BREXIT) 협상 타결 직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신화통신

 

이 과정에서 영국은 그나마 있던 민간에 대한 통제 권한과 의지마저도 상실한 듯하다. 지난 9월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임상3상 중 부작용 사례로 시험을 중단했지만, 정부는 단 사흘 만에 임상 재개를 결정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부작용 및 임상 재개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제약사와 정부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10) 7개 다국적 제약사와의 백신 사전구매 전반에 걸친 정책 결정 역시 민간에 압도된 채 진행되었다. 정부는 제약사의 영업 비밀 유지를 구실로 구체적인 백신 계약 조건에 대해 함구했고, 부작용에 대한 면책권 요구를 수용하며 제약사가 응당히 짊어져야 할 부담을 세금의 형태로 시민에 전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의 기밀 정보 유출과 이해 상충 문제 등 각종 논란이 불거진 것은 덤이다.11), 12) 논란의 진위는 더 밝혀져야 하겠으나 영국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영국에서는 유행 초기 개인보호장비와 인공호흡기 수급 차질 문제가 심각했다. 이는 인력이나 병상 부족과 마찬가지로 지난 10년간 공공 부문의 재정 삭감으로 인한 결과였지만, 영국 정부는 여전히 의료자원 부족을 긴축 정책의 실패로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는 모양새다. 새로운 기술이자 영국 자본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백신에 대한 대처는 180도 달랐다. 초기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만회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백신 계약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영국산 백신 개발 성공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과 치료제 등 의료기술의 생산·공급은 민간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꼭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그나마 글로벌 백신 공동구매·배분 기구인 코백스(COVAX)는 이윤 추구에 매몰된 의료기술 시장의 영향에서 벗어나 공평한 배분과 저렴한 가격을 보장하고자 한다. 자국의 이해관계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이득을 고수하는 데 여념이 없는 영국도 지난 9월 뒤늦게 코백스에 합류했다. 영국의 코백스 참여금(7.1천만 파운드)과 중·저소득 국가를 위한 기여금(5억 4.8천만 파운드)은 백신 사전구매에 쏟은 액수(37억 파운드)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말이다.7)

 

영국 정부는 유행 초기의 개인보호장비와 인공호흡기 수급 차질 문제, 그리고 방역 실패 국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독자 행보를 택했다. 제약사를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해제했고, 막대한 양의 세금은 제약사의 이윤 창출을 위한 가장 안전한 자금이 되었다. 백신 개발의 성공 여부는 물론이고 안전성, 부작용, 약값에 대한 책임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말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도 갈수록 영국과 비슷해지고 있다. 코백스를 통해 공평한 방식으로 백신을 확보하겠다던 정부의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는 온데간데없다. 최근 한국 정부의 잇따른 백신 계약 체결은 방역 실패와 관련된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급한 대응으로 읽힌다.

 

2020년 한 해,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었다. 인류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돈 있는 국가와 사람들이 안전을 독점하며 이윤까지 챙기는 적나라한 불평등이 코앞까지 와있다. ‘코로나 이후(포스트 코로나)’는 그 전과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공허해지는 이유다.

 

* 참고문헌

 

1)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 4월 24일 자 ‘Richard Horton: ‘It’s the biggest science policy failure in a generation’

2) <가디언(The Guardian)> 4월 22일 자 ‘UK government accused of cover-up over EU scheme to buy PPE

3)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12월 15일 자 ‘With First Dibs on Vaccines, Rich Countries Have ‘Cleared the Shelves’

4) <알자지라(Aljazeera)> 12월 4일 자 ‘As race to end pandemic heats up, ‘vaccine nationalism condemned’

5) <가디언> 4월 12일 자 ‘Revealed: value of UK pandemic stockpile fell by 40% in six years

6) <뉴 스테이츠먼트(New Statesment)> 3월 16일 자 ‘Government documents show no planning for ventilators in the event of a pandemic

7) 영국 감사원(National Audit Office) 12월 16일 자 ‘Investigation into preparations for potential COVID-19 vaccines

8) 영국 보건사회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Social Care) 11월 27일 자 ‘Government asks regulator to approve supply of Oxford/AstraZeneca vaccine

9) <포춘(Fortune)> 8월 10일 자 ‘How reborn pharma giant AstraZeneca is taking the lead against COVID-19

10) <네이처(Nature)> 9월 14일 자 ‘Scientists relieved as coronavirus vaccine trial restarts – but question lack of transparency

11) <가디언> 11월 10일 자 ‘Kate Bingham: well-connected but under-fire UK vaccines chief

12) <뉴욕타임즈> 12월 17일 자 ‘Waste, Negligence and Cronyism: Inside Britain’s Pandemic Spending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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