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양극화

서리풀 논평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

  계절에 따라 돌아오는 때니 올해도 어김없다. 다른 해보다 빨리 온 것이라 해도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다. 추석이 오히려 더 아픈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믿고 싶다.   다른 것보다, 가족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기회가 되기를 빈다. 전과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가정은 여전히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서로 기쁨을 나누고 또한 보듬고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역 공동체의 유대는 어떨까. 아직 그럴 만한 곳도 제법 있겠으나, 많은 이들에게 지역은 차마 ‘공동체’라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겪은 빠르고 험한 변화 덕분이다. 그래도 기쁨과 아픔의 기억을 공유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정이든 지역 공동체든 명절이 삶과 관계를 ‘공동체’답게 하는 중요한 의식이자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시기를 사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또한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명절만 되면 다시 공동체가 강조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올해 추석은 착잡하다. 우리가 과연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또 만들어가고 있는가. 이 도전적인 질문 앞에 개인과 가정, 지역 공동체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 아무리 잘나도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일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차적으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 그랬다. 위험을 예방하고 피하는 일은 일단 제쳐 놓자.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과연 위험에 빠진 이웃을 보호할 능력을 가졌는가?

서리풀 논평

고향은 안녕하시던가요

  설 연휴를 막 지난 때라 ‘고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급한 일도 많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잊기 마련이다. 연례행사로 되새기는 것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할 것, 그리고 할 일로 남겨놓아야 한다.   마침 교육부가 얼마 전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2023년까지 9년 동안 전국 대학의 입학 정원을 16만 명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방’ 대학이 차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어법에도 맞지 않는 ‘지방’이란 표현이 영 마땅찮지만 모두들 쓰는 대로 따르자). 대학 구조조정은 고등교육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역시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의 한 측면이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수도권과 지방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는 한국 사회의 공간적 불평등.   격차와 양극화는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심해지고, 더구나 악순환의 고리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한다. 삶의 조건이 나빠지면 사람이 떠나고 그래서 조건은 더 나빠진다. 또 사람이 떠난다. 새로운 계기나 탈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 교육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의료만큼 격차가 심각한 분야를 다시 찾기는 어렵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분만이나 응급의료 문제는 어쩌면 너무 익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방의 환자가 서울로 몰리는 문제도 낯선 것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이번 명절에 고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부담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2013년 10월 11일 <강원도민일보>의 보도를 보자.

서리풀 논평

인권에 기초한 지방 살리기

열흘 전쯤 ‘전국 도시 쇠퇴 현황’이란 자료가 보도되었다. 국토교통부가 작성했는데, 예상대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언론의 보도가 딱 그렇다. 연합통신을 제외하면 이른바 ‘전국지’로 불리는 신문들은 한두 군데를 빼고는 간단한 소식으로도 다루지 않았다. ‘지방지’만 요란했을 뿐이다. 실린 기사 내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도는 몇 군데나 쇠퇴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전국에서 제일 많다, 더 늘어났다 등 심각한 표현이 꼬리를 물었다. 기준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쇠퇴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인구 감소, 주거환경 악화, 산업 쇠퇴 등 세 가지 요건 가운데에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한다. 좀 더 현실감 있게 설명하면 이렇다. 인구 감소는 지난 30년간 최대치에 비해 현재 인구가 20퍼센트 이상 줄었거나 지난 5년간 3년 연속 인구가 줄어든 곳이다. 산업 쇠퇴도 비슷하다. 10년간 사업체가 최대치 대비 5퍼센트 이상 줄었거나 5년간 3년 연속 사업체가 줄었다는 것이 기준이다. 전남 20곳, 경북 18곳, 강원과 경남이 각각 11곳씩 쇠퇴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특히 전남은 15개 시군이 세 개 기준 모두를 충족하는 상태라고 한다. 경북도 9개 시군이 모든 기준을 맞추어 그저 조금 덜할 뿐이다. 같은 광역자치단체 안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경상남도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창원, 김해, 양산, 거제 등 7개는 성장 도시로 분류되었지만, 서부 경남에서는 진주시만 쇠퇴 도시를 면했다. 마침 요즘 나왔으니 옮긴 것이다. 비수도권 도시들의 실상을 나타내는 지표는 한둘로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또는 중심

서리풀 논평

내 탓만으로 피할 수 없는 것들

  자살이 많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OECD 국가 중에 8년째 1위라고 하니, 자살률이 높으니 어쩌니 하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왜 자살이 많을까. 꼭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대강은 안다. 개인적 요인만도, 환경의 탓만도 아닌,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그렇지만 자살은 명백한 사회적 질병이다. IMF 경제위기,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난하게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강원도 어떤 군은 자살과 연관성이 높다. 유전도, 개인의 성품과 의지력도, 외로움도, 이런 자살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며칠 전 <뉴잉글랜드 의학잡지>에는 청량음료가 어린이의 체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연구가 실렸다. 네덜란드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1년 6개월간 관찰한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원문참조).    한쪽은 설탕이 없는 음료를, 다른 쪽은 설탕이 들어간 음료를 준 결과, 1년 6개월간 체중이 각각 6.35, 7.37 킬로그램 증가했다. 무설탕 음료를 마신 쪽에서 체지방 증가가 35% 적었다.    연구진은 설탕이 들어간 음료가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의 비만에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어린이 비만 역시 얼마쯤은 사회적 질병이다. 곳곳에 자판기가 널려 있고, 매력적인 광고의 그 숨 막히는 유혹이라니. 이런 형편에 너 하기 나름이란 말은 소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막다른 경제적 상황과 자살, 그리고 청량음료 권하는 사회와 비만. 여기에서 경제적 형편과 청량음료가 병의 원인인 것은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