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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원격수업과 ‘교육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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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됐다. 오는 수요일부터는 수도권 학교들도 전면 원격수업에 들어간다. 2학기 전면 등교 방안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상황이 역전됐다.

 

애초 교육부는 8월까지 고3, 대입 수험생, 유·초·중·고 전 교직원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해 2학기 전면 등교를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교육과 돌봄 공백을 회복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이는 6월 초 발표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19에 따른 일상적인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학업성취 수준과 학교생활 행복도 등이 전년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학생과 교사, 가족이나 돌봄 제공자 등 당사자들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정책이 180도 바뀌었으니. 아니, 지난 16개월간 내내 반복돼 온 일이니 놀랍지 않다고 할까.

 

 

또 한 가지, ‘원격’과 ‘등교’의 당사자를 제외하면 교육부는 다른 소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민동의 청원 10만 명을 달성해 국회에서 제정을 검토 중인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제외해달라는 검토의견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교육부는 그 이유로 “(학력은) ,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가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고도 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재검토 후 수정의견을 발표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학력·학벌차별 관행 철폐’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고, 취임 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으며, 교육부는 과제 이행 실적을 매년 제출해 왔다(관련 기사 바로보기1, 바로보기2).

 

교육부의 학력 차별에 대한 태도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한 진단과도 맞지 않는다. 교육부 스스로 코로나 시기 학력 격차가 커졌다고 진단했고, 그 핵심 원인이 ‘경제적 여건에 따른 학습 환경의 격차 심화’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장관은 지난 6월 23일 G20 교육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과 ‘교육 빈곤 극복’, ‘교실로의 안전한 복귀’를 다짐하는 공동선언문에도 서명했다(교육부 보도자료 바로보기1, 바로보기2, 바로보기3).

 

개인의 선택과 노력이 아니라, 경제적 여건, 학습 환경,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이 학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학력을 개인의 능력으로 간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교육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교육의 목표는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공평하게 받도록 함에 있지 학력 평가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교육 빈곤은 아동의 교육권을 제약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학습하고 개발할 기회를 빼앗는다. 경제적, 물질적 박탈이 교육 빈곤을 낳고, 교육 빈곤은 다시 경제적, 물질적 박탈을 강화한다.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불평등의 악순환이다(관련 자료 바로보기).

 

지난 3월, 뉴욕의 유엔(UN) 본부 앞 잔디밭에는 168개의 빈 책상과 의자가 놓였다. 코로나19로 1년 내내 학교에 가지 못한 전 세계 1억 6천 800만 아동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학교가 1년 내내 문을 닫은 전 세계 14개 국가 중 3분의 2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이 차지했다. 전 세계 아동 7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억 1천 400만 명은 대면 학습 시간이 4분의 3 이상 줄었다(유엔아동기금 자료 바로보기).

 

‘유년 시절에 누려야 할 성장의 필수 요소 박탈’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가정의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학습 환경은 열악하고 건강 상태 역시 좋지 않다. 빈곤이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 차원의 박탈만이 아닌 다차원적 현상인 것처럼, 교육 빈곤 또한 마찬가지다.

 

가정의 경제수준에 따라 원격수업의 환경, 원격수업의 이해도, 돌봄 등에서 격차가 나타났다. 가정환경이 열악할수록 원격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학습에 방해가 되는 장소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원격수업 전용 디지털 기기 소유 여부, 기기의 성능에 따라서도 차이가 났다.

 

돌봄 공백에서 격차가 드러났다.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낮시간 동안 형제 또는 자매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고, 점심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정서와 심리적인 면에서도 우려할 부분이 많았다. 보호자 없이 낮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은 건강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감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교육 빈곤은 개인에게 고통이지만,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다. ‘무상교육’과 같은 권리 차원의 접근과 더불어 ‘인적자원’과 같은 경제적 접근이 공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엔 본부 앞 168개의 빈 책상과 의자를 준비했던 유엔아동기금은 “각국 정부가 등교 재개를 우선시해야 한다”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등교 수업 여부가 코로나19 유행 상황과 같은 방역 차원에서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격수업의 효과, 대면 수업 중단이 아동의 교육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등교 수업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학교의 역량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세계보건기구 자료 바로보기).

 

국내에서도 이미, 안전한 교육 환경을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학교 노동자의 고용구조 개선 등 학교 보건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격수업이 대면 교육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인식 역시 보편적이다(관련 자료 바로보기1, 바로보기2).

 

우리는 어떤 유행 상황에서도 학교를 닫는 조치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당장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2학기에는 교직원 접종을 포함, 본래 계획대로 준비를 갖춰 대면 수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식당과 카페에서의 사적 모임, 운동 시설과 유흥 시설, 백화점, 각종 행사장보다 학교가 더 위험하다는 증거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교육이 이들 활동보다 덜 필수적이라고 합의하는 것인가?

 

교육과 의료, 건강에서 빈곤, 격차,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원인 경제적, 물질적 불평등을 줄이는 일은 어떤가. EBS 교재를 무상으로 주는 것 말고, 원격 수업용 스마트기기를 대여해 주는 것 말고, 코로나 초기부터, 아니 코로나 이전부터 열악했던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포스트 코로나 체제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말 잔치처럼 들리는 ‘블렌디드(온·오프라인 연계) 교육’이니 ‘HTHT (High Touch High Tech, 대면 접촉인 하이터치와 인공지능이라는 하이테크의 결합) 교육’ 따위로는 교육 불평등도 방역도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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