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돌봄의 시대. 보건의료 역시 이 시대정신을 피해갈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돌봄의 위기를 기회삼아 산적한 보건의료 과제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성공적으로 의제화하고 정치화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보다 ‘보건의료체계’를 걱정하는 이들의 시름이 크게, 많이 들린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건의료 ‘노동’에 관한 것이다. 지난 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이 대표적이다. 간호법을 둘러싼 환영의 목소리와 반발의 목소리는 여전히 보건의료 전문가 내부의 권력 투쟁의 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관련 논평 바로가기).
간호법의 목적은 다름아닌 간호사의 노동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재구성하는 데 있다. 간호법의 필요와 내용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하고, 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 그럼으로써 시민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간호법의 시비를 가리는 일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간호법을 계기로 노동의 입장에서 보건의료를 생각하는 일이다. 노동을 중심에 두지 않는 한, 그 어떤 접근도 더 나은 보건의료, 더 나아가 돌봄 체제로의 전환은 난망하다. 의료와 돌봄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노동을 생각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하는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실마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가 학습한 것 가운데 하나는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보건의료 노동의 가치 인정과 존중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의료 노동을 ‘필수노동’으로 호명하기도 했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노동 가치의 인정과 존중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가령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아프거나 다쳐도 일을 쉬지 못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정말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아도 높은 동료들의 노동강도를 높일까봐. 그보다는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 또는 아플 때 사용할 수 있는 병가 여부를 안내받지 못해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걱정돼서. 아파서 쉬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라서. 쉬다가도 갑자기 콜이 와서. 또는 내가 쉬면 돌보던 환자가 불편할까봐 등등.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업무강도는 물론, 일터 내 권력 관계, 노동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충분한 임금, 고용 계약의 안정성, 노동 과정과 시간에 대한 통제권과 예측 가능성,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환자와의 관계 등 이들 노동을 둘러싼 모든 조건과 별개일 수 없다.
노동을 중심에 둘 때에는 어떤 일을 하는 누구의 노동을 보호할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노동을 경계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건의료 노동은 지역, 규모, 직역, 젠더, 국적, 계약 형태 등에 따라 그 경계가 명확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직역과 전문성, 그리고 젠더에 따른 경계다. 예컨대 간병노동자, 청소노동자, 병원보조원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서 보건의료인력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이는 법에 근거한 바, 법과 제도는 보건의료 노동을 경계지음으로써 보건의료 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 가운데 하나다.
노동을 생각하는 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노동 분절화, 전문직과 비전문직 간 위계 구조, 명문화되어 있는 위계서열, 남성 생계부양자 젠더 체계에 기초한 성별분업과 차별, 고용 관계의 파편화, 시장 중심의 서비스 생산체제 등 그 불평등 구조를 파악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지역 중소병원에 종사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높은 이직 및 사직률은 이 모든 구조가 함께 맞물려 결과한 불평등의 총체다.
우리는 보건의료 노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 간병 노동자들이 ‘집’이 필요 없다 말하는 이유를, 중소병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임금 인상의 유일한 방법은 ‘이직’ 뿐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얼마나 알고 있나? 보건의료 노동에 대한 빈약한 지식 역시 불평등 구조를 공고히 하는 기제가 된다.
안전하고 건강한 보건의료 노동을 생각할 때에 문제를 재진단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고, 어떤 것을 그 대안으로 삼고 있는가? 지금 한국사회의 논의들과 연결지어 본다면, 간호인력 지원 대책, 인력기준마련, 필수의료인력 확충, 의대 정원 확대, 의료 수가 개선, 그리고 디지털 원격 의료 허용 등으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지 질문해보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건의료체계 틀에서 제시하듯이 보건의료인력은 서비스제공체계, 정보, 의약품⋅백신⋅기술, 재정, 리더십⋅거버넌스와 함께 보건의료체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 틀에 근거하면 이 요소들이 모두의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대안을 모색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 노동을 단지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자원의 일부로 바라보는 이 관점은 노동의 입장은 아니다. 노동의 입장에서 보건의료를 생각하는 것은 자원으로서의 인력의 ‘효율적인 관리와 수급’ 범위 그 이상이다. 자원이 아닌, 권리 요구 주체로 보건의료 노동을 이해할 때, 이른바 보건의료 인력의 효율적인 관리와 수급은 당면한 여러 보건의료체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가운데 하나이지, 유일한 만병통치약은 아니게 된다.
노동을 통하지 않는 보건의료는 없다. 마침 오늘 세계 노동절을 맞아 안전하고 건강한 보건의료 노동을 생각하면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의 시민건강연구소분회도 2023년 세계노동절 총궐기에 동참한다(관련소식 바로가기). 함께하는 연대와 결집, 그리고 저항 역시 노동을 존중하는 첫 걸음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