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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안전과 건강 – 정부 시스템을 넘어 사회 시스템으로

  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후진국’형 사고다.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사건과 제천의 화재. 조사가 끝나면 자세한 원인과 경과가 드러나겠지만, 무언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고 관리되지 않아 이런 참담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 틀림없다. 작게는 사람들이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잘 모르고 엉터리로 일을 했을 수 있다. 또는 제대로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직원이 너무 적거나 일이 힘들면 뻔히 알면서도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질병관리본부의 혈액검사에서 사망한 환아 3명에게서 유전적으로도 완전히 동일한 ‘시트로박터 프룬디’가 검출되고, 환아 4명 모두 동일한 영양수액 처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인은 ‘세균감염’ 또는 ‘의료과실’에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기사 바로가기) 현상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이 중요하다면, 실수, 오류, 잘못, 무지, 태만 등에서 끝나지 않고 그 원인까지 살펴야 한다. 의료 인력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사람이 없거나 적은 것, 시설이나 장비가 문제가 있는 것, 관리가 부실한 것 등이 모두 ‘중간’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원인이 개별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     시스템이라고 해서 바로 건강보험 수가나 대학 교육, 의료인의 자세로 비약하지는 말자. 그동안도 일부는 무사했고 다른 병원이나 시설이 모두 그런 사고를 겪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가까운 작은 시스템이 있고 멀고 좀 더 근본적인 큰 시스템도 있다. 상위-하위 시스템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작은 시스템은 독립적이 아니라 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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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 3주기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직 찾지 못한 이들도 금방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이제라도 사고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 정부가 바로 해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는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 다시 물으려 한다. 참담한 사고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으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호의 진실과 함께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고 국가적 대응이 있었다고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초대형 재난이었던 메르스 사태와 경주 지진이 부정의 증거다. 최근 일인 구제역과 AI는 또 어떤가. 혼란과 부실, 무능력을 다시 경험했고 시스템의 부재를 확인했다. 시민이 체감하는 (무)변화는 설문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 경향신문과 국회의장실이 의뢰하고 갤럽이 조사한 결과, 세월호 참사 후 안전이 얼마나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1.3%가 ‘변화 없다’고 답했다. ‘악화된 편’ 8.3%, ‘매우 악화된 편’ 6.6% 등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한 사람도 14.9%였다(http://bit.ly/2pEgYoX).   비난과 비판을 듣는 당사자, 특히 정부 당국은 억울할지 모른다.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유명무실한 상태로 있던 ‘재난관리체계’를 많이 정비하고 개선했다고 항변한다. 공무원들이 위기관리 시스템, 매뉴얼, 훈련을 실적으로 내놓는 이유도 지난 3년의 성과를 알아달라는 뜻이 아닌가. 아마도 맞는 말이겠지만, 옳은 답변은 아니다. 해경이 해체되고 중앙정부 부처가 하나 새로 만들어질 지경이었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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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료기술의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디스크라고 불리는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수술을 않고 약물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OO대 의대부속 OOO교수 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스크내 주사요법」에 의한 디스크 치료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 「디스크내 주사요법」은 삐져나온 추간판에 연골을 녹이는 카이모파파인이란 약물을 주사하는 요법이다. (…) 종래의 수술치료보다 간단하여 입원기간이 짧아 환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치료시 통증과 후유증을 크게 덜어줘” (경향신문 1984년 5월 17일) “1980년대 초반부터 칼을 대지 않고 디스크를 치료하는 수술-시술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이 카이모파파인 효소주사 요법이다. (…) 한 때 디스크를 정복하는 방법으로 과대홍보되었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최초로 시행된 ‘칼 안 대는 수술방법’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다.” (이춘성.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 193쪽, 쌤앤파커스 펴냄, 2012년)   두 글이 쓰인 시기는 거의 3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앞의 글은 신문 기사이고 뒤의 글은 디스크 수술 전문가가 썼다는 차이도 있다. 참고로 이춘성 교수는 척추와 디스크 수술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환상적’인 치료법이 시간이 흘러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아예 평가할 것도 없이 첫 번째 비수술치료라는 의미만 있다고 쓰여 있다. 합병증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유독 눈에 띈다.   비슷한 예가 어디 카이모파파인과 디스크 수술뿐이겠는가. 수도 없이 많은 신약과 의료기술, 수술법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아스피린처럼 백년 넘게 버티는 것도 있지만, 나오자 바로 없어지는 것도 숱하다. 의료기술의 짧은 수명은 드문 일이 아니다.

서리풀 논평

안전한 병원을 위하여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났고, 고작 6분 만에 29명의 사상자가 났다. 최근 들어 워낙 사건, 사고가 많다지만 유난히 가슴이 더 아프다. 요양병원이라니, 어느 정도는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마치 시한폭탄 같은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런 사고가 처음인 것도 아니다.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10년 11월 12일 포항의 한 요양원에서 불이 나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 상황도 이번 사고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4평 남짓을 태우고 30분 만에 진화되었으니 대형 화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동하기 어려웠던 데다 (요양원이니 오죽했을까), 연기에 질식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오래 된 일로 논산의 정신병원 화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1993년 4월 19일 한 개인 정신병원에 불이 나서 34명이나 되는 귀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사고 원인이 이번과 빼닮은 점이 다시 놀랍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자. 허가 받은 병상의 두 배가 넘는 환자에다 관리 인원은 규정보다 훨씬 적었다. 환자의 손발을 묶어 두어 대피가 어려웠고, 시설 특성상 출입문을 쉽게 여닫을 수 없게 만들어 둔 것도 원인이었다. 평소 긴급대피를 위한 체계나 준비가 없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두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배운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거의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고, 같은 진단과 처방이 되풀이된다. 관심과 분노가 불처럼 일어났다가

서리풀 논평

세월호 사고의 재발을 막는 리더십

  아무래도 아직은 다른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 채 실종자도 다 찾지 못한 형편이다. 소비까지 줄어들 정도니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도 크다. 이 마당에 다른 데에 관심을 두기는 차마 내키지 않는다.   거듭 다잡는 것이 그나마 이 불행한 사고에서 몇 가지 교훈이라도 찾아내는 일이다. 두 주 전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벌써부터 이 일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바로가기). 원하든 그렇지 않든, 원인과 책임의 소재, 과제와 지향은 같은 패러다임으로 묶여 있다.   구체적으로는 바로 지난 주에 공중보건의 원리에서 도출한 몇 가지 과제를 내놓았다 (바로가기). 집단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을 한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재난과 큰 사고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카트리나에 잘못 대응하는 바람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만드는 일은 그만큼 만만치 않다.   이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고 시험대다. 대통령이 말한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미 새로운 조직을 포함해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시시콜콜 세부적인 사항이야 논의가 오죽 많을까, 지금 여기에 보태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줄로 짐작한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다. 관료체계가 작동하면 당연히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면에 치우치기 쉽다. 당초의 문제의식과 목표는 어느새 옅어지고 몇 명과 몇 원을 두고 걱정하고 다투게 된다.     그런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