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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탄핵’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박근혜 게이트가 시작될 때부터 탄핵을 주장했다(서리풀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하야나 퇴진이 박근혜가 결심해야 하는 일인데 비해, 탄핵은 주권자(국민, 시민, 인민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가 주체가 되는, 강제이자 권력이다. 처음부터 그(그리고 그의 결심)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이 사태가 시작한 이후 우리는 한 번도 탄핵 인용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8:0이든 9:0이든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파면될 것으로 예상했다. 복잡한 법 논리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그 많은 이유 가운데 뭐가 되었든, ‘죄’는 명백하다.   무엇이 대통령의 죄인가? 헌법재판소는 ‘최소주의적’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다섯 가지 사유 가운데 한 가지(뇌물죄)는 판단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고 세 가지 사유는 탄핵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딱 한 가지, ‘최순실에 대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만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오늘 우리는 이 역사적 결정에 대해 물으려 한다. 이유야 무엇이든 파면되었으니 이제 충분한가? 새 대통령을 뽑을 테니 그만하면 된 것일까? 박근혜 게이트에서 탄핵은 어떤 의미인가?     2016년 12월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작할 무렵, 우리는 탄핵을 요구하면서 그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2016년 12월 5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국정 운영의 문란, 숱한 법률 위반, 도덕적 파탄을 합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은 끝났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파탄에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도 분명하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고 실질적인 구속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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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 대통령’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리풀 논평’을 응원하는 모든 독자에게 2017년 새해 인사를 드린다. 혹시 비관하거나 절망할 환경이 더 많더라도, 새해에는 일부러 낙관하고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 우리가 무생물이 아닌 한, 조건이 곧 원인일 수는, 그리하여 기계적 인과관계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어떤 조건도 받아 안아 스스로 양분과 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먼저 지난해 2016년의 의미. ‘촛불’을 빼고 2016년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날, 광장에 나온 누적 인원이 1천만 명을 넘었다니, 2016년 후반은 전체가 하나로 역사적 사건이다. 그것으로 ‘구체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면, 촛불은 한 세대를 지속한 ‘1987년 체제’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른 것보다는 모종의 낙관을 회복한 것이 큰 의의라 해야 하겠다. 시민의 열망에 대해, 또한 시민이 가진 힘에 대해, 냉소와 회의가 많이 줄었다. 다시 무엇인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에너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이 역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거기까지, 그리고 그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불확실함 가운데에 2017년을 맞는다. 모두가 관심을 가진 탄핵 심판 자체는 오히려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다. 1월이든 3월이든 대통령은 파면될 것이다. 그 어느 잣대로도 다른 경우를 상상하지 못하니, 이건 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은 그 이후. 물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치 일정은 기계적으로 확실하다. 막상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불확실성은 이런 것들이다. 어떤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새 대통령은 정말 다를까? 그리하여 다음 시대와 사회는? 먼저 짚어야 할 한 가지는 대통령 선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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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창으로 본 박근혜 정부, 이미 낙제점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절반, 아니 70%쯤은 이루었다고 믿고 싶다. 헌법재판관의 성향이 어떠니 위헌 사유가 어떠니 하지만, 헌법재판은 법률이 아니라 ‘정치’가 본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민심과 열망이 이 정치의 핵심이면, 그들이 ‘시민권력’을 이길 수는 없다. 이런 믿음이 곧 헌법재판소를 신뢰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는 논쟁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처럼 부당하게 행사된 의회권력을 바로잡은 적도 있지만, 저 유명한 ‘관습헌법’ 판결처럼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또한 헌법재판소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 대법원, 국회가 추천하니 겉으로는 삼권분립의 원리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실제 그런가는 의심스럽다. 한국에서 권력의 분립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대통령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미리 안다든지, 또는 사법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심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독립적 판단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헌법을 바탕으로 행정, 입법, 사법을 견제하는가도 문제지만, 이들이 주권자(국민)를 대표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한계다. 헌법재판이 ‘숙고’를 통하여 판단한다고 하겠지만, 이 판단은 단지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기술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숙고는 사회 구성원의 여러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반영하는 민주적 과정의 일부이며, 헌법재판과 재판관은 마땅히 이를 ‘대표’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숙고를 위임했을 뿐이다. 여러 국가에서 법관과 검사를 선거로 뽑는 것도 민주주의의 대표성 원리 때문일 것이다. 이제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 전문가가 될 조건이니, 사법과 헌법재판에 민주주의의 원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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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약, 탄핵이 부결되면

  지난 주말, 또 사상 최대 인원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주말이라고 하지만 생업을 포기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평일인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몇 주째인가. 95%의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서 일을 놓았다.   이 많은 사람이 도대체 왜? 흔히 분노와 심판을 말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더, 시민의 행동은 곧 말하는 것이고 또한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민주적 의사 표현이요 정치 참여니, 곧 민주공화국 구성원의 권리이고 의무다. 핵심은 바로 “내 말을 들어 달라”는 것.   이번 주 금요일(9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루어진다. 탄핵은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주권자의 요구를 제도 정치가 수용한 결과다. 대의제라는 흠 많은 제도적 장치에 수많은 주권자가 직접 개입한 결과 그나마 이 정도까지라도 왔다.   박근혜 게이트 초기에 제도 정치가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면서 탄핵을 머뭇거렸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 조건에서 탄핵 소추가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시민이 압력을 가한 결과다. 직접 참여를 통해 제도 정치를 바꾸었다는 것만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시민은 이미 절반을 이겼다!   이 논평을 쓰는 때는 4일(일요일) 저녁, 지금 같아서는 탄핵안이 가결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또박또박 처절하게 역사에 기록되어 그 이름까지 남을 친박계 의원은 입에 담기도 싫다. 대통령이 퇴진 약속을 하면 굳이 탄핵까지 할 것 있느냐는 새누리당 비박계의 동요 때문에 탄핵은 부결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민이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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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차관과 비서관들이 해야 할 일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황당함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고백한 일만 하더라도 상식을 한참 벗어나지만, 의심을 받는 일 대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24시간 밀착 체크했던 청와대 초대 의무실장도 최순실 담당의사로 대통령 자문의가 된 김상만 씨를 알지 못하며, 김 씨가 작성한 의무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 씨가 자문의가 됐다는 것도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며 “진료를 하러 오지 않아 일면식도 없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국가 2급 비밀이라는 대통령의 건강관리가 이런 식이면, 다른 일,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인들 제정신이었을까. 무기 로비스트 누구를 만났느니 베트남 대사가 어떻게 발탁되었느니 하는 일을 보면, 이게 국가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은 그만두고라도, 여염집 가장만도 못한 작고 작은 사인의 의식과 행동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한 가지가 그 사이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 사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적 연결망이야 끼리끼리 모였으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치자. 공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그 많은 정치인, 관료,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적극 가담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을 탐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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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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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을 조직해야 한다

이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돌아가는 일이 많다. 그중에는 묻혀 지나가면 안 될 중요한 것도 들어있다. 예를 들면, 11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연 공청회 같은 것.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다루는 자리였다. (☞관련 기사 : 기재위, 서비스산업·규제프리존법 놓고 여야 공방) 이런 법의 정체와 노림수는 더 자세히 말할 겨를이 없다. 이 정권이 저지른 ‘문화 융성’과 ‘창조 경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으니, 그 허무함은 지난 ‘서리풀 논평’을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기사 : 짝퉁 ‘민생’의 부도덕, 주술이 된 서비스 산업과 경제 성장) 유감스럽지만, 이런 공청회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온갖 규제를 풀고 사회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법률 조치, 영리 의료를 촉진할 중요한 의제는 완전히 파묻혔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나라의 운명이 달린 사태 앞에서 이 정도는 사소(?)하다. 이 사태가 걱정이지만, 이번 주 ‘서리풀 논평’도 일상을 다루기는 어렵겠다. 아니, 모든 이가 대통령을 말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 새로운 일상, 정치적 일상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니 더 절박하다. 다시 공공성과 민주주의라는 (묵묵히 해야 하는)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일상이 아닌 일상을 말해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모든 이의 관심은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제도 권력을 해체 또는 변경하는 일에 모여 있다. 돌이킬 수 없다. 현 정권은 시간이 지나가면, 지지율이 회복되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권의 정치적 권력은 회복하기 어렵다. 대중의 집단적 정치 지성이 그렇다. 주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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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통령을 다시 뽑자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인데, ‘하야(下野)’란 어울리지 않는다. 관직이나 정치에서 물러나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이라면, ‘관’이나 ‘정(政)’은 높고 ‘민(民)’은 낮다는 것이 아닌가.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어법이다. 따지면 ‘퇴진’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서 진퇴를 결정할 주체는 당사자인 대통령과 집권층이 아니다. 결단하거나 결심할 쪽은 그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시민이다. 주권자는 ‘-되어야 한다’거나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수동태로 말하지 않는다. 능동태로, 탄핵하거나 물러나게 하거나 소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라의 기본이 초라하게 무너졌으니,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인들 평소처럼 ‘시민’과 ‘건강증진’과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겠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허무와 냉소가 근거가 없지 않으니, 본업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 사태를 말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래 의심하던 이 정권의 가치 지향과 일하는 방식, 실력이 드러난 것이 큰 의의다. 첫째, 박근혜 정권은 국가 시스템 그리고 국정 운영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완전하게 무너뜨렸다. 국가 운영과 국정은 시스템이라 할 것도 없다. 자격도 실력도 태도도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 국정을 맡아 어지럽혔으니 놀라움을 넘어 두렵다. 남북문제, 사드 배치, 외교에도 끼어들었다는 소리가 그냥 농담인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라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안도해야 할까 자부해야 할까.     방송이 보도한 최순실 파일 중에는 ‘130128고용복지_업무보고_참고자료’라는 것이 있다. 이때(2013년 1월 28일)는 대통령 인수위 시기니 현 정권의 복지와 건강, 의료를 어떻게 할까 하는 기본방침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정권은 이런 내용을 준비하면서 행정부도 정치권도, 그리고 시민사회나 전문가도 아닌, 최순실에게 묻고 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