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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더 가혹한 재난, 처방은?

약자에게 더 가혹한 재난, 처방은? [서리풀 연구통通] 재난 이후 ‘연대’가 노인 인지능력 저하 막는다 김새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지난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정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여 지원을 시작했고(☞관련 기사 : 포항 ‘특별재난지역’ 금주 선포…수능시험장 시설상 문제는 없어), 민간 부문에서도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다. 그렇지만 피해 지역 주민들이 재난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번 지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의 건강 영향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자연재해 피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 장기적으로 물질 남용 장애에 빠지거나, 노인의 경우 인지기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재난으로 인한 주거지 파손과 재물 손상 등 물질적 피해는 물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틀어진 삶의 계획은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장기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이 모든 피해자에게 평등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사망한 이들 중 89%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되어 있었고, 일상의 파괴에 적응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자연재해의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최근 발행된 국제 학술지 <랜싯: 지구 건강

서리풀 논평

세월호를 기억하는 법, 소수화와 배제를 넘어

    사실 우리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작년 그 주, 2014년 4월 21일의 논평을 내지 못했다. 이 논평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12년 3월 이후, 마침 겹친 두 번의 명절을 빼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모든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마 무엇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을까. 아직 아니다. 사고로부터의 거리로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솔직히 아직 말할 것이 많지 않다. 여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적고 의심은 많다. 그래도 이 며칠, 언론이든 모임이든 또는 개인이든 글과 말이 있는 곳이면 누구도 그냥 지나가지는 못하리라. 그 누구라도 빚을 졌으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 넘칠 것으로 짐작한다. 설사 주저함이 더 강해도 입을 벌려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록할 책임을 느끼는 자,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의 현실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망설이면서도, 꾹꾹 눌러 써놓아야 한다. 망각과의 투쟁, 이 논평은 단지 그것을 위한 것이다. 기록이라면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충실히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시기가 무슨 의미였는지 생각한다. 지난 일 년을 무엇으로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때, 2014년 4월 28일 논평을 통해 남은 날들이 책임을 둘러싼 투쟁이자 정치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스스로 평가하건대 그리 많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서리풀 논평

선별 복지의 ‘분할 통치’를 넘어

  복지국가의 역사로 치면 영국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온 것이 1942년이니 2차 세계대전 이후만 쳐도 70년에 가깝다. 그 유명한 국가공영의료체계(NHS)도 이미 65년이 더 지났다. 역사가 오랠수록 제도는 안정된다.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보수화’라 할 수도 있으니, 한번 확립되면 쉽게 바꿀 수 없다는 뜻이리라. 1970년대 후반 이후에도 대부분 국가에서 복지가 후퇴하기보다는 확대된 것도 이러한 특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운명은 단정할 수 없다. 긴축의 시기에도 전진하며 예상과 달리 후퇴하기도 한다. 각기 사정이 있지만, 복지와 복지국가가 정치사회적 경쟁과 갈등의 장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늘 ‘복지 정치’가 문제다. 영국(잉글랜드)의 국가공영의료체계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라.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제도가 아닌가. 그러나 카메룬 총리의 보수당-자유당 연립 정부가 등장한 이후 근본부터 동요하고 있다. 겉으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공공과 복지의 상징이 민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그 배경에는 보건의료와 복지국가의 방향성을 둘러싼 경쟁과 대립이 있고, 지금은 굳이 말하면 친시장-반복지 진영이 권력을 쥔 상태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영국의 정치체제가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 있다. 정권 교체에 따라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잦으니, 좋게 보자면 책임 정치의 구현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에서는 복지국가의 정치적 토대가 여전히(!) 허약하다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후퇴를 허용하거나 요구하는 시민의 ‘복지 의식’이 그 가운데 하나다. 복지 의식이 허약하다니? 2012년 영국의 사회정책학자인 피터 테일러 구비가 발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