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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 위치만 바꿔도 술 소비 준다

한겨레 2014년 4월 23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 원고입니다 (바로가기)   인류 역사에서 술은 오래도록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위안거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죽음과 고통에 빠뜨리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의 술은 집에서 빚어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과 오순도순 나눠 마시는 소박한 먹거리가 아니다. 글로벌 독점 기업의 대량생산과 영업 전략에 따라 판매되는 특별한 상품이다. 한때 식량 부족 때문에 술 만드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술도 여기저기 넘쳐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24시간 어디에서나 술을 쉽게 구하고 마실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절제만으로 술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음주자들한테 절주를 권하는 것만큼이나 술이라는 소비 상품의 유통과 판매의 규제가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는 이런 접근에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테리사 마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팀은 최근 <사회과학과 의학>지에 슈퍼마켓 판매대 어느 곳에 술을 두는지가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영국의 한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1년 동안 자료를 모았다. 슈퍼마켓 카트에 추적장치를 붙여 손님들의 이동 경로와 제품의 전시 위치, 상품 구입 현황을 기록한 자료를 수집했다. 상품 가격이나 판촉 행사에 따른 판매 추이도 분석했다. 술의 종류는 맥주, 포도주, 증류주(위스키) 등 3종이었다. 영국에서는 보통 슈퍼마켓 매장판매대 끝 쪽에 판촉 행사를 위한 특별 배치가 이뤄진다. 연구팀은 매대 끝 쪽의 판촉 전시와 술 구입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대 끝 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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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서 보는 ‘영리추구 의료’의 그늘

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4.04.09 (바로가기)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정책 과제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 인력과 기관의 분포, 정책당국의 리더십, 이해당사자 및 주민들의 적극적 호응, 충분한 수준의 재정 등과 같은 요인들이 제대로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셈법도 성과 달성을 어렵게 한다. 때로는 정책이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수도, 애초와는 정반대로 나올 수도 있다. 다시 되돌리기 힘든 우리의 생명 및 건강 문제와 관련된 만큼,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 설정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보건의료 정책은 원격의료 및 병원의 영리 자회사 허용이다. 이는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정책의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어 이보다는 그 결과를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다른 나라의 비슷한 경험을 소개한다. 세페리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가 <국제 보건의료서비스> 최근호에 발표한 연구로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립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베트남의 보건의료 정책을 분석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2002년과 2006년에 공립병원을 포함한 공공부문에 재정운용의 자율성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공립병원들은 중앙 및 지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재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또 의사 등 의료 인력의 급여체계에 상여금과 병원 수입을 연계하고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도입해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정책의 애초 목적은 공공서비스의

이슈페이퍼

[시민건강이슈-05] 국민안전과 규제완화, 양립불가능한 정책지향을 반대한다

2013년 5월의 이슈페이퍼입니다.   이번 이슈페이퍼는 사회공공연구소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함께 기획, 발간하였습니다.   PDF파일을 함께 첨부합니다. 많은 관심과 공유 부탁드립니다.   ———————————————————————————–   박근혜 정부는 ‘국민 안전’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한다. 대선 공약으로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 4대악 근절’을 내세웠고, 인수위원회는 ‘안전과 통합의 사회’를 5개 국정목표 중 하나로 제시했다. 행정안전부 명칭도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까지, 국민안전에 대한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안전에 대한 대대적 강조와 달리, 정작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거나 그리 될 위험성이 큰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대형 산업재해나 불산 누출 같은 환경피해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대응이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민영화와 전격적인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전기/가스/철도 같은 국가기간시설의 안전사고, 청주의 LG화학 OLED 생산 공장 폭발 사건, 의료사고와 환자 안전법 논쟁 같은, 일견 무관해 보이는 세 가지 이슈를 살펴보았다. 이 문제들은 다루는 정부 부처도 각기 다르고, 문제의 속성이나 사회적 영향, 건강 피해의 규모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국민안전’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큰 생활안전 이슈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전기/가스/철도는 시민들 개인과 사회가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인프라로서, 드물지만 일단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건강 피해의 규모가 엄청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성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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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규제기본협약을 아시나요?

다들 좋아하는 ‘글로벌’ 시대지만, 국내외 격차가 너무 커서 당황스러운 때가 있다. 바로 이번 주, 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 총회가 그렇다.    ‘담배규제기본협약’이라는 낯선 국제법은 세계보건기구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국제협약으로, 2005년 2월부터 발효되었다. 이름 그대로 금연을 목적으로 하는데, 한국도 2005년 4월에 비준한 후 ‘당사국’이 되었다.    보건분야에서는 최초의 국제협약이지만,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각 나라의 국내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기본적인 규제이긴 하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계 정부’의 가능성을 꿈꾸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러니 이번 5차 당사국 총회는, 적어도 건강과 보건 분야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국제 행사라 할 만하다. 세계보건기구의 사무총장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장관급 고위관료, 수많은 전문가, 시민사회 지도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참가 국가 수만 하더라도 176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중요성이나 관심에 비하면 국내의 관심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주최국이지만, 일부러 무관심을 유도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전용 홈페이지(바로가기)만 하더라도 세계적 행사라 하기에는 민망하다.    <FCTC 제 5차 당사국 총회 누리집 첫화면> 사실 그동안 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저런 말이 꽤 있었다. 언뜻 보기에 소극적이기까지 한 정부의 태도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퇴행적 금연정책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심이다.    나아가 보건정책의 전반적인 취약성을 읽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금연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예산도 사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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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를 규제하라

지난달 27일 경북 구미시에서 불산 가스 누출사고가 생겨 단번에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불산’이 도대체 무엇이며, 다들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불안이 크다.         이미 여러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수천 명 주민이 진료를 받았다. 나중에라도 심장이나 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그 뿐인가,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다.    뜬금없지만, 바로 며칠 전 미국에서 생긴 약화 사고가 자꾸 겹쳐 보인다. 곰팡이에 오염된 주사를 맞아 60명 이상이 뇌척수막염에 걸리고, 그 중 일곱 명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누가 주사를 맞았는지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찾느라 바쁘다. 그러나 구미든 미국이든 대책이라 할 때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많다.    이미 입은 피해를 본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건강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역학조사를 하고 장기간 꼼꼼히 살피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문제가 생겼다면 사고 이전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뒤늦게라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구미와 미국에서 생긴 사고의 경로는 닮은 것이 많다. 정부의 초기 조치가 부실했다는 것은 조금 다르지만, 해당 업체가 정부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는 것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 같다.    관리감독이 소홀했고 모니터링이나 조사대상에서도 빠졌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실상이다. 법률의 미비를 따지는 것도 두 나라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약화사고를 두고는 뉴욕타임스 신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