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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문재인 케어, 누구의 관점으로 어떤 범위에서?

  의사들이 찬바람을 맞으면서 ‘문재인 케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여론은 싸늘했지만, 보건복지부가 협의체를 만들자고 나설 정도면 아주 실패한 결과는 아닌 모양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대통령도 의사들이 염려하는 것을 이해한다니, 오히려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성공이면 어떻고 실패면 또 어떤가. 솔직하게 말하면, 의사들의 행동과 정부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디 의사뿐이겠는가, 그동안 배운 바로는 의료전문직, 아니 대부분 집단이 비슷하다. 이해관계가 걸린 일마다 집단의 힘을 보이고 의사결정권자를 압박하는 것이 표준 절차처럼 굳어졌다. 이 또한 놀랍거나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어떤 사회 어떤 사람이든 자기 이해를 지키려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만 있으면 힘을 키워 더 큰 가치를 차지하려는 것도 비판하기 어렵다. 모두가 ‘다양성’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마당에, 지도층이니 직업윤리니 하는 책망은 과녁이 빗나갔다. 그게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원성의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 문제다.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의 말을 듣기 위해 협의회를 한다는 것부터 그렇다. 정부는 그저 정치적 제스처라고 말할지 모르나, 집회의 압력으로 새로운 협의를 하는 것만으로 문재인 케어의 ‘민주성’은 크게 후퇴했다.     형식부터 문제다. 직접 이해관계만 생각해도 문재인 케어의 당사자는 의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직종은 물론이지만, 보험료를 부담하는 가입자와 납세자, 환자와 그 가족, 또는 제3자는 어디에 있는가? 언론과 여론으로 충분하다고 보는지 모르지만, 착각이다. 흩어지고 산발적인 의견은 아무 힘이 없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져야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미흡한 민주주의와 정치력, 강고한 관료주의가 어우러져 문재인 케어를 ‘침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역사적 교훈으로 보건대, 지금 추스르지 않으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말할 것이 많으나 크게 두 가지 원칙만 다시 확인하려고 한다.   첫째, ‘사람 중심’의 원칙을 다시 세우고 지켜야 한다. 문재인 케어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정책 의도와 무관하게) 큰 이견이 없다고 믿는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큰 비용 걱정 없이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비급여를 몽땅 없애거나 무슨 체계를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것, 누구의 수입을 보장하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OECD 평균치와 비교하여 보장성이 떨어지느니 보장률을 얼마로 올리느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동의하겠으나, 옆에서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잊기도 쉽다. 정책을 추진하는 쪽과 그 정책이 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쪽이 모두 마찬가지다. 추상적이고 사회적인 가치가 내 생활과 이해관계보다 앞서기 어렵다. 사람 중심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는 이유다. 건강과 보건, 그리고 그 정책을 관통하는 ‘사람 중심성(people-centeredness)’은 최근의 세계적 화두이자 경향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안한 내용을 보면 (통합적인)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사회를 보건체계의 중심에 두고, 사람들을 서비스 수혜자의 수동적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가리킨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문재인 케어에서 사람 중심의 ‘체계’를 논하는 것은 역부족이니, 먼저 “사람과 지역사회를 보건체계의 중심”에 두는 것으로 인식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 첫째 과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사람들의 고통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한 가지만 생각해도 이 필요는 다르지 않다. 정부에 묻는다. 그 흔한 여론조사라도 한번 했는가? 평범한 회사원, 늘 병원에 다니는 농촌의 독거노인, 애를 키우는 젊은 부부, 비정규 노동자, 청년 실업자, 그들은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는가? 사람 중심의 문재인 케어는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에서 출발해야 한다.   둘째, 문재인 케어는 단지 ‘비급여’를 줄이고 ‘급여’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어야 한다. 당국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현실의 이해관계와 이를 둘러싼 정치는 점점 한 가지 문제로 수렴한다. 비급여의 포획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문재인 케어는 ‘보편적 건강보장’이라는 세계적 목표와 일맥상통한다. 참고로 이 말은 영어로는 ‘universal health coverage’, 약자로는 ‘UHC’라 부른다. 굳이 영어에 약자까지 소개하는 이유는 적어도 2030년까지 세계 모든 나라가 이를 달성하도록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계적인 유행(?)이라 할 정도니, 그 정신과 목표를 우리만 모른 척하기 어렵다. 짐작하겠지만,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공식적) 국제운동을 지휘하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다. 이 국제기구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 조직의 새로운 수장인 에티오피아 출신 테드로스 사무총장이 며칠 전 내놓은 메시지는 이렇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보편적 건강보장은 단지 건강보험이나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차원을 넘는다. 이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촉진하고 질병을 예방함으로써 건강을 보호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빈곤의 한 가지 이유를 없애는 방법이며, 건강과 보건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기도 하다. 건강과 노동 능력을 유지하여 포용적 경제성장으로 갈 수 있으며, 성 평등에도 기여한다. 이를 통해 감염병 유행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며 유행을 억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지 세계보건기구의 허황한 소리라 할 수 없다. 이에 연결하여 다시 문재인 케어의 ‘본질’을 확인하자. 보편적 건강보장은 건강증진, 예방, 치료, 재활을 망라한다. 서비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체계도 종합적이다. 의사들이 반발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단지 건강보험 급여와 수가만 어떻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을 같이 손봐야 하는 과제다(관련 링크 바로 가기). 시스템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문재인 케어가 목표로 하는 ‘작은’ 목표도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정부에 묻는다. 문재인 케어는 이 정부 전체의 건강체제와 정책, 제도의 목표와 정렬되고 통합되어 있는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했는가? 일차의료와 공중보건체계, 공공보건의료와는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역할을 어떻게 분담했는가? 이 두 가지 원칙은 말 그대로 원칙일 뿐, 실제 정책으로 바꾸는 데는 정치와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이 그리 미덥지 못하고, 체계도 제대로 갖춘 것 같지 않다. 의사 시위를 계기로 심기일전, 원칙을 가다듬고 체계도 정비하기 바란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주주의와 시민의 역량을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존재하는 역량은 작동할 수 있도록, 잠재한 역량은 모양을 갖추고 커질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담대한 정치적 공간(들)을 창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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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나누기, 이래도 되나

  며칠 사이 국회에서(그리고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   “자유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도 통화에서 “의사, 간호사 인건비 지원과 수도권 헬기 한 대 도입 등을 위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212억 원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내년 중증외상전문진료체계 구축 예산, 즉 권역외상센터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8.9%(39억2천만 원) 줄인 400억4천만 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다 쓰지 못한 관련 예산이 100억여 원에 달한 데 따른 편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국종 센터장의 북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예산마저 줄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여야는 권력외상센터 예산 증액으로 화답했다.”(기사 바로가기)   한 언론은 이국종이 ‘활약’한 덕분이라 썼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기사 제목을 뽑은 사람은 예산 결정 과정을 제법 잘 아는 사람이 틀림없다. 마케팅이든 인맥이든, 하다못해(?) 공무원 ‘빽’이라도 있어야 예산을 딸 수 있다니 ‘활약’이란 표현이 딱 맞다.     광주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 실린 이런 기사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시나 도 이름과 단체장 이름만 바꾸면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윤장현 광주시장,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 시·도 주요 간부, 시장·군수 등이 국회에서 상주하며 예산의 추가 및 신규 반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예산을 모르고 정치를 모르는 탓인지, 둘 다 도무지

서리풀 논평

민주주의 강화, 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정책학자 길 월트는 장관에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소주의자, 정책선택자, 정책집행자, 정책 대사 중 하나라는 것(길 월트 지음, 김창엽 옮김, <건강정책의 이해>, 한울 펴냄).   “최소주의자는 부처의 기본 역할만 수행한다. 정책선택자는 똑똑한 일반인처럼 행동하면서 여러 정책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에 만족한다. 정책집행자는 관리자로서 해야 할 역할과 효율성에 모든 관심을 쏟고, 정책 대사는 일반대중과 만나 부처의 정책과 업무를 홍보하는 것을 주로 한다.”   더 중요한 내용이 이어진다. “공무원이 정보를 장악해 장관을 불리한 처지에 몰아넣은 다음,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느라 장관(그리고 책임이 있는 고위 공직자)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 장관은 생각보다(생각만큼!)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행정부 구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미 활동을 시작한 장관이 있는가 하면, 이제야 지명된 장관도 있다. 장관 이외에 책임 있는 공직자까지 포함하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있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무슨 큰 문제일까. 충분히 시간을 쓰는 것이 검증과 판단에 도움이 될 터이니 기다려도 된다. 행정부가 해야 할 정책과 사업의 방향을 논의하고 명확히 하는 기회가 되면 금상첨화다.   시간과 속도, 행정부 구성의 완결 여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심은 고위 공직자의 충원 구조에 대한 것이다. 위장 전입인지 아닌지, 제대로 인사 검증을 했느니 못했느니, 그 미시적 조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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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일이 이번 주 화요일, 5월 9일이다. 유권자의 26%가 사전투표를 했다니, 선거일이라기보다는 그날 선거가 끝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칠 수는 없지만, 어떤 후보가 되더라도 비슷한 과제가 남는다. 시민의 관점에서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 몇 가지를 부탁한다. 스스로 다짐하는 것도 포함한다.   첫째, 이른바 ‘통합’에 대하여   선거 과정에서 거의 모든 후보가 ‘통합’을 주장했다. 다들 통합을 위해 가장 좋은 후보라고 자임했으나, 우리는 그 실체를 잘 모른다. 무엇을 통합한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일반 시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인 의회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법 하나를 고치려 해도 큰 당 하나가 반대하면 잘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경험한, 그 악명 높은 언론권력의 지형은 또 어떤가? 지금 여러 후보가 말하는 통합이 그런 상황을 이기는 방도인가? 어떻게 하려고? 통합이 서로 다른 현실 정치세력이 권력과 자리, 자원(돈)을 나누는 것이면, 그것은 시민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누가 하고 장관 자리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당의 지지가 약한 지역에 무엇을 지어주고 무엇을 옮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 시기 나쁜 짓을 했지만 통합 차원에서 그냥 덮는다? 겨우 이런 뜻이면, 또는 ‘나눠 먹기’나 ‘야합’ ‘이합집산’을 뜻한다면, 우리는 그런 통합을 반대한다. 통합은 ‘국론 통일’이거나 두루뭉술한 중도,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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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 대통령’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리풀 논평’을 응원하는 모든 독자에게 2017년 새해 인사를 드린다. 혹시 비관하거나 절망할 환경이 더 많더라도, 새해에는 일부러 낙관하고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 우리가 무생물이 아닌 한, 조건이 곧 원인일 수는, 그리하여 기계적 인과관계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어떤 조건도 받아 안아 스스로 양분과 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먼저 지난해 2016년의 의미. ‘촛불’을 빼고 2016년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날, 광장에 나온 누적 인원이 1천만 명을 넘었다니, 2016년 후반은 전체가 하나로 역사적 사건이다. 그것으로 ‘구체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면, 촛불은 한 세대를 지속한 ‘1987년 체제’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른 것보다는 모종의 낙관을 회복한 것이 큰 의의라 해야 하겠다. 시민의 열망에 대해, 또한 시민이 가진 힘에 대해, 냉소와 회의가 많이 줄었다. 다시 무엇인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에너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이 역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거기까지, 그리고 그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불확실함 가운데에 2017년을 맞는다. 모두가 관심을 가진 탄핵 심판 자체는 오히려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다. 1월이든 3월이든 대통령은 파면될 것이다. 그 어느 잣대로도 다른 경우를 상상하지 못하니, 이건 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은 그 이후. 물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치 일정은 기계적으로 확실하다. 막상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불확실성은 이런 것들이다. 어떤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새 대통령은 정말 다를까? 그리하여 다음 시대와 사회는? 먼저 짚어야 할 한 가지는 대통령 선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서리풀 논평

누가 이 시대의 공인(公人)인가

  박근혜 게이트를 다루는 국정조사 청문회.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보고 있기에 참으로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노릇이다. 시청하는 사람들 혈압이나 올릴 것이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니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이른바 정치·경제·사회 ‘엘리트’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지식을 무기로 삼아 대중을 속였던 것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라면, 오랜 신화에서 벗어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의 관심은 ‘주범’과 ‘공동정범’이 아니다. 박근혜 게이트는 그들 말고도 수많은 정치인, 관료, 지식인, 언론이 한통속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부분 그런 줄 몰랐다고 하겠지만, 결코 모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힘을 보태면 안 된다는 것은 명확했던 것이므로, 그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그들의 민낯.   서울대병원은 스스로 한국 최고 병원임을 자신하고 자부하는 곳이다. 그곳의 전, 현직 병원장 두 사람이 동시에 청문회에 출석했다. 평소 내세우던 것 그대로면, 그들은 한국 의료의 지침이 될 의학적 견해나 판단을 두고 다투었어야 한다. 국립대학병원 또는 ‘국가중앙병원’의 기능을 그리고 그 어려움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록 허울만이라도.   실제 우리가 봤던 것은 누가 누구를 소개했고 누구의 청탁을 들어 주었는지 같은, 무슨 사기 사건에 연루된 ‘브로커’ 스토리다. 그마저 서로 말이 다르고 남 탓을 계속했으니, 그냥 개인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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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건강에도 이롭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보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민주적 기본 가치 회복 ② 민주시민 의식의 제고 ③ 시민의 실천 ④ 제도, 시스템의 개선 보완 ⑤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감시와 처벌 ⑥ 민주주의 법, 제도의 구현 ⑦ 국민주권 원칙의 재확립 ⑧ 민주주의 확장.” ‘왜 촛불을 들었는지, 촛불로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묻는 ‘온라인 촛불 토론’ 답변을 고르다가, 문득 누구도 ‘시민의식’ 타령을 하지 않는, 모두가 ‘제도와 시스템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새삼 다가왔다. (☞바로 가기) 그야말로 제도 민주주의의 결함을 시민 행동이 메우고 있는 요즈음, 민주주의와 건강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 최신 연구 한 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Aix-Marseille) 대학교의 Marwân-al-Qays Bousmah 박사 등 연구진이 지난 8월 <건강 정책(Health Policy)>에 발표한 “의료와 민주주의: 보건 지출과 건강 결과 사이의 관계에서

서리풀 논평

지금 장차관과 비서관들이 해야 할 일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황당함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고백한 일만 하더라도 상식을 한참 벗어나지만, 의심을 받는 일 대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24시간 밀착 체크했던 청와대 초대 의무실장도 최순실 담당의사로 대통령 자문의가 된 김상만 씨를 알지 못하며, 김 씨가 작성한 의무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 씨가 자문의가 됐다는 것도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며 “진료를 하러 오지 않아 일면식도 없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국가 2급 비밀이라는 대통령의 건강관리가 이런 식이면, 다른 일,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인들 제정신이었을까. 무기 로비스트 누구를 만났느니 베트남 대사가 어떻게 발탁되었느니 하는 일을 보면, 이게 국가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은 그만두고라도, 여염집 가장만도 못한 작고 작은 사인의 의식과 행동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한 가지가 그 사이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 사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적 연결망이야 끼리끼리 모였으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치자. 공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그 많은 정치인, 관료,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적극 가담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을 탐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라, 대통령

서리풀 논평

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서리풀 논평

‘우리’의 대통령을 다시 뽑자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인데, ‘하야(下野)’란 어울리지 않는다. 관직이나 정치에서 물러나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이라면, ‘관’이나 ‘정(政)’은 높고 ‘민(民)’은 낮다는 것이 아닌가.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어법이다. 따지면 ‘퇴진’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서 진퇴를 결정할 주체는 당사자인 대통령과 집권층이 아니다. 결단하거나 결심할 쪽은 그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시민이다. 주권자는 ‘-되어야 한다’거나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수동태로 말하지 않는다. 능동태로, 탄핵하거나 물러나게 하거나 소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라의 기본이 초라하게 무너졌으니,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인들 평소처럼 ‘시민’과 ‘건강증진’과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겠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허무와 냉소가 근거가 없지 않으니, 본업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 사태를 말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래 의심하던 이 정권의 가치 지향과 일하는 방식, 실력이 드러난 것이 큰 의의다. 첫째, 박근혜 정권은 국가 시스템 그리고 국정 운영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완전하게 무너뜨렸다. 국가 운영과 국정은 시스템이라 할 것도 없다. 자격도 실력도 태도도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 국정을 맡아 어지럽혔으니 놀라움을 넘어 두렵다. 남북문제, 사드 배치, 외교에도 끼어들었다는 소리가 그냥 농담인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라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안도해야 할까 자부해야 할까.     방송이 보도한 최순실 파일 중에는 ‘130128고용복지_업무보고_참고자료’라는 것이 있다. 이때(2013년 1월 28일)는 대통령 인수위 시기니 현 정권의 복지와 건강, 의료를 어떻게 할까 하는 기본방침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정권은 이런 내용을 준비하면서 행정부도 정치권도, 그리고 시민사회나 전문가도 아닌, 최순실에게 묻고 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