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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민주주의 강화, 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정책학자 길 월트는 장관에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소주의자, 정책선택자, 정책집행자, 정책 대사 중 하나라는 것(길 월트 지음, 김창엽 옮김, <건강정책의 이해>, 한울 펴냄).   “최소주의자는 부처의 기본 역할만 수행한다. 정책선택자는 똑똑한 일반인처럼 행동하면서 여러 정책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에 만족한다. 정책집행자는 관리자로서 해야 할 역할과 효율성에 모든 관심을 쏟고, 정책 대사는 일반대중과 만나 부처의 정책과 업무를 홍보하는 것을 주로 한다.”   더 중요한 내용이 이어진다. “공무원이 정보를 장악해 장관을 불리한 처지에 몰아넣은 다음,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느라 장관(그리고 책임이 있는 고위 공직자)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 장관은 생각보다(생각만큼!)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행정부 구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이미 활동을 시작한 장관이 있는가 하면, 이제야 지명된 장관도 있다. 장관 이외에 책임 있는 공직자까지 포함하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좋은 정부를 가질 수 있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무슨 큰 문제일까. 충분히 시간을 쓰는 것이 검증과 판단에 도움이 될 터이니 기다려도 된다. 행정부가 해야 할 정책과 사업의 방향을 논의하고 명확히 하는 기회가 되면 금상첨화다.   시간과 속도, 행정부 구성의 완결 여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심은 고위 공직자의 충원 구조에 대한 것이다. 위장 전입인지 아닌지, 제대로 인사 검증을 했느니 못했느니, 그 미시적 조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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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일이 이번 주 화요일, 5월 9일이다. 유권자의 26%가 사전투표를 했다니, 선거일이라기보다는 그날 선거가 끝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칠 수는 없지만, 어떤 후보가 되더라도 비슷한 과제가 남는다. 시민의 관점에서 다음 대통령과 정부에 몇 가지를 부탁한다. 스스로 다짐하는 것도 포함한다.   첫째, 이른바 ‘통합’에 대하여   선거 과정에서 거의 모든 후보가 ‘통합’을 주장했다. 다들 통합을 위해 가장 좋은 후보라고 자임했으나, 우리는 그 실체를 잘 모른다. 무엇을 통합한다는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일반 시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인 의회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법 하나를 고치려 해도 큰 당 하나가 반대하면 잘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경험한, 그 악명 높은 언론권력의 지형은 또 어떤가? 지금 여러 후보가 말하는 통합이 그런 상황을 이기는 방도인가? 어떻게 하려고? 통합이 서로 다른 현실 정치세력이 권력과 자리, 자원(돈)을 나누는 것이면, 그것은 시민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누가 하고 장관 자리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국민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 당의 지지가 약한 지역에 무엇을 지어주고 무엇을 옮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 시기 나쁜 짓을 했지만 통합 차원에서 그냥 덮는다? 겨우 이런 뜻이면, 또는 ‘나눠 먹기’나 ‘야합’ ‘이합집산’을 뜻한다면, 우리는 그런 통합을 반대한다. 통합은 ‘국론 통일’이거나 두루뭉술한 중도, 또는

서리풀 논평

2017년, ‘새 대통령’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리풀 논평’을 응원하는 모든 독자에게 2017년 새해 인사를 드린다. 혹시 비관하거나 절망할 환경이 더 많더라도, 새해에는 일부러 낙관하고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 우리가 무생물이 아닌 한, 조건이 곧 원인일 수는, 그리하여 기계적 인과관계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어떤 조건도 받아 안아 스스로 양분과 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먼저 지난해 2016년의 의미. ‘촛불’을 빼고 2016년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날, 광장에 나온 누적 인원이 1천만 명을 넘었다니, 2016년 후반은 전체가 하나로 역사적 사건이다. 그것으로 ‘구체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면, 촛불은 한 세대를 지속한 ‘1987년 체제’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른 것보다는 모종의 낙관을 회복한 것이 큰 의의라 해야 하겠다. 시민의 열망에 대해, 또한 시민이 가진 힘에 대해, 냉소와 회의가 많이 줄었다. 다시 무엇인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에너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이 역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거기까지, 그리고 그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불확실함 가운데에 2017년을 맞는다. 모두가 관심을 가진 탄핵 심판 자체는 오히려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다. 1월이든 3월이든 대통령은 파면될 것이다. 그 어느 잣대로도 다른 경우를 상상하지 못하니, 이건 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은 그 이후. 물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치 일정은 기계적으로 확실하다. 막상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불확실성은 이런 것들이다. 어떤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새 대통령은 정말 다를까? 그리하여 다음 시대와 사회는? 먼저 짚어야 할 한 가지는 대통령 선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서리풀 논평

누가 이 시대의 공인(公人)인가

  박근혜 게이트를 다루는 국정조사 청문회.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보고 있기에 참으로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노릇이다. 시청하는 사람들 혈압이나 올릴 것이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줄을 잇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니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이른바 정치·경제·사회 ‘엘리트’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지식을 무기로 삼아 대중을 속였던 것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라면, 오랜 신화에서 벗어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의 관심은 ‘주범’과 ‘공동정범’이 아니다. 박근혜 게이트는 그들 말고도 수많은 정치인, 관료, 지식인, 언론이 한통속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부분 그런 줄 몰랐다고 하겠지만, 결코 모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힘을 보태면 안 된다는 것은 명확했던 것이므로, 그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그들의 민낯.   서울대병원은 스스로 한국 최고 병원임을 자신하고 자부하는 곳이다. 그곳의 전, 현직 병원장 두 사람이 동시에 청문회에 출석했다. 평소 내세우던 것 그대로면, 그들은 한국 의료의 지침이 될 의학적 견해나 판단을 두고 다투었어야 한다. 국립대학병원 또는 ‘국가중앙병원’의 기능을 그리고 그 어려움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록 허울만이라도.   실제 우리가 봤던 것은 누가 누구를 소개했고 누구의 청탁을 들어 주었는지 같은, 무슨 사기 사건에 연루된 ‘브로커’ 스토리다. 그마저 서로 말이 다르고 남 탓을 계속했으니, 그냥 개인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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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건강에도 이롭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보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민주적 기본 가치 회복 ② 민주시민 의식의 제고 ③ 시민의 실천 ④ 제도, 시스템의 개선 보완 ⑤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감시와 처벌 ⑥ 민주주의 법, 제도의 구현 ⑦ 국민주권 원칙의 재확립 ⑧ 민주주의 확장.” ‘왜 촛불을 들었는지, 촛불로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묻는 ‘온라인 촛불 토론’ 답변을 고르다가, 문득 누구도 ‘시민의식’ 타령을 하지 않는, 모두가 ‘제도와 시스템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새삼 다가왔다. (☞바로 가기) 그야말로 제도 민주주의의 결함을 시민 행동이 메우고 있는 요즈음, 민주주의와 건강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 최신 연구 한 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Aix-Marseille) 대학교의 Marwân-al-Qays Bousmah 박사 등 연구진이 지난 8월 <건강 정책(Health Policy)>에 발표한 “의료와 민주주의: 보건 지출과 건강 결과 사이의 관계에서

서리풀 논평

지금 장차관과 비서관들이 해야 할 일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황당함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고백한 일만 하더라도 상식을 한참 벗어나지만, 의심을 받는 일 대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24시간 밀착 체크했던 청와대 초대 의무실장도 최순실 담당의사로 대통령 자문의가 된 김상만 씨를 알지 못하며, 김 씨가 작성한 의무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 씨가 자문의가 됐다는 것도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며 “진료를 하러 오지 않아 일면식도 없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국가 2급 비밀이라는 대통령의 건강관리가 이런 식이면, 다른 일,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인들 제정신이었을까. 무기 로비스트 누구를 만났느니 베트남 대사가 어떻게 발탁되었느니 하는 일을 보면, 이게 국가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은 그만두고라도, 여염집 가장만도 못한 작고 작은 사인의 의식과 행동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한 가지가 그 사이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 사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적 연결망이야 끼리끼리 모였으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치자. 공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그 많은 정치인, 관료,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적극 가담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을 탐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라, 대통령

서리풀 논평

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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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통령을 다시 뽑자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인데, ‘하야(下野)’란 어울리지 않는다. 관직이나 정치에서 물러나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이라면, ‘관’이나 ‘정(政)’은 높고 ‘민(民)’은 낮다는 것이 아닌가.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어법이다. 따지면 ‘퇴진’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서 진퇴를 결정할 주체는 당사자인 대통령과 집권층이 아니다. 결단하거나 결심할 쪽은 그들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시민이다. 주권자는 ‘-되어야 한다’거나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수동태로 말하지 않는다. 능동태로, 탄핵하거나 물러나게 하거나 소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라의 기본이 초라하게 무너졌으니,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인들 평소처럼 ‘시민’과 ‘건강증진’과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겠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허무와 냉소가 근거가 없지 않으니, 본업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 사태를 말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래 의심하던 이 정권의 가치 지향과 일하는 방식, 실력이 드러난 것이 큰 의의다. 첫째, 박근혜 정권은 국가 시스템 그리고 국정 운영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완전하게 무너뜨렸다. 국가 운영과 국정은 시스템이라 할 것도 없다. 자격도 실력도 태도도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 국정을 맡아 어지럽혔으니 놀라움을 넘어 두렵다. 남북문제, 사드 배치, 외교에도 끼어들었다는 소리가 그냥 농담인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라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안도해야 할까 자부해야 할까.     방송이 보도한 최순실 파일 중에는 ‘130128고용복지_업무보고_참고자료’라는 것이 있다. 이때(2013년 1월 28일)는 대통령 인수위 시기니 현 정권의 복지와 건강, 의료를 어떻게 할까 하는 기본방침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정권은 이런 내용을 준비하면서 행정부도 정치권도, 그리고 시민사회나 전문가도 아닌, 최순실에게 묻고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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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전문가’는 누구인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했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늘 우리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려 있는 수상한 시대임을 절감한다. 지금 (이상하게도) 진단서가 사건의 중심처럼 되어 있지만, 우리는 진단서가 정확한지 아닌지 물으려 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진단서가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의학적’ 판단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그리고 ‘전문가’의 전문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된 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국가폭력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정하는 데에 사망진단서는 참고용에 지나지 않는다. 명백한 인과관계를 일부러 회피하는 모든 논란은 다른 의도를 가진 ‘노이즈’임을 강조한다. ‘병사’와 ‘외인사’를 두고 다투는 것이 근본 원인 또는 구조적 원인으로서 국가폭력을 가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진단서에 대한 심판은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충분하니, 다른 진실을 묻는 것이 급하다.   오늘 우리가 물으려 하는 것은 전문가와 전문성의 역할이다. 부수 효과 또는 한가한 질문인지도 모르지만, 작년의 메르스나 올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볼 때 이 질문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른바 사법 전문가의 일탈과 비윤리, 몰염치, 그리고 다시 있을 이 죽음의 ‘사법화’와도 맞물려 있다.   먼저 전문직과 전문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이에 대해서는, 마침 이번에 문제가 되어서가 아니라, 의료 전문직을 원형으로 삼을 만하다. 서양에서 의료 전문가는 신학과 법률 전문가와 더불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적 전문직이다. 이들 전문가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사회가 어떻게 반응했는가가 다른 전문직에게도 모델이 되었다.   ‘전문가주의’(또는 프로페셔널리즘)라는 말이

서리풀 논평

지진까지 보탠 ‘위험 사회’

경상북도 경주에 지진이 발생한 후 일주일이 다 되도록 여진이 계속된다고 한다. 우선, 피해를 보거나 불안에 잠 못 이룬 모든 사람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 있을 큰 지진에 대한 공포가 보태졌을 터이니,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후유증을 줄이고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진이 자연재해인 한, 지진이 일어난 후 대처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는 모두가 알고 비판한 그대로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에서 달라진 것을 찾기 어렵다. 국민안전처는 물론이고 대통령과 행정부 전체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잘못 했느냐고? 지진 후에 빨리 회의를 소집해 보고를 받고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휴대전화 문자 통보는 늦어졌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먹통이었다. 생방송 중이던 경주 주민이 2차 지진이 생기자 방송 진행자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시스템은 아예 구축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다고,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가상 훈련을 한번 했다고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보건대, 이 땅에 ‘재난 대비 시스템’은 아직 없다! 공중 보건 위기 대비 시스템은 있을까? 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다시 요구한다. 제대로 된 대비 시스템을 구축하라. 이번에는 지진이니, ‘지진용’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 말라. 대규모 화재, 또 다른 감염병, 비행기나 배의 사고, 홍수, 제2의 삼풍이나 성수대교 사건,